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김동원 vs 대니얼 고든 [2]
2005-08-30
글 : 서지형 (스틸기사)
정리 : 이영진

모든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김동원/ <송환> 순회상영하다 느낀 건데. 서구사회가 남한사회보다 더 보수적이구나 느꼈다. 북한에 대해 지나치게 편파적인 영화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남한에서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서 놀랐었다. 북한을 너무 미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적은 없나.

대니얼 고든/ 서구와 남한, 어느 쪽이 더 보수적인지는 모르겠다. 난 부산영화제에서도 답변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주장만을 제시하는 관객도 봤으니까. 미국의 어떤 관객은 현순과 송연이 사는 평양의 아파트가 너무 좋지 않냐고까지 물었다. 진짜일 리가 없다, 선전용이다, 하는 거다. 보면 알겠지만 현순의 가족 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방이 없어 거실에서 자야 한다. 그걸 보고 사치스럽다고 하다니. 내가 만든 다큐들을 보고서 누군가는 ‘저건, 가짜야’라고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우리랑 사는 게 똑같구나’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판단은 관객이 하는 것이니까.

김동원/ <어떤 나라>를 내가 처음 본 것은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였다. 푸른영상 친구들과 같이 봤는데 반응이 갈리더라. 잘 만들었니 못 만들었니 하는 말은 아니다. 한편은 북한에 대해서 우호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고 했고, 또 한편은 좀 북한 체제에 대해 시니컬하다고 했다. 대조적인 반응이 동시에 나온 거다. 난 당신이 정말 교묘하다고 생각했다.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잘 맞춰서 당신의 판단을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서구사회에서도 보여지고, 한편 평양영화제에서 보여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이건 보통 사람들이 갖기 힘든 균형감각인데 편집을 보면 상당히 계산된 것임이 느껴졌다.

대니얼 고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나.

김동원/ 사실 <어떤 나라>의 시작 부분에서 당황했다. 경외하는 김정일 동지의 은총을 입어서 지금 체조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멘트부터 나오니까. 이거 정말 세구나 싶었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이런 멘트들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서는 거부감이 생기지 않더라. 중간에 식량문제라든가 정전이라든가 북이 처한 상황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데 심각한 방식이 아니라 위트있게 내보이고 있고. 부정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다 보니 다큐가 묘한 이중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대니얼 고든/ 나도 하나 물어보자. <송환>의 경우, 시작 부분에서 반공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이 작품을 싫어했을 것 같다는 내레이션에 이어 할아버지들도 이 작품을 썩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김동원/ 영화 보면 나 같은 사람은 북한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하지 않나. <송환>에는 북에 대한 비판적인 코멘트가 있다. 인권문제가 심각하다든지 하는. 평양에서 <송환>이 상영되지 못하는 가장 분명한 이유일 것이다. 촬영하면서도 할아버지들께 북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북한을 싫어한다는 말로 받아들이실 수도 있으니까.

대니얼 고든/ 남쪽에 남아계신 할아버지들은 <송환>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

김동원/ 다들 100%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할아버지들이 불만이 있겠지만 그냥 수고했다 그러시는 정도다. 이 정도라도 만들어준 것이 용기있는 일이다, 라고 하시는 분도 있는 반면, 어떤 분은 너무 재미없다고 하신다. 너무 비정치적이고 탈역사적인 다큐멘터리라는 거지.

