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시아 영화 기행: 이란 [4]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인터뷰
2005-09-06
글·사진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집에서 그를 만나다

“시(詩)도 영화의 일부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란에 와서 키아로스타미를 제외하고 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초조하게 기다리던 터였다. 기다리게 한 선물이었을까? 방문을 허락했을 때 그는 흥분되는 이야기 하나를 덧붙였다. 엘 샤드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체리향기>에서 자살하기 위해 자동차를 몰고 테헤란 시내를 헤매다니던 그 중년의 주인공 남자를 기억하는지? 그가 바로 엘 샤드다. 도착한 그의 집. 작은 마당을 건너 안으로 들어서니 1층 거실에는 의자와 거울 등 가구들이 즐비하고, 2층에는 작은 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아마도 손님은 아래층에서 맞이하고, 작업은 위층에서 하는 모양이다. 뭔가 구획되어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지럽지도 않은 그의 영화구조 같은 집에서 키아로스타미가 반갑게 맞는다. 여기서 그 신기한 이미지들이 구상되었나보다.

-알리 악바르 사데기가 38년 전 사진 한장을 보여주었다. (보여주며) 기억나는가? 페르세폴리스에 놀러갔을 때라고 하던데.

=(웃으며) 이 사진을 사데기의 집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시절은 참 순수했었다. 보면서 친구들과 회상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 다시 이런 사진을 찍더라도 20년 뒤에는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만….

-첫 장편 <리포트>를 만들 때 당신의 제작 여건은 어떠했는가.

=당시는 커눈에서 안정감 있게 작업하던 때다. 영화 마케팅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제작을 맡은 친구가 일 처리를 잘해서 이 계통에선 대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나를 신뢰했으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기회를 준 것이었다. <리포트>는 당시 다른 영화와는 꽤 다른 시도들이 있었다.

-이란영화는 곧 아이가 등장하는 영화라고 인식시킨 것은 당신이다. 요즘 이란의 어린이 영화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두개의 질문을 같이 한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는가? 우선, 나를 세상에 알린 것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인 건 맞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단편영화 데뷔작 <빵과 골목길> 같은 영화 작업을 할 때부터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순수한 내 영화적 경험으로만 그 영화를 만들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제작한 것이 18년 전이지만, 그 영화는 지금 영화와 비교해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의 영화 스타일이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요즘의 ‘어린이 영화’에 대해서는 평하기가 좀 힘들다. 나는 다른 영화나 영화감독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은 시(詩)가 영화에 끼친 영향을 많이 강조한다. 시와 당신의 영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달라.

=시도 영화의 일부분이다. 단어를 조합하여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런 이미지들은 내겐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말하기가 힘들 정도다. 어떤 때는 차라리 시나리오를 쓰기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까지도 한다. 나는 사진도 찍는데 그 작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에서 나는 특히 일본의 하이쿠를 좋아한다. 낭송하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내가 미니멀한 영화를 선호하는 것은 다 그런 나의 성향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당신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클로즈업>을 꼽은 적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지금으로서는 <클로즈업>이 나의 최고의 영화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어떤 의미에서 오히려 더 오래된 영화 <여행자>를 최고로 꼽을 수가 있다. 그 영화는 30여년 전 낭트영화제에서 이미 알려졌지만, 그 가치는 지금에서야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신선한 면이 있는 거다. <클로즈업>은 15년 전쯤 만든 영화 아닌가? 그렇다면, 역시 15년쯤 지나 30년 뒤에 다시 관객과 보았을 때 비로소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거다.

-<클로즈업>의 주인공이었던 후세인 샤브지안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 당신은 그의 요즘 근황을 안다고 하던데(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실제 후세인 샤브지안이라는 청년이 이란의 유명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를 사칭하다 발각되고 용서받는 것까지의 과정을 영화로 만든 바 있다. - 편집자)

