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2005 [3] - 9월3일~4일
2005-08-26
글 : 문석
글 : 박은영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9/3(토) 05:00 p.m.

<폐허속의 수업> Lesson from Bam/ 알리레자 가니/ 23분/ 오스트리아, 이란, 호주/ 2004년/ 방송 오후 5시

“2003년 12월26일 금요일 아침 5시17분 이란 남동부에 위치한 비옥한 사막도시 밤 지역에 진도 6.8의 강진이 12초간 엄습해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이 말이 끝나면, 누군가 외친다. “신이시여 우리 애들이 무슨 죄가 있나요?”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배워야 한다. <폐허속의 수업>은 그 지진의 땅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교실풍경을 담는다.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배움터가 이 영화의 전부인 셈이다. 스무명 남짓한 학생들은 지진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글로 써서 발표한다. 그러나 유독 어린 소녀 하나만 읽으려 하지 않는다. 신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그것을 수업이 끝나서야 선생님에게만 조용히 들려준다. 감독 알리레자 가니는 다큐멘터리 양식을 극영화에 차용한 이란영화의 전통을 다시 돌려 세운 뒤, 극영화 같은 짧은 다큐멘터리 한편을 완성했다.

9/3(토) 07:00 p.m.

<다큐의 거장, 페니 베이커와 헤지더스 이야기> See What Happens-The Story of DA Pennebaker and Chris Hegedus/ 제럴드 호프먼 리/ 85분/ 독일/ 2005년/ 방송 오후 7시

기타를 부수고, 불을 피우며 의식을 치르던 그 유명한 지미 헨드릭스의 모습이 담긴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을 연출한 사람이 페니 베이커다. 시를 읊듯 중얼거리며 첫 투어를 하던 밥 딜런을 뒤쫓아다니며 담았던 <뒤돌아보지마라>의 연출자도 페니 베이커다. 존 레넌, 데이비드 보위, 디페시 모드까지 그의 주인공들은 많았다. 페니 베이커는 미국 민주당의 혈족들인 케네디와 클린턴의 선거 유세 다큐멘터리까지 맡았었다. <다큐의 거장, 페니 베이커와 헤지더스 이야기>는 다이렉트 시네마의 한 주축인 페니 베이커와 그의 동료이자 아내인 크리스 헤지더스의 영화작업을 되돌아본다. 그 반추의 시간 속에서 관객은 그의 영화 클립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재미까지 선사받는다. 다이렉트 시네마의 대부 리처드 리콕의 논평을 듣는 건 부록이다.

9/3(토) 08:30 p.m.

<카메라 앵글 속의 아버지> Tell Them Who You Are/ 마크 웩슬러/ 95분/ 미국/ 2004년/ 방송 오후 8시30분(상영 9월1일 오후 2시10분)

“여기에 포커스를 맞춘 다음 나를 줌으로 당기려무나.” 감독에게 피사체가 촬영방법에 대해 조언을 하다니 이게 웬 황당한 시추에이션? 하지만 이 카메라 앵글 안의 주인공이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촬영감독이며, 극영화 연출자이자 CF감독인 하스켈 웩슬러라는 사실과 이 영화의 감독이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거만한 태도는 이해가 된다. 언뜻 보기에 <카메라 앵글…>은 하스켈 웩슬러의 수십년간의 공적을 그리는 전기영화인 듯하다. 베트남 전장을 찾아가 베트콩의 삶을 보여주거나(<적으로의 안내>), 흑인 인권운동을 다루거나(<버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반군을 생생하게 보여줬던(<라티노>) 그의 다큐 연출세계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바운드 포 글로리>로 두 차례 오스카상을 받은 촬영감독으로서의 삶이 어찌 극적이지 않으랴. 그러나 아들인 마크에게 아버지 하스켈은 가족에게 무심했던 철없는 진보주의자의 인상으로 남아 있는 존재다. <카메라 앵글…>은 카메라 렌즈를 매개로 아버지와 아들이,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쿨한 감동의 영화다

9/3(토) 10:10 p.m.

