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계명_플롯 짜기를 네 집 주춧돌 깔 듯이 하라
“방송사에서 무대감독을 하던 시절, 영화의 구조를 익히기 위해 일 끝내고 돌아와서 매일 B급영화 비디오를 3편씩 봤다. 영화의 기본, 공식을 알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영화를 봐야 한다. 그것도 감정을 배제하고 뼈대를 추려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중에도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B급영화들을 끊임없이 봤던 것은 무엇보다 이런 영화들이 만만하여 명성이나 다른 요소에 압도당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_장항준
소재와 주제가 확고해졌으니 하룻밤 안에라도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웬 시추에이션. 겨우겨우 20페이지 정도를 썼는데 더이상 쓸 이야기가 없으니 말이다. 드디어 구조 또는 플롯에 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구조란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해 어떤 과정들을 거쳐 어떻게 끝나는가에 관한 것이다.이만희 작가에 따르면 “플롯(구조)은 말 안 듣는 개(관객)를 고기 10점을 곳곳에 적절히 배치해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가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구조는 골격이다. “일단 구조만 확고하다면 장편시나리오도 보름 안에 다 쓸 수 있다”고 김희재 작가는 말한다. 안정적이고 촘촘한 골격이 있다면 살 붙이기는 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조는 초보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구조는 수학이자 공학”이란 말이 시나리오계의 정설이겠나. 초보라면 본격적 구조화에 들어가기 전 훈련을 거쳐야 한다. 그 방법은 ‘베껴쓰기’다. 심산 작가는 “일단 남의 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써보라”고 말한다. 그 또한 첫 작품을 준비할 때, <대부>를 수없이 보고 옮겨 적었다. “DVD를 볼 때 한 챕터만 보고 끈 다음에 이를 시나리오로 써보고, 숙련되면 한두 챕터만 보고 다음 챕터를 이어서 써보”는 이원재 작가의 방법이나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를 본 뒤 다시 시나리오를 보거나 그 역으로 영화-시나리오-영화 순서로 보”는 김희재 작가의 지침이나 모두 같은 맥락이다. 전범이 될 만한 영화를 베끼다 보면 이야기가 시작돼서 어디서 상승했다가 어디서 내려오는지 흐름이 잡힌다는 것. 이 단계까지 충실히 극복했다면, 구조화 방법론을 할리우드 스타일의 ‘3장구조’를 택하든 자신만의 ‘공법’을 만들든, 이제 장편에 걸맞은 호흡법을 갖추게 된 건 확실하다.
5계명_네 캐릭터를 숨쉬게 할지니라
“동료와 함께 공동창작을 하던 시절, 우리는 맘대로 정우성과 전지현의 이미지를 빌려왔다. 두 배우의 사진으로 작업실 벽을 도배했고, 그들이 출연한 전작은 물론 토크쇼까지 챙겨봤다. 그들의 말투와 행동과 표정을 모아 영양부족 상태의 우리 캐릭터에게 주었다. <영어완전정복>에서는 이나영을 내정해놓고 참조했다. <네 멋대로 해라>가 방영됐던 때인데 9급 공무원 나영주와 이나영이 어울려 보였다. 나중에는 정말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나영의 엉뚱함과 눈이 너무 커서 개구리 같다는 그녀의 농담까지 대사에 녹였다.” _노혜영
캐릭터란 주제를 이끌고 골고다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가상의 예수다. 그러나 캐릭터를 빚는 일이 말처럼 쉽진 않다. 캐릭터는 무엇보다 우리처럼 살아 숨쉬는 존재여야 한다. “캐릭터가 걷고, 화내고, 먹는 모습을 단번에 떠올릴 수 없다면 시나리오가 밍숭맹숭해진다”는 노혜영 작가는 캐릭터와 친해지기 위해서 그 혹은 그녀와 비슷한 이미지의 배우를 모델로 삼았다. 육상효 감독은 “얄팍한 인간이나 구조의 목적에만 맞는 인물을 만들어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초보자들의 경우, 캐릭터를 “특정 기능을 위한 로봇”으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뻣뻣한 캐릭터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방법은 또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을 본떠 만드는 것이다.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을, 엄마를, 친구를, 옆집 아저씨를 잠시 빌려와서 그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만들면 된다.”(고윤희 작가) 인물의 전사(前史)와 이름은 물론이고, 혈액형이나 별자리까지 신중하게 붙인다는 김희재 작가는 “신봉승 작가는 인물의 생시를 정해서 유명한 작명소에 찾아가기도 했다”는 에피소드까지 전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산 작가는 캐릭터를 빚을 때 “그냥 착하기만 하다고 감정이입이 잘되는 게 아니고 나쁜 놈이라고 해서 끝까지 나쁘기만 해선 안 된다”고 또 다른 숙제를 내놓는다. 박정우 감독도 “주요 캐릭터가 방방 뛰는 경우 보조 캐릭터까지 같이 뛰면 곤란하다. 보조 캐릭터는 잠깐 나왔다 사라지되 함축적인 연상을 가능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작가에게 캐릭터는 자식이다.
