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창동을 만나다 [1]
2000-01-04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글 : 황혜림
이창동 감독이 들려주는 <박하사탕>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20년

이창동 감독은 느리다. 말도 느리고, 동작도 느리다. 정신도 느린 것 같다. 1980년대 중반에 소설가 생활을 시작했는데, 아직 90년대에도 도착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동료들이 왕창 빠져나간 지 오랜인데도 이창동은 어쩐지 80년대를 서성이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의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은 심지어 거꾸로 간다. 김영호라는 사내의 20년사를 일곱 토막 내어,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했다. 맨 마지막 장면은 1979년, 그의 나이 스무살 시절의 어떤 하루다. 속도의 계율을 아예 걷어차내는 짓인데도, 이창동은 “첫사랑의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랬다고 태연스럽게 말한다.

누군들 첫사랑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젖지 않으랴. 하지만, <박하사탕>을 통해서 그곳에 이르는 건 심란함을 각오해야 한다. 본래 맑고 착했던 청년이 완전히 부서지는 과정을, 그것도 역순으로 목격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가슴아픈 일이다. 더구나 이 여정에는 한국 땅에서 살아온 사람이면 누구도 피하지 못한 인생사 부조리와 역사적 상처가 깊게 새겨져 있다. 시인 이성복은 80년대를 “모두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은 시대”라고 말했지만, 그의 말이 우리의 오늘을 더 정확히 수식하고 있음을 이창동 감독은 사려깊게 들려준다. <박하사탕>은 한 보잘것없는 남자의 20년 이야기에 역사와 희망에 관한 무거운 진술을 담아낸 진귀한 영화다. 이창동 감독은 이 20년 여행의 느리지만 무섭게 신중한 안내자다.

#1. “왜 그래, 영호야. 기차야, 기차. 빨리 내려와, 빨리.”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하고 철로 위에 선 김영호, 그리고 친구의 울먹임. 김영호는 기차를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지른다. 20년 만에 만난 가리봉 동우회의 야유회는 여전히 흥겨운데, 불쑥 나타나 잠시 흥을 깼던 김영호는 한 친구의 울먹임을 뒤로 하고 이제 죽을 작정이다.

첫사랑 시절로 가기 위한 출발지는 1999년 가을, 죽으려고 작정한 김영호가 20년 만에 만난 동료 공원들의 야유회장을 어지럽히고, 철로 위로 걸어올라가는 장면이다. 들뜬 새해 벽두에 불쑥 던져진 <박하사탕>이란 영화 자체의 모양새와도 흡사하다.

-야유회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초록물고기> 때도 막동이가족 야유회가 형의 주정 때문에 엉망이 된다.

=옛날부터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소풍 가서도 혼자 논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된 뒤에도 야유회가 이해가 안 됐다. 더구나 노래하고 춤추는 건 아주 질색이다. 행복해지려고 기를 쓰는 것처럼 보여 거북하다. ‘아, 씨발, 나는 너무 즐겁다’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즐겁다는 건 뭘까, 과연 저 사람들은 즐겁기는 하나,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올라오니까, 섞이기가 힘들다.

-축제 자체를 싫어하나.

=적응이 안 된다. 내가 이런 데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그런데 사람들이 속으론 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세대만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축제나 일상적 행복이 내 게 아닌 거 같다. 어색하고 불안하다.

-노래방은.

=싫어한다. 내가 잘 이해못하는 것 중 하나다. 그래도 가긴 간다. 부산영화제 마지막날, 잔치에 질려서 혼자 왔다갔다 했다. 해운대에서 저녁 먹고 춥기도 해서 노래방에 들어갔었다. 내가 부르진 않고 한 아가씨가 부르는 걸 구경만 했다. 나와보니 백사장에서 폭죽 터뜨리고 있더라. 멀찍이서 구경만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박하사탕> 식구였다. 성격 탓인 것 같다.

이창동의 두 영화를 보면 그가 좋아하는 것 하나를 알아맞힐 수 있다. 기차. <초록물고기>의 미애는 무작정 기차 타는 게 취미다. 늘 되돌아오긴 하지만. 도입부부터 그렇지만 중요한 사건도 기차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박하사탕>에선 거꾸로 달리는 기차가 마치 꿈같은 이미지로 일곱 단락의 틈을 메운다.

“맞다. 기차를 유난히 좋아한다. 풍경 속에 기차가 있으면 확 달라보인다. 이 세상 풍경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목적지가 이 세상이 아닌 곳을 향해서 이 세상을 달리는 느낌. 지금은 아니지만 소설 쓸 때 미애처럼 무작정 기차 탄 적 많다. 살다보면 내 시선에 감정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기차 탄다. 그러면 감정이 생긴다. 그래야 또 글이 써진다.”

성격이고 취향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축제를 거부하고 기차를 타는 것. <박하사탕>은 그걸 권유하는 영화다. 그것 외에 우리가 사람다워질 수 있는 길이 있느냐고 묻는 영화다. 그 어조가 너무 나직해 우리가 그만큼 묵직한 권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막 출발한 <박하사탕>의 기차는 우리를 태우고 이틀 전에 내려준다.