<소이 쿠바, 거장과 남은 이야기들> I am Cuba, The Siberian Mammoth/ 빈센테 페라즈/ 90분/ 브라질/ 2004년/ 방송 3일 밤 10시10분(상영 8월31일 오후 3시50분)

구소련의 감독 미하일 칼라토조프가 쿠바로 원정을 가서 만들었던 <내 이름은 쿠바>의 탄생과 실패, 부활의 여정을 따라잡은 작품. 1960년대 초반 설립된 쿠바 영화예술 및 영화산업기구의 초청을 받은 칼라토조프는 쿠바 혁명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하는데, 제작 중에 미국의 쿠바 해안 봉쇄 소식을 접하고 ‘영화적 투쟁’에 박차를 가한다. 생소한 쿠바의 문화를 익히고, 현지 스탭과 조율하고, 규모와 영상에 대한 욕심을 키우면서 제작기간은 2년으로 늘어났지만, 결과물에 대해선 쿠바에서도 소련에서도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훗날 마틴 스코시즈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발견해 서구에 소개하고 재평가했지만, 제작진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감회에 젖을 뿐, 노인이 된 그들은 크게 반색하지 않는다. “열대지방의 모래사장에서 발견된 시베리아 매머드의 화석” 같은 영화의 파란만장한 여정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9/3(토) 11:40 p.m.

<더블린으로 가는 길> The Making of Rocky Road & Rocky Road to Dublin/ 볼 듀앤, 피터 레넌/ 97분/ 아일랜드/ 2004년/ 방송 밤 11시40분(상영 8월31일 오후 2시10분)

<더블린으로 가는 길>은 1967년에 완성한 다큐멘터리 ‘<더블린으로 가는 험난한 길>에 관한 메이킹 다큐멘터리’다. 67년 제작된 <더블린으로 가는 험난한 길>은 제작 이후 수십년간 아일랜드에서 상영금지되었고, 68년 칸영화제에 진출했지만 결국 상영되지 못했다. <더블린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그 지난했던 영화의 운명을 감독의 설명과 함께 되짚어 간다. 영화를 촬영했던 프랑스의 유명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도가 노년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당시를 회상한다. 68혁명의 기운 속에서 영화제 저지를 위해 좌중을 선동하던 고다르와 트뤼포의 단상, 그 유명한 자리 앞에 젊은 시절의 피터 레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입장을 펼친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다.

9/4(일) 09:30 a.m.

<끝나지 않는 선율> Stroke/ 카타리나 페터스/ 111분/ 독일/ 2004년/ 방송 오전 9시30분(상영 8월30일 밤 9시)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던 카타리나 페터스는 촉망받는 첼리스트 보리스와 결혼하지만, 그는 곧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페터스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남편이 투병하는 과정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정성을 기울여 간호한 덕에 병원에서도 장담하지 않았던 남편의 병세는 조금씩 호전돼간다. <끝나지 않는 선율>은 스토리라인만 놓고 보면, 가족의 사랑으로 병마를 이긴 환자의 재활 성공담으로 비칠 수 있지만, 환자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진저리나는 긴 투병의 세월을 사랑의 이름으로 미화하지만은 않는다. 위기를 넘긴 듯 보였던 부부가 뜻밖의 갈등을 겪는 의외의 반전도 있고, 보호자 자신이 ‘기록자’의 입장에서 겪는 딜레마도 노출된다.

9/4(일) 12:30 p.m.