6계명_취재를 게을리하지 말되, 지나침이 없도록 할지니라
“캐릭터는 앉아서 부화되는 게 아니다. 적극적인 취재를 통해서만 캐릭터의 모양새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전작 <아이언 팜>은 미국에 거주할 때 내게 위안받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을 털어놓는 한 남자를 원치 않게 취재하면서, <달마야 서울가자> 또한 희한한 스님들이 실제로 있다는 일화를 듣게 되면서 시작했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코미디를 쓰려고 하는데 단속반이며 노동자, 자원봉사자까지 다 만나볼 생각이다. 어떤 경우 말투, 이름, 성격까지 그대로 모방할 생각도 갖고 있다. 지금 내게는 세줄짜리 이야기뿐이지만 취재를 통해 곧 단단한 눈덩이로 불어날 것이다.” _육상효 감독
취재는 기자만 하는 게 아니다.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은 경찰서에서 취재하다 노숙자로 오해받았다. 잘 알려졌듯이, <범죄의 재구성>의 별난 선수들은 최동훈 감독이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서 살을 붙인 인물들이다(참고로 <범죄의 재구성> 시나리오 제작기를 써서 보낸 뒤, 최 감독은 리얼 스토리가 공개될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며 <씨네21>에 특정 에피소드를 빼달라고까지 했다). “발로 뛰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다”라는 속설은 시나리오에도 해당된다. 특히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인물, 공간, 사건 등을 다뤄야 한다면 취재만큼 작가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없다. 박정우 작가는 “여행을 해보지 않은 이가 로드무비를 쓴다면 결국 휴게소를 들락거리며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도는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이다. 이해영 작가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한다. 실존 인물을 시나리오로 써보겠다던 한 후배가 술자리에 몇번 나가더니 “유년 시절도 다뤄야 할 것 같고 아무래도 2시간짜리 영화로 다루기엔 버거울 것 같다”며 포기하더라는 것이다. 이 작가는 “시나리오는 자료집이 아니다. 취합해서 옥석을 가리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애초 하려고 했던 이야기의 중심이 흐려지고 캐릭터마저 뭉개진다”고 말한다. 고윤희 작가도 취재의 덫에 대해 경고한다. “길가의 현수막 문구에서도 정보를 얻는 편이지만, 취재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작가는 설명적이 된다. 일수쟁이를 취재했다 치면 그걸 어떻게든 넣고 싶어하는데 그러다보면 불필요한 장면이 엄청 늘어난다”고 덧붙인다.