=연락을 하고 지내기는 하지만…. 그는 좀 특이한 성격의 사람이다. 연속적인 관계가 어려울 때도 있다. 돈과 관련하여 사소한 오해를 낳거나 주변 사람에게 오해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인터뷰 직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왼쪽)와 엘 샤드가 대화하고 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룬 영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신 영화에 있어서 어떤 한 국면을 마감하는 마침표, 또는 전환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50대에 접어들자 내 머릿속은 복잡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죽음이란 의미가 내게 새롭게 각인된 것이다. 몸과 마음이 허약해지고, 태만해지기도 하는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아마도 그건 이란의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과 결합해서 온 게 아닌가 짐작된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게 됐다. 하루 중 낮이 끝나면, 그 세계는 밤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환한 불빛과 네온사인 등 어둠을 밝히는 것들 또한 있지 않나. 그 불빛 속엔 어둠을 밝히는 새로운 힘과 삶의 영위가 있으니 그것 역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이란 전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세월이 갈수록 생각은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희망은 의지로 바뀌었다. 죽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다. 일본 시구 중에 이런 게 있다. ‘높은 곳이 무섭다. 떨어지는 것이 두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불이 무섭다. 불이 뜨겁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별이 두렵다. 이별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두렵지 않다. 죽음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그래서, 지금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알지도 못하는데 왜 두려워하겠는가?

-<ABC 아프리카> 역시 여러모로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당신의 첫 번째 디지털영화이고, 첫 번째 이란 바깥에서 제작한 영화다.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이 영화를 보고나서 당신이 초창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디지털카메라 2대를 갖고 그 영화를 촬영했다. 유네스코의 승인을 얻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우간다 어린이들을 돕는 것이 애초 목적이었다. 그런데 촬영을 하고 나서 돌아와보니 그 처음 목적에 덧붙여, 순수영화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영화에는 영어는 물론, 아프리카 토속어 등 여러 언어가 나오지만, 영화는 그 언어의 한계를 넘어 순수 내면성의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현재 갖고 있는 이란영화에 대한 염려와 희망은 무엇인가.

=유명한 영화감독의 입장으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개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란영화는 양과 질로 보아도 다양한 영화예술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지향적인 작품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감독들이 배출되고 있다. 또한 아무리 어렵더라도 헤치고 성장하고 있다. 희망적이다.

<체리향기>의 주인공 엘 샤드 인터뷰

“키아로스타미에게는 특정한 공식이 없다”

<체리향기>

-원래 전문 배우는 아니었다. <체리향기> 이후 바뀐 것이 있나.

=원래 난 건축가다. 이란에 오기 전 12년간 캐나다에 살 때도 내 일은 건축이었다. <체리향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그뒤 다른 영화 출연 제의가 쇄도했고, 그렇게 전문 배우의 세계에 입문했다. <체리향기>가 계기가 되어 이후 7∼8개 영화에 출연했고, 몇편의 텔레비전 방송에도 출연했다. 지금은 건축 일을 잠시 접어둔 상태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어떤 스타일의 감독인가.

=키아로스타미가 어떤 특정한 공식을 갖고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있고, 또 그 공식을 누군가 알고 있다면 누구나 키아로스타미가 되지 않겠는가? 그는 우선 특정한 공식이 없다. 이란의 한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키아로스타미는 영화의 모든 요소들을 사탕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면 끄집어내서 사용하는 사람”이다. 내 경우를 들어보자. 알다시피 난 프로배우가 아니었다. 그래서 키아로스타미가 내게 와서 “당신이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었어요”라고 했을 때, 나는 “내가 당신의 영화를 망치면 어떡하나요”라고 걱정했다. 그랬더니 그는 다시 “만약 영화를 망친다면 그건 당신 책임이 아니라 내 책임이에요”라면서 나를 편하게 해줬다.

-키아로스타미는 어떤 식으로 연기를 주문하나.

=그는 정해진 시나리오를 주지 않았다. 당일에 같이 촬영지 선택을 나가기도 했다. 키아로스타미는 차 안에 앉아 시나리오를 썼고, 내 제의를 듣고 그걸 바꾸기도 했다. 키아로스타미는 내가 나 자신이 되도록 격려했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운전하는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평소 습관대로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톡톡 치고 있었다. 그랬더니 키아로스타미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더라. 나는 “당신이 나보고 스스로가 돼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이건 당신만 알고 있는 당신이다. 관객이 보기에 지금 당신은 연기를 하고 있는 거다”라고 했다. “관객이 당신에게서 찾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말한 대로 그에게는 특정한 공식이 없는 셈이다.

-<체리향기>의 결과는 불분명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 영화의 결말은 무엇인가.

=이 영화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살 자체가 희망을 찾기 위한 행동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수없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 나 역시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살 경험을 갖고 있는 어떤 젊은이는 이 영화를 보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내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영화의 주제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연속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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