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타이틀 시퀀스 베스트10 [4] - <아라한장풍대작전> <그때 그사람들>
2005-08-18
글 : 김수경

현란한 칼놀림에 압도당하다

애니메이션 오프닝이 인상적인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노년의 도인들이 세상에 대한 푸념을 마치면, 대나무 두루마리(죽간)가 빠르게 화면에 펼쳐진다. 검과 도를 쥔 두 남자 캐릭터가 주연들의 이름을 요란한 굉음과 함께 죽간이라는 화폭에 써내려간다. 죽간이 감기고 새로운 죽간이 깔릴 때마다 창, 쌍도, 봉, 쌍검 등 제각기 다른 병장기들이 무사들의 손에 쥐어지고, 모자를 비롯한 의상에도 미세한 변화가 생겨난다. 순서상으로는 죽간이 스르륵 펼쳐지면 배역이나 역할이 빨간색 인장으로 미리 찍혀 있다. 그리고는 화면 전체에 펼쳐진 죽간 위에 무사들이 현란한 몸놀림으로 인장 아래 이름을 적어넣는다. 칼놀림에 글이 적혀나갈 때마다 글자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칼에서는 빛이 번득인다. 타이틀 시퀀스의 말미에 제목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적는 무사의 몸짓은 그러한 디테일을 실감하게 한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이 작품의 특수효과 담당이자,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어 <청연>과 <태풍>으로 대작 비주얼의 선두주자로 자리잡은 강종익 대표의 인사이트 비주얼이 만들었다

“무협물에 딱 어울린다”

이유진/ PD·<달콤한 인생>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오프닝은 무협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심플하지만 힘있는 동작들을 적절하게 배치한 타이틀 시퀀스다. 실사보다 동작이 선명한 애니메이션을 택한 방법론도 효과적이었다. 귀여운 복고풍의 무술 캐릭터가 문자를 파내는 간결한 이미지와 예스러운 활자체는 도시를 배경으로 삼는 무협 이야기라는 영화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 경쾌한 속도로 진행되는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처럼 오프닝의 캐릭터들이 글자들을 써내려가는 시원한 움직임에 주목할 것.


<아라한 장풍대작전>
<그때 그 사람들>

그때 그 오프닝은 있었다

사법부 결정으로 타이틀 3분50초가 삭제된 <그때 그 사람들>(2004)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라는 자막이 까만 화면에 깔린다. 작품에 참여했던 회사들의 크레딧이 지나가고 침묵을 깨는 탱고풍의 음악이 나오면서 또 다른 자막이 떠오른다. ‘이 장면은 2005년 1월31일 대한민국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의 결정에 따라 삭제되었습니다’라는 설명이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화면에 주제음악이 50초쯤 흐르면 어른거리는 불빛 사이로 제목 <그때 그 사람들>이 나타난다. 박지만씨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불붙기 시작한 <그때 그 사람들>을 둘러싼 논란은 전술한 자막의 내용대로 사법부의 시대착오적 결정으로 인해 총 3분50초의 분량을 삭제당한 채로 상영되어야 했다.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펼쳐진 시사회를 비롯하여 DVD도 삭제된 극장상영본으로 출시되었다. 다시 말해 현재도 <그때 그 사람들>의 타이틀 시퀀스는 암흑 속에서 소리만 존재하는 상태다.

“현재 한국영화의 근본적인 아이러니”

최동훈/ 영화감독·<범죄의 재구성>

<그때 그사람들>의 오프닝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봐야 할 만한, 그러나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한 타이틀 시퀀스다. 운좋게도 나는 시사회에서 봤다. (웃음) <그때 그사람들>의 검게 가려진 오프닝 시퀀스에는 현재 한국영화가 가진 근본적인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거칠게 말해, ‘예술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뭘 하려 해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똑똑하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만 피곤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까. 전쟁기념관에 놀러가는 기분으로 볼 수 있는 유쾌한 타이틀 시퀀스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어둠 속에 방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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