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나이트 플라이트>와 웨스 크레이븐 [2] - 감독 인터뷰
2005-09-07
글 : 남주현 (자유기고가)
웨스 크레이븐 감독 인터뷰

“진정 무서운 것은 지금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까”

현장에서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웨스 크레이븐 감독(사진 오른쪽)

지난 6월18일 드림웍스 스튜디오에서 웨스 크레이븐을 만났다. <나이트메어>와 <스크림>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공포영화 감독인 그는 지적이고 차분한 말투의 노신사였다. 영화 트레일러만을 본 뒤, 소수의 국제부 기자들과 함께 작은 회의실에 앉아 오붓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한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고 쉬었다.

=한 2년은 쉰 것 같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회로> 리메이크를 디멘션 영화사와 만들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진행이 어려웠다. 사실 100일 이상 촬영을 했는데 스튜디오와 마찰이 좀 있었다. 운이 없었나보다. 그리고 심장측관이식수술을 해야 했기 때문에 1년을 더 쉬어야만 했다.

-<나이트 플라이트>는 호러영화가 아니다. 이제 호러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나.

=그런 건 아니다. 단지 지금은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에 관심이 더 많을 뿐이다. 당장 호러물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최근 10년간 스릴러에 손을 대고 싶었고,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호러물을 만들 생각이 있지만 현재 관심사는 아니다. 호러물이 지겨워서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서이다. 게다가 요새는 다들 호러물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쓴 책 <Fountain Society>의 영화화는 어떻게 된 것인가.

=작가 3명을 따로 붙여 작업을 했지만, 예산만 올라가고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더라.

-최근 <링2> <그루지> 등 할리우드에서도 아시아 호러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는데.

=<링>은 아주 재미있게 봤다. 나머지 영화들은 아직 못 봤다. 사실 최근 호러물은 별로 보지 않았다.

-호러영화를 주로 만드는 이유는 뭔가. 혹시 어릴 적 경험과 연관이 있나.

=어릴 적 호러영화를 즐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영화를 배우고자 뉴욕에 온 지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당시 난 31살이었는데, 영화를 잘 모르던 상태였고, 편집 작업을 통해 배우는 중이었다. 당시 일하는 회사의 상사였던 션 커닝엄(<13일의 금요일> 감독)이 ‘무서운 이야기 하나 써보지 그래?’라고 제안을 했고, 거기에 응했을 뿐이다. 사실 거의 장난 반으로 쓴 시나리오가 영화화된 뒤에는 사람들이 나를 호러영화와 연관짓기 시작했고, 지금껏 호러영화를 하게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코미디도 만들어보고 싶다. 사실 어릴 적부터 남을 웃기는 것이 나에겐 가장 자연스러웠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반에서 장난꾸러기였으며, 카바레용 코미디를 쓴 적도 있었다. (웃음)

-영화 일을 시작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다.

=독실한 침례교 원리주의자(Fundamentalist) 집안에서 자란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다니던 대학에서조차 종교적인 이유로 영화 관람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영화를 보기 시작한 뒤,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유럽 영화감독들의 작품에 매료되어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카메라를 사서 실험작을 좀 만들다가 결국 뉴욕으로 이사를 갔고, 영화사에서 배달부 일을 시작했다. 글재주가 있다는 것이 남들 눈에 띄어 차츰 포스트 프로덕션 부서의 대리급으로 승진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해서 관두고는 택시 기사를 거의 1년 동안 했었다. 그러다 션 커닝엄을 만나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호러영화 대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영화계 입문 초기에 다른 방향으로 커리어를 쌓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없는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 않나. 처음엔 몰랐지만 내가 뭔가 잘하는 게 있으니까 내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통하는 것 아니겠나. 이 사실에 만족하고 호러영화 감독이란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더 다양한 작품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호러영화는 이미 내 이름의 일부가 되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 십자말 퍼즐에 내 이름이 다섯번 나왔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많은가. 물론 나도 트뤼포 같은 명감독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걸 어쩌나. 휠씬 못한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만족하기로 했다. (웃음)

-공포의 근원을 현실이라 생각하는가, 판타지라 생각하는가.

