[스페셜1]
SICAF2005 가이드 [2] - <씨네21>의 초이스 5편
2005-08-10
글 : 김현정 (객원기자)
글 : 김도훈
맥덜과 스폰지밥을 만나자

맥덜의 인생2: 파인애플 왕자

동그라미로만 이루어진 아기돼지 맥덜의 두 번째 이야기. 혼자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 맥빙 부인은 중년의 가난한 싱글맘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도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 맥빙 부인은 맥덜에게 동화책 대신 “옛날에 외로운 어린 왕자가 있었단다”로 시작되는 허무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이야기는 스스로 생명을 가지는 법. 두세 문장이 전부이던 짧은 이야기는 조금씩 자라나 가난한 처녀와 사랑을 나누고선 고국으로 떠나가버린 맥덜의 아버지 파인애플빵 왕자의 성장담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스무명 남짓한 스탭들만 데리고 <맥덜의 인생>을 완성했던 감독 토에 유엔은 맥덜이 사탕 포장지와 저금통 디자인을 휩쓰는 캐릭터 상품이 된 다음에도 느슨하고 자유롭고 사랑스러운 구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무너지는 홍콩의 오늘을 근심하고, 어느 순간, 환상처럼 떠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파인애플빵 왕자가 업그레이드하여 파인애플 타트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진지한 장면은 이 시리즈만의 독특한 유머. 꿈같은 잔디밭에서 “아빠는 과거를 보고, 엄마는 미래를 본다. 현재에는 나만 있다”고 독백하는 맥덜이 수채화처럼 연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잔상을 남기는 애니메이션이다.

스폰지밥

국내에서도 방영 중인 <보글보글 스폰지밥>을 장편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비키니 바텀에 살고 있는 스폰지밥은 패스트푸드점 크러스티 크랩의 요리사다. 그는 새로 생긴 2호점의 매니저가 되고 싶어하지만, 냉정한 주인 크랩스는 “너는 아직 꼬마잖니”라면서 스폰지밥의 꿈을 짓밟는다. 그러나 이 꼬마가 주인을 구할 것이다. 증오와 욕심에 불타는 플랭크톤은 넵튠 왕의 왕관을 훔치고선 크랩스에게 그 죄를 뒤집어 씌우고 크러스티 크랩까지 차지하고 만다. 스폰지밥은 낙천적이지만 멍청한 불가사리 친구 패트릭과 함께 왕관을 찾아 버거 자동차를 타고 먼길을 떠난다. <스폰지밥>은 인기있는 TV시리즈를 장편으로 만들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을 사뿐사뿐 피해간다. 서사에 집중하기보다 자잘한 재미를 주고, TV에서 그랬듯이 바닷속과 햄버거 가게라는 배경을 이용한 소품에도 신경을 쓴다. 매니저가 될 꿈에 부푼 스폰지밥과 패트릭이 함께 부르는 노래, 좌절한 그들이 아이스크림을 퍼먹고나서 난동을 부리고 주정하는 장면은 귀엽기 그지없다. <전격Z작전>의 추억의 스타 데이지드 핫셀호프가 실물 그대로 출연한다.

라이언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활동했던 라이언 라킨은 스물여섯살에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는 천재였고 그 세대 모든 애니메이터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애니메이션의 프랭크 자파”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빛나던 천재 애니메이터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코카인과 알코올 중독으로 나락에 떨어진 라킨은 고향 몬트리올 대로변에 서서 잔돈을 구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잔돈 있으세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슬픈 건 그가 치명적인 외상을 입은 지금까지도 자신이 캐나다 애니메이션을 바꾸어놓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한 감독 크리스 랜더러스는 3D애니메이션 기법에 초현실적인 손질을 더함으로써 짧고 독창적인 전기물을 완성했다. 라킨은 실사를 터치한 것처럼 사실적인 느낌이지만, 그것은 일부일 뿐이다. 벌레가 파먹은 듯 너덜거리는 육체, 커다란 안경 뒤에 숨은 불안한 얼굴, 갈라지는 목소리. 랜더러스는 라킨의 정신에 남았을 상처를 고스란히 육체로 옮겨온 것이다. 군데군데 삽입된 라이언 라킨의 전작도 귀중한 경험. 라이언의 추락에 관한 이야기, 라이언과 크리스의 관계를 담은 다큐멘터리 <라이언에 관하여-라이언 다큐>와 함께 상영된다.

밀크

8살짜리 소년은 아침마다 우유를 배달해주는 소녀에게 성적인 판타지를 지니고 있다. 소녀는 소년의 아버지와 성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어머니는 이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듯하다. <밀크>는 한 집안의 하루를 조용하고 내밀하게 따라간다. 여기에는 어떠한 이야기의 뼈대도, 직접적인 가족관계에 대한 언급도 없다. 이미지는 그저 가족 구성원들의 하루를 조용히 훑고 지나가다가 가끔식 멈추어서서 알 수 없는 깊이를 담은 순간에 머무른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이고르 코발료프 감독의 <밀크>는 단번에 의미를 알아챌 수는 없도록 직조되어 있다. <밀크>의 여운을 감지하려면 세심하게 차려진 이미지의 디테일들에 의식을 맡기고 찬찬히 따라가는 일이 필요하다.

카꾸렌보(숨바꼭질)

‘오토코요’라 불리는 숨바꼭질 게임을 한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떠도는 도시. 밤이 되자 여우가면을 쓴 아이들이 사라진 아이들의 비밀을 담고 있는 건물 속으로 몰래 들어간다. 건물은 서서히 오니(鬼)의 기운을 되살려내고, 아이들은 살아 움직이는 괴물들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카꾸렌보>는 무시무시하다. 괴물들은 자비심 없이 조그마한 아이들을 사냥하며, 마지막 장면까지도 일본의 괴기담이 뿜어내는 특유의 귀기가 차갑게 서려 있다. ‘2004년 일본미디어예술제’에서 일거에 주목을 끌어냈던 이 작품의 기술적 완성도는 <스팀보이>나 <애플시드> 같은 근래의 장편에 거의 뒤떨어지지 않는다. 전통적인 2D애니메이션의 성전인 일본이 3D기술을 이미지의 균열없이 얼마나 잘 흡수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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