7계명_대사 쓰기를 너 말하듯 하라
“<파이란>에는 경수(공형진)가 강재(최민식)에게 죽은 파이란의 사진을 보여주며 ‘형 얘 예쁘지’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강재의 답은 ‘참 안됐다’ 뭐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강재가 교양있는 인간이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이렇게 고쳤다. ‘이년이 그때 그년이냐! 중국냄비가 예뻐봤자지.’ 내가 각색을 맡기 전 이 시나리오는 문학적으로는 아름다웠을지언정, 강재라는 진짜 인간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대사를 집중적으로 손보니 해결이 됐다.” _김해곤
캐릭터를 결정하고 취재까지 마쳤다면 대사와 지문을 통해 인물의 모습을 구체화하게 된다. 대사를 쓸 때 초보자가 범하기 쉬운 가장 큰 오류는 대사를 통해 모든 상황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육상효 감독은 “초심자는 시나리오를 쓰는 게 대사를 쓰는 것이라 착각한다. ‘나 실연당했어’라는 대사보다 구겨진 장미, 퀭한 얼굴을 보여주는 게 정보를 전달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한신을 만들 때 아예 대사 없이 만들어보고 정 안 되는 대목에 대사를 넣는 훈련을 해보라”고 권한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이 “아이, 왜 그러시어요”라거나 <겨울연가>의 배용준이 “아따, 왜 이럽니까요”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 대사는 캐릭터나 캐릭터의 관계를 드러낸다. 대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듯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다. “입에 붙지 않는 한국영화의 문어체 대사를 보면서 내가 쓰면 저렇게는 절대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는 박정우 감독은 “혼자 줄줄 구시렁거리면서 쓴다”고 말한다. 덕분에 그는 데뷔 때부터 ‘대사빨’ 하나는 대단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자신이 있다고 대사가 너무 길어지면 곤란하다. 고윤희 작가는 “그건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좋아’, ‘싫어’, ‘먹어’처럼 짧은 대사만으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전한다. 대사의 맛 또한 중요하다. 장항준 감독은 초보 시절 속담집이나 격언집을 챙겨보며 영감을 얻곤 했다. “속담집은 풍부하고 질퍽한 표현을 알게 해주며, 격언집은 말이란 게 짧고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얼음이 깨지기 전에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알 수 없다’는 에스키모 속담은 정말 훌륭하지 않나.”
응모만 해봐도 약이 된다
국내 시나리오 공모전 어떤 것이 있나
곳곳에서 열리는 시나리오 공모전은 생짜 초보 작가에겐 등용문의 의미보다는 쓰기 시작한 습작을 완성해야 할 동기를 부여한다는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초보자가 시나리오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를 갖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에 공모전이 적합하다고 기성 시나리오 작가들은 입을 모은다. 공모전에 원고를 제출할 때는 “최소한 2개월 전에 원고를 마무리짓고 꼼꼼하게 손을 보는 것”(심산)이 중요하고 “시나리오의 기본 포맷을 지키고, 시놉시스를 첨부하라고 할 때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육상효) 또한 중요하다. 그렇다고 왕초보 작가들이여, 지레 포기하진 말지어다. 처음 낸 시나리오가 덜컥 당선이 돼 상금과 명예, 그리고 영화화의 기회를 얻을지 모르지 않나.
올해 말까지 치러지는 행사 중 현재까지 발표된 시나리오 공모전으로는 제9회 서울이야기 시나리오.수필 공모가 있다. 청계천과 관련 주제를 대상으로 하며 당선자에게 1천만원, 우수상에 500만원의 상금이 돌아가며 저작권은 서울시에 귀속된다. 마감은 9월15일까지(문의: 02-3707-8451, http://www.seoul.go.kr). 대학생이라면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도 노려볼 만하다. 아직 공식 발표가 되지는 않았지만 원고는 9월 초부터 접수를 시작해 11월 초쯤 마감할 것으로 보인다. 당선되면 500만원의 상금과 15일간의 해외여행이 주어진다(문의: http://daesan.org). 2005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전은 과학기술이나 과학기술인을 소재로 삼은 시나리오의 시놉시스(200자 원고지 50매 분량)를 접수받는다. 마감은 9월30일까지(http://stl.dongascience.com).
매년 열리고 있는 정기 행사로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공모가 있다. 극영화 시나리오,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대상으로 하며 상금은 당선작 2천만원, 우수작 1천만원이다. 가장 권위있는 공모라 할 수 있으며 매년 5∼6월 사이에 접수를 받는다(http://www.kofic.or.kr/). 배우 한석규와 <씨네21>, 인터넷 한겨레가 공동주최하는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도 노려봄직하다. 대상 1천만원, 금상 500만원이며, 당선작이 영화화될 경우 4천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매년 3월경 접수를 마감한다(www.cine21.com). 이외에도 여러 일간지에서 신춘문예로 시나리오를 응모받고 있으나 확인이 필요하며, 배급사나 투자사, 제작사 등도 수시로 공모전을 개최한다. 영화사에 직접 연락하거나 홈페이지를 통해 수시로 응모할 수도 있다. 즉각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