=현실이다. 진정 무서운 것은 지금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까. 사실 전쟁과 테러로 인한 위협이 가장 무섭다. <나이트 플라이트>는 바그다드에서 일어나는 공포와 미국에서 일어나는 공포의 대조와 유사성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점이 내 마음을 끌었다.

-테러리스트 역인 잭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잭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느 테러리스트와는 다르다. 사실 상당히 매력적이고 유쾌한 사람이다. 그가 속한 테러 집단에 대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일을 굳이 해야 할 필요도 없는 듯한 사람이다. 그쪽 세계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그런 세계를 배경으로 한 하나의 인물을 끌어낸 인물의 이야기이다.

-캐스팅은 어떻게 결정한 일인가. 특히 킬리언 머피는 그다지 유명한 배우가 아닌데.

=아주 복잡한 역할이기 때문에, 이런 말 하기는 정말 싫지만, 미국에서 그런 역을 소화할 수 있는 젊은 배우를 찾기는 어렵다. 조니 뎁 같이 특출한 배우를 쓸 수도 있겠지만 출연료가 항상 문제다. <28일후…>에서의 킬리언 머피가 마음에 들었고, LA공항에서 만나 같이 식사를 하고는 바로 출연을 제의했다. 그는 식사 뒤 비행기를 타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주 바쁜 하루였다.

-비행기 안을 무대로 설정한 이유는.

=밀폐 공간이라는 점, 외부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점이 극적이라 생각하여 그렇게 설정했다. 별다른 상징이나 이유는 없다.

-비행기 영화들이 거의 장르화되어 있는데, 그런 유의 영화를 참조했나.

=모조리 사서 보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밀폐 공간에서의 스릴러보다는 총격전과 난투극이 많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 마음대로 찍기로 금세 마음을 바꾸었다.

-테러 위협 등 현재 세계의 정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모르겠다. 정치적인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지만, 미국은, 아니, 부시 정권은 큰 실수들을 저질렀다. 나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중동 지역을 마음대로 정리하겠다는 속셈인데, 과연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는 그런 속셈의 대가로 강력한 적을 많이 만들었고 동맹국들도 실망시켰다. 정권이 바뀌면서 변화할지는 모르겠다. (유럽 기자들을 향해) 변하지 않으면 프랑스 남부로 가서 살지도 모르겠으니 어디가 좋은지 이야기 좀 해달라. (웃음) 중국의 인구문제도 우려된다. 요새 복잡한 핵보유 문제도 고려 대상인데, 우리도 핵이 있으니 그들도 좀 가지면 뭐 어떤가? 물론 상당히 복잡한 역학 관계가 있으니 함부로 이야기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별로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미국이 국민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자유를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어젯밤에도 정부에 패트리어트 액트(Patriot Act)에 항의하는 편지를 썼다. 별 이유도 없이 가택수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공포 그 자체다.

-특별한 공포나 미신이 있는가.

=미신은 별로 없고…. 공포라 하면 세계의 정치적 현실이 가장 무섭다. 아, 사실 전에는 거미를 엄청 무서워했다. 샤론 스톤이 배우로서 대사라는 것을 가졌던 첫 번째 영화(웨스 크레이븐의 81년작 <악령의 리사>(Deadly Blessing))에서 그녀의 가슴 위로 거미가 걸어다니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샤론 스톤은 그 당시에도 도도한 여배우여서 나보고 먼저 해보라더라. 나는 사실 겁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거미를 내 팔에 얹어 시범을 보였는데, 조금 지나니 그저 작고 가벼운 벌레가 내 몸 위를 기어다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뒤론 거미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뱀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집 마당에서 방울뱀을 발견하고는 잡아서 베개보에 넣었다. 촬영 세트에서 전문가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한 것이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공포의 대상을 영화에 자주 사용하다보니, 이제 두려운 것도 없어져버린 셈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