<천리마 축구단> 보며 할아버지들이 우셨다

대니얼 고든/ 우리 할아버지들의 경우도 <어떤 나라>는 별로라고 하더라. 본인들이 나오는 <천리마 축구단>이 훨씬 재밌다면서. (웃음) 하긴, <천리마 축구단> 상영 때 다들 우셨다. 이후에 미들즈브러에 함께 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너무 우시는 바람에 ‘그만 좀 눈물 짜시고 남자답게 굴라’고까지 했다. (웃음)

김동원/ <송환>은 주로 나오신 분들이 7, 8명밖에 안 되는데 나머지 선생들께서 섭섭해하실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들 중에서도 내가 더 좋아하는 분이 있고 안 좋아하는 분이 있고 하니까. 아무래도 촬영하면서는 가깝게 지낸 분들을 더 많이 찍게 된다. 나중에는 누가 몇초 더 나오느냐 하는 것까지 신경이 쓰인다. 김선명 선생의 경우, 그전에 다른 매체들에서 너무 많이 다뤘기 때문에 <송환>에서만이라도 안학섭 선생이 김 선생보다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미리 염두에 뒀을 정도로 외적인 요인들 때문에 구성에 애를 먹었다.

대니얼 고든/ 등번호 6번인 임성휘라는 분도 촬영하면서 너무 많이 도와주셨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인데 결국 2컷밖에 안 나오게 됐다. 내 분량이 이것밖에 안 되네, 하셨을 것이다.

김동원/ 당신의 신작 데모 테이프를 봤는데 정말이지 대단한 세일즈맨이다. 이슈나 소재를 잡아내는 능력이 남다른 것 같다. 내가 방송사 사장이라도 저거 사야지 싶더라니까. BBC와 씨네콰논 말고 또 어디서 판권 구입 의사를 밝혔나? 유럽쪽 다른 나라인가.

대니얼 고든/ 아니. 한국의 동숭. (웃음)

김동원/ 당신의 현재 작업은 얼마나 진행된 상태인가.

대니얼 고든/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해서 1년여 정도 찍었다. 미국이랑 일본이랑 평양을 오가면서.

김동원/ 완전히 블록버스터네. 10월까지 마무리할 것이라고 들었는데 내년 선댄스에 낼 계획인가.

대니얼 고든/ 그쪽에서 내 자리를 마련해주면 나야 고맙지. (웃음) 최종 버전 완성은 10월 이후겠지만 대략 그때까지 마무리하려고 한다.

김동원/ 그 이전까지 마무리되면 서울국제페스티벌에도 보내달라.

대니얼 고든/ 물론. 대략 90분 정도가 될 것이다.

김동원/ 이번 작품은 1960년대 월북한 미군 병사의 이야기다. 살아남은 2명의 상반된 증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한명은 평양에서 북한 여성과 결혼해서 살고 있고, 또 한명은 미국으로 건너가 북한이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고 있고. 아무래도 이번 작품은 당신에게 아주 위험할 수 있겠다.

대니얼 고든/ 그래서 이번 작품이 끝나면 우간다로 갈 생각이다. (웃음)

김동원/ 후회할걸.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지 모른다. 올해 7월14일을 기점으로 북미, 남북 관계가 새롭게 전환할 것이다.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원하는 미국의 전략을 모르지 않는 이상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 진전에 노력을 기할 것이다. 점쟁이가 아니라서 자신할 순 없지만. 당신은 북한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보나.

남북이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이해하길

대니얼 고든/ 북한의 변화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필요성을 느낄 때만 가능하다. 2002년만 하더라도 북한은 각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는데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함께 긴박한 세계 정세 속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사그라들었다.

김동원/ 며칠 전에 남북 통일축구를 보러 갔는데 남한이 골을 넣자 관중이 너무 좋아하더라. 2 대 0이면 모르겠는데 3 대 0이 됐는데도 그러니까 저건 좀 아닌데, 싶더라고. 장기수 할아버지들은 2 대 0이 되기도 전에 이미 경기장을 뜨셨지만.

대니얼 고든/ 통일축구야 무승부가 최상의 결과지. 다큐를 찍으면서 나의 조국, 나의 삶, 나의 미래가 아니구나 하는 결핍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반도에 긍정적인 미래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점점 강해진다. 교류의 방식이 축구든, 영화든. 남북이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인식의 한계를 갖고 있는 외국인인 내가 더이상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는 상황이 왔으면 싶다.

통역 이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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