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라인을 타고 하늘을 날다
스포츠 및 성장영화의 특성을 살린 <태풍태양>(2005)
푸른색 배경에 검은색 인간이 등장한다. 그림자처럼 새까만 캐릭터는 출발선에서 자세를 잡고 스케이터처럼 서 있다. 드디어 파스텔로 그린 듯한 거리 위를 교통표지판에 그려진 아이콘 같은 모습의 캐릭터가 달려나간다. 강한 비트의 음악에 보폭을 맞추듯이 빠른 속도로 집들과 거리를 누비는 검은 인간. 인라인을 타고 도시를 누비는 그의 몸동작은 댄서 같다. 빌딩숲 사이를 뛰어다니며 하프파이프(반원 모양의 스케이트를 타는 기구)를 오르내리는 그에게 봄볕이 내리쬔다. 땅 위의 질주만으로는 부족했던 그는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하얀 구름에 새겨지는 빨간색 제목 <태풍태양>. 양일석 팀장과 함께 이 오프닝을 만든 DTI 임배근 팀장은 “경쾌하게 시작되는 초반부를 만드는 동시에, 영화성격에 맞게 화려한 액션보다는 자아를 찾아가는 내면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경이 계속 바뀌고 액션이 많아서 작업은 다른 오프닝에 비해 2∼3배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전했다.
“역동적인 너무나 역동적인”
김광수/ PD·<질투는 나의 힘> <분홍신>
<태풍태양>의 타이틀 시퀀스는 영화 속 인물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잘 살렸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에서 모션그래픽의 예고편을 시도하는 것은 어려움이 많다. 게다가 한국영화에서 오프닝 시퀀스는 아직도 특별하게 고민되지 않는 영역이니까. 블록버스터나 스타 중심의 예산이 많은 영화가 아닌데 그런 것들을 꼼꼼히 고민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내용면으로도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라서 초반부에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내는 지점이 필요했는데 오프닝이 그 역할을 잘 소화했다.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 저리가라다!
코믹공포물답게 서두를 장식한 <귀신이 산다>(2004)
바람을 가르는 효과음과 함께 잔잔한 실로폰 소리가 들려온다. 웅장한 관악기 소리가 더해지면 크레딧들이 숨바꼭질을 하듯 나무 사이로 보였다가 사라진다. 화면은 수평으로 이동하다가 스테디캠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숲 안쪽으로 파고든다. 수직으로 떠오른 화면에는 불타는 집의 전경이 어른거린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귀신의 뒷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겁에 질린 얼굴의 주인공 필기(차승원)가 보인다. 대조적으로 귀신 연화(장서희)는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처럼 해맑게 그려졌다. 화면이 바뀌면 공사장 포클레인 옆에 앉은 김상진 감독의 옆얼굴과 크레딧이 등장한다. 화각이 넓어지면서 인부들의 전경을 비추는 화면에 제목이 새겨진다. ‘귀신ㅣ산다.’ 거기에 붉은 피가 한방울 떨어지면 완성되는 제목 ‘귀신이 산다’. 1분이 채 안 되는 <귀신이 산다>의 타이틀 시퀀스는 정적인 그림과 현란한 카메라워크가 대구를 이룬다. 급박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컷이 전환될 때마다 같은 모양의 이미지로 연결되는 세밀한 편집으로 보완되었다. 전체적인 그림체와 색감은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를 연상케 한다.
“코믹과 공포 둘다 소화했다”
이수영/ CG·DTI 기획팀장
<귀신이 산다>는 공포물을 표방하지만 사실 내적으로는 코미디영화에 가깝다. 따라서 한쪽 장르로 편향되는 타이틀 시퀀스이나 상투적인 장르물의 오프닝을 탈피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것 같다. 이를테면 필기의 이미지는 공포영화의 그것이라면, 연화는 멜로나 코미디적 감수성으로 그려졌다. 복합적인 장르의 성격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다른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감 있는 구성을 통해 영화 전체의 특징을 잘 포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