아버지와 아들 Father to Son/ 비사 코이소 칸틸라/ 58분/ 핀란드/ 2004년/ 방송 오후 12시30분

영화가 시작되면 우는 아들을 달래지 못해 난감해하는 감독의 모습이 보이고, 이런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난 아버지를 때린 적은 없다. 그게 더 후회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자신과 아들, 4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이지만, 오랜 세월 불화했던 아버지를 만날 일이 고통스럽다. 그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에게서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영화 만들기를 제안한 터였다. 인터뷰 자리에 거울을 두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촬영하는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보이도록 배치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작업은 감독 자신의 고백이자 치유의 과정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악몽이었던 아버지와 마주해야만 한다.

9/4(일) 01:30 p.m.

<나의 아버지, 건축가 루이스 칸> My Architect: A Son’s Journey/ 나다니엘 칸/ 116분/ 미국/ 2003년/ 방송 오후 1시30분

건축가 루이스 칸은 1974년 심장마비로 공중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그는 파산한 채로 인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권에서 주소를 지운 까닭에 그의 시신은 방치되었고, 그 죽음은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11살이던 아들 나다니엘 칸은 부고란 유족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 루이스 칸이 혼외관계로 낳은 아들이었던 그에겐 머리맡에서 책장을 넘겨주던 커다란 손,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만든 그림책이 추억의 전부다. 30년이 흐른 뒤 아버지를 알고 싶다는 열망으로, 아들은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선다. 그는 지인들의 이야기와 자료들을 토대로 아버지의 성장과 출세기를 조합해보기도 하고, 캘리포니아 솔크 생물학 연구소, 텍사스 킴벨 미술관 등 유난히 빛과 질감과 환경을 고려했던 아버지의 대표작들을 둘러보고, 프랭크 게리 등 동세대 건축가들을 만나 건축가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청하기도 한다.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한 아버지의 세 여인, 그들에게서 태어난 이복 누이들과의 만남도 어렵사리 이뤄낸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지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던 아버지의 존재는 후기작인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에 들러서야 실체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신화’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아버지 루이스 칸을 이해해가는 아들의 여정은 은근하면서도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것을 비롯, 2004년 베스트 영화로 거론되는 등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얻은 작품이다.

9/4(일) 03:30 p.m.

72년 미대통령 후보, 흑인여성 치솜 Chisholm ’72- Unbought & Unbossed/ 숄라 린치/ 77분/ 미국/ 2004년/ 방송 오후 3시30분

197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에 일대 파란이 일어난다. 최초의 흑인 여성 국회의원 셜리 치즘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베트남전 파병 반대운동과 흑인 민권운동의 중심부에서 등장한 치즘은 아직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미국사회에 충격을 던지며 선거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미국 주류사회뿐 아니라 흑인사회에서조차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흑인과 여성이라는 두개의 마이너리티를 동시에 대변하고자 했던 그의 무모하지만 용감했던 행적이 이 영화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9/4(일) 10:25 p.m.

기적의 칸딜 Miracle of Candeal/ 페르난도 트루에바/ 133분/ 스페인/ 2005년/ 방송 오후 10시25분(상영 9월1일 밤 8시30분)

<기적의 칸딜>은 음악을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다. 쿠바 출생이지만 오랜 세월 스웨덴에서 음악생활을 해온 노년의 피아니스트 거장 베보 발데스, 그가 브라질의 도시 살바도르 데 바히아를 찾아 음악과 종교와 사람들을 만난다. 베보 발데스는 동년배의 브라질 음악가 마테우스를 비롯하여, 슬럼가 칸딜에서 음악으로 청소년들을 교화하고 있는 젊은 음악가 칼린호스 브라운도 만난다. 곧잘 그들과 어울려 나이를 뛰어넘고, 국적을 뛰어넘어 함께 연주도 한다. 마침내 영화의 끝부분에 이르면 거대한 축제의 한마당이 펼쳐진다. 온갖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 사랑과 화합으로 즐거워하며 음악 축제를 연다. <기적의 칸딜>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로운 음악 여행이다. 베보 발데스가 그들과 함께 만든 앨범은 이미 <칸딜의 기적>이라는 타이틀로 국내에도 나와 있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