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김동원 vs 대니얼 고든 [1]
2005-08-30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정리 : 이영진
<송환>의 김동원 감독, <어떤 나라> <천리마 축구단>의 대니얼 고든 감독을 만나다

김동원 감독은 얼마 전부터 북행(北行)을 서두르고 있다. <송환>의 상영을 위해서도 아니고, <송환> 이후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도 아니다. 북으로 돌아간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을 뵐 수만 있다면 “카메라를 두고라도 북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지금까지 그는 두 차례 북한에 갈 기회가 있었으나 출발 직전에 모두 무산됐다). <천리마 축구단> <어떤 나라>의 개봉을 앞두고 한국에 온 대니얼 고든과의 대담 제의에 김동원 감독이 선뜻 응했던 것도 그런 조급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어떤 나라>가 상영되면서 국내에 알려진 영국 셰필드 출신의 대니얼 고든은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아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최초의 인물. 김동원 감독은 “10번 이상 카메라를 들고 북한을 오간” 대니얼 고든과 지난해 부산에서 만나 안면을 텄지만, 한번의 만남으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하진 못했을 것이다. 8월16일, 대학로의 한 남도음식점에서 이뤄진 두 사람의 대화는 그러나 서로의 관심을 확인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두손으로 소주를 따르는 대니얼 고든의 돌발 행위에 깜짝 놀라 김동원 감독이 뒤늦게 두손으로 술잔을 받쳐드는 등의 해프닝으로 자리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지만, 한반도를 바라보는 서로의 시각을 논할 때는 진지했고, 때론 날이 섰다.

김동원/ (홍어를 가리키며) 이게 뭔지 아나.

대니얼 고든/ 회 아닌가? 부산영화제 때 먹어봤다.

김동원/ 부산에서는 안 잡힌다. 서해안에서만 잡힌다. 실제로 부산 사람들은 안 좋아할 거다. 이 음식을 삼합이라고 부른다. (홍어를 가리키며) 원, (돼지고기를 가리키며) 투, (김치를 가리키며) 스리.

대니얼 고든/ 김치는 정말 맛있다.

김동원/ 비싸서 좀처럼 맛보기 힘든 음식이다.

대니얼 고든/ 내가 다 먹어야겠네. (홍어를 삼키고선) 딱딱한 질감인데 맛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맛있다고 할 수밖에.

김동원/ 몸에 좋다.

대니얼 고든/ 한국 사람들은 다 몸에 좋다고 한다. 북한에서 인삼은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 술 안 먹는다고 해도 인삼주니까 괜찮다고 한다. 처음에 소주를 줄 때는 ‘솓 유!’(Sod you!)라고 욕하는 줄 알고, 나도 ‘퍽 유!’라고 했다. (웃음)

북한을 촬영하기까지 4년 걸렸다

김동원/ <송환>의 할아버지들을 촬영한 CD는 잘 받았다.

대니얼 고든/ 만경대를 배경으로 서 있는 할아버지들 모습을 봤을 때 어땠나.

김동원/ 많이 늙으셨구나 싶더라. 그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대니얼 고든/ 나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나의 유년 시절 영웅이었던 <천리마 축구단>의 할아버지들이 조금씩 늙으셔서 걱정이 된다. 혹시 이번에 뵙는 게 마지막이 아닌가 싶어서. 촬영하면서 생겼던 친밀감이 이제는 감정적인 애착으로 커졌다. <어떤 나라>의 현순, 송연과도 우정이 쌓였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 걱정은 안 하는데.

김동원/ 현순이나 송연이도 많이 컸겠다.

대니얼 고든/ 현순은 16살인데 이제 아가씨 티가 난다. 13살인 송연이는 아직 애다. 아, 오늘 8·15 기념 공연에 두 사람 모두 참가한다. <어떤 나라> 마지막에 매스게임 공연이 언제 또 열릴지 모른다고 했는데, 그때 이후로 첫 공연이다. 10월에 있는 당 행사까지 두달 동안 계속 공연을 할 것이다.

김동원/ 북한 주민들과 할아버지들이 그닥 큰 거리감 없이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대니얼 고든/ 북한 인민들 사이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자기 사상을 꺾지 않고 버텼기 때문에 찾아온 당연한 대접이고 결과일 것이다. 남한에서 그들이 겪었던 시련은 뉴스를 통해서 대략적으로만 짐작하고 있었는데 <송환>을 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김동원/ 유년 시절 아버지가 보여줬던 1966년 월드컵 기록영상이 <천리마 축구단>을 만들게 된 계기라고 들었다. 혹시 FIFA에서 만든 공식 다큐멘터리였나.

대니얼 고든/ 맞다. 1966년 월드컵 우승국은 영국이었지만, 당시 경기를 봤던 영국 사람들은 북한팀에 대한 기억을 더 강하게 갖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 테이프를 본 뒤 그들은 나의 우상이 됐다. 지금도 그 흑백영상은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김동원/ 중·고등학교 다닐 무렵에 나도 그거 봤다. 한국에서는 우미관에서 극장 개봉했었다. 그런데 북한 선수들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검열에서 잘렸나보다. (8강전에서 북한과 맞붙었던) 포르투갈의 스타 에우제비오만 기억난다.

대니얼 고든/ 아마 그랬을 것이다. 당시 남한 신문을 보면 8강에 오른 나라들을 적어놨는데 세어보면 7개팀밖에 없다. 북한은 빠져 있는 거지.

김동원/ 어떻게 알았나. 직접 확인했나.

대니얼 고든/ 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웃음) 실은 런던의 한국대사관에서 일하던 지인이 있는데 그가 말해준 것이다. 66년 월드컵이 있었을 때 남한 방송에서는 북한의 월드컵 진출 사실을 다루지 않아서 그는 담요를 뒤집어 쓰고 북한 라디오 방송을 청취했다고 하더라. 당시 신문기사 내용도 친구가 말해줬다.

김동원/ 호기심을 품게 된 것과 그것을 소재로 다큐를 찍는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떻게 카메라를 들고 북쪽과 접촉을 시도할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텐데.

대니얼 고든/ 주위에서 모두 반대했다. 북한에서 촬영 허락을 해주지도 않을 것이며, 어느 방송사에서 이런 내용의 다큐멘터리 판권을 사려고 하겠느냐고들 했다. 그런데 모든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이런 상황에서 그렇지 않나? 오기가 생기더라. 결국 촬영허가를 받아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이번에는 제작사에서 못하겠다고 발을 뺐다. 그래서 독립제작사를 차려서 1년 동안 투자받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북한쪽에는 제발 1년 동안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대략 4년 정도 걸렸다.

김동원/ 난 한번도 못 갔는데 13번이나 북한에 갔다니까 부럽다.

대니얼 고든/ <송환> 때 북한에 가려다 중도에 무산됐다고 들었다.

김동원/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북관계가 경색됐었다. 두번 갈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직전에 계획이 틀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6·15 때도 갈 수 있었는데 외국 가느라고 못 갔다. <송환>이 북한에서 상영되고, 또 할아버지들을 촬영하고 싶은 것이 그 다음 소망이지만, 그건 아직은 무리다. 북한을 방문하는 것과는 또 다른 (절차가 필요한) 문제니까. 지금은 마음이 급해져서 카메라 없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대니얼 고든/ 내게 촬영허가를 내준 북한으로서도 큰 도박이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영국 사람이라는 것이 작용했겠지. 난 남한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니니까. 게다가 광적인 축구 팬이라고 하니 북한 당국에서도 다른 목적을 갖고서 접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의 삶도 우리처럼 평범하다

김동원/ <천리마 축구단>에 비해 <어떤 나라>는 소재나 접근방식이 좀더 민감한 부분까지 건드린다. 집단체조를 다루다보니 북한 체제에 대한 언급을 할 수밖에 없어서였을 텐데. 당신에겐 또 다른 모험이었을 테고, 따라서 전작보다 부담감이 컸을 것 같다.

대니얼 고든/ 촬영원칙이 판단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려고 했지만 그게 100% 관철되긴 어렵다는 것을 스탭들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나라>의 경우, 인위적인 연출 대신 두 소녀의 일상에 집중하면 된다고 봤다. 다만, 그들이 겪고 있는 삶들을 따르다보니 정치적인 상황이나 현재 이들의 고통을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에는 필요하다면 보여주되, 내레이션 등으로 내 의견을 강요하지 말자, 모든 판단은 관객에게 맡기자는 원칙을 세웠다. 송연의 어머니가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발언하는 것도 생각만큼 촬영이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가 자신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왜 이라크 다음으로 자신들이 공격 대상으로 지목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북한 당국이 촬영허가를 내준 것도 서방세계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서일지 모르겠다. <어떤 나라>에서 송연의 엄마가 TV 그만 보고 숙제하라고 하는 것이나 현순이가 체조연습을 빼먹는 것이나 북한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어떤 나라>는 그들의 삶도 우리처럼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김동원/ 현재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 <경계를 넘어>(Crossing the line)도 북한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카메라를 든 당신에게 북한은 어떤 의미인가. 북한에 관한 계속적인 다큐 작업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나라

대니얼 고든/ <천리마 축구단> 하면서 이 나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하구나 처음 알게 됐고, 감동했다. 오랜 기간 준비했던 것과 달리 두 번째 작품을 매스게임으로 한다고 했더니 바로 찍어도 좋다고 했다. 북한쪽에서는 우리를 이용해 대외적인 선전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 팀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았다면 다큐 제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작품도 촬영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나라에 우리만이 들어가서 찍을 수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 아닌가. 게다가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나라 아닌가.

김동원/ 북한이 흥미로운 국가라. 내게는 그런 발언들이 외부인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게 북한은 동족이거나 원수거나, 대개 둘 중 하나다. 내 경우에 북한에 대한 관심은 약자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국제사회가 북한문제를 힘의 논리로 해결하려는 지금까지의 상황은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말한 중립적 혹은 객관적인 입장이 어떻게 가능한지, 또 올바른지는 의문이다. 난 여전히 다큐멘터리가 약자의 관점에 서야 한다고, 그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는 북한의 편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니얼 고든/ 내게도 연민의 시선이 있고, 비판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 다만, 두 작품을 제작하면서 매 순간 나도 한명의 외국인일 뿐이구나, 한계를 느꼈다. 내가 만들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만들고 나서 어느 쪽에서나 욕을 먹는 것은 아닌가 하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실제로 (외국인의 시선이 갖는) 단점이 분명 있겠지만, 반면에 그런 무모함들 때문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자위한다.

김동원/ 선댄스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의 윤리에 관한 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나와 함께 패널로 나온 CBS의 다큐멘터리 디렉터는 촬영하는 사람한테 방송되기 전에 결과물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하더라. 방송 다큐멘터리의 불문율이라는 거지. 난 그 자리에서 출연자가 원한다면 꼭 보여줘야 한다고 반대로 말했다. 그 사람은 출연자의 요구나 강압으로부터 감독이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서 방송 전에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난 다큐는 출연자와 함께하는 공동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출연자와 타협을 하거나 내가 짊어지고 강행하거나 하는 장면들이 발생한다.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건 조금 달라지겠지. 권력을 갖고 있는 이라면 안 보여주는 것이 좋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민중이라면 난 당연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니까.

대니얼 고든/ 출연자에게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고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두편의 영화의 경우, 북한쪽에 보여주지 않았고, 먼저 영국에서 상영한 뒤 그 상영 버전을 북한에 보냈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제재가 있지는 않을까 몇 가지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이야기 자체가 갖는 진실성 혹은 캐릭터가 갖는 진실성을 믿고 따라가면 된다고 본다. 대상과 많은 시간을 지내게 되면 자연스럽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는 법이니까.

김동원/ 논쟁을 좀 해보려고 했더니 잘도 피해가네. (웃음)

통역 이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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