#2. “김영호씨, 윤순임이 아시지요?” 1999년, 봄

막장 인생 외엔 못살듯한 황폐한 주거용 비닐하우스. 자살용 권총을 장만하고 돌아온 김영호를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윤순임. 자취조차 거의 말라버린 첫사랑의 이름. 죽어가는 윤순임의 마지막 청을 들어주기 위해, 남편이 왔다. 의식이 사라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얼굴이 짓무른 여인의 처연한 만남. 김영호도 윤순임도 ‘헛것을 살았고, 살아서 헛것’이었다. <박하사탕> 팀의 첫 고민은 영화 순서대로 찍느냐, 아니면 시간 순서대로 찍느냐였다. 후자가 대세였다. 그쪽이 감정 잡기가 편한 까닭이다. 특히 설경구가 완강했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실감이 안 나는데, 어떻게 죽겠다고 나서는가. 이창동 감독이 반대했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시작하는 게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다는 영화의 내적 방향과 일치한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감정이 뒤로 갈수록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처음 얼마 동안 김영호의 얼굴은 피하고 싶을만큼 일그러져 있다. 똑바로 쳐다보는 것도 외면하기도 힘든 기묘한 표정이 설경구라는 신인배우에게서 어떻게 나왔을까.

-표정 지시를 한 건가.

=아니, 그냥 감정만 얘기했다. 고집 피워서 영화 순서대로 찍겠다고 했지만 나도 고민이 많이 됐다. 첫 촬영 전날 리허설하고, 여관방에서 설경구와 단둘이 만났다. 리허설할 때 어땠느냐고 물었다. 설경구는 윤순임의 빈자리가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렸다. 무슨 말이 필요했겠는가. 설경구는 첫인상이 매우 건조해보이지만 뛰어난 감성을 감추고 있는 사람이다. 제대로 훈련받은 연기자다.

-나중에 온전한 모습을 보게 되지만, 윤순임 역의 문소리는 얼굴만으로도 첫사랑이다. 어떻게 발견했나.

=2천명 지원자 가운데 한눈에 띄었다. 그냥 착해보였다.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다. 왜, 그런 말 있지 않은가. 화가는 누굴 그려도 자기 얼굴 비슷하게 그린다든가, 남자는 엄마 닮은 여자 좋아한다든가 등등. 주위에서 불안해 했는데, 난 더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뒤에 나오는 군산 술집의 작부 경아 역의 고서희도 그런 것 같다.

=경아 역의 고서희는 지원자 중에서 미모로는 가장 떨어졌다. 팔등신 미인들이 워낙 많았으니까. 연기 한 가지씩 시켜봤다. 엄마가 암으로 곧 죽을 텐데, 사실을 모르는 엄마한테 전화로 어떻게 말하겠느냐였다. 고서희는 그런 말을 어떻게 하느냐며 금방 눈물이 그렁해졌다. 그래도, 그냥 해보라고 했더니 눈물이 범벅이 돼서 대사가 엉망이었다. 어떻게 연기할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그 상황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연기의 출발 아닐까. 연기는 그 다음이다.

순임 남편의 방문을 받기 전, 자살을 결심한 김영호는 1천원짜리 커피값을 떼먹는다. 헤어진 아내 집에 가선 뽀삐를 부른다. 순임 남편 앞에선 자기를 파멸로 몰아넣은 증권사 직원, 동료 사업가, 떠난 처자식을 저주한다. 징그럽다가도 불쌍하고, 안쓰럽다가도 밉살스런 김영호라는 인간은 아직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그를 알기 위해선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3. “삶은 아름답다. 그지요?” 1994년, 여름

돈 잘 버는 가구상 사장 김영호가 섹스 파트너 미스 리와 불고기를 먹고 있는 식당. 아내의 불륜 현장을 습격해 난동을 피운 뒤, 정부와 질펀한 섹스를 벌이고, 식당에선 그를 거북해하는 착해보이는 박명식과 마주친다. 김영호는 전직 형사였고 박명식은 아마도 피의자였을 것이다. 아름다운 관계는 단 하나도 없지만, 화장실에서 김영호는 남자에게 해괴한 어투로 말한다. “삶은 아름답다. 그지요?”

-일상적으로 말할 때도 김영호의 말투는 때로 은근하지만 아주 징그럽다.

=김영호는 균형이 깨진 사람이다. 자살하기 직전에도 교활하게 공짜 커피 얻어마신 사람 아닌가. 저열함과 뻔뻔스러움, 비굴함과 천박함, 그런 걸 자연스럽게 보여줘야 했다. 설경구는 너무 심성이 착한 사람이라 그가 아내의 정부를 두들겨패는 장면은 내가 시범을 보여야 했다.

이창동 감독은 자신과 비슷하지 않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다. 소설도 그랬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중편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주인공은 학교 급사 시절부터 야간학교를 다니다 마침내 그 학교의 교사가 된 남자다. 배다른 동생은 훌륭한 성품의 운동가지만, 형은 사회변화엔 관심없고 그저 볼 만한 지상의 집 한칸이 인생의 목표다. 이창동은 명분도 낭만도 모르는 이 한심한 소시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아내에게 버림받고 동생을 배신한 뒤 똥구덩이에 앉아 울지만, 그에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관념의 무게도 육체적 치열성도 없는 그저 우중충할 뿐인 주변인을 이창동 감독은 영화에서도 여전히 붙들고 있다. <박하사탕>의 김영호는 가해자쪽에 조금 더 가까울 뿐이다. 이창동은 이 어정쩡한 존재를 통해 비로소 삶의 조건을 아무런 채색없이 드러낸다.

=소설 쓸 때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키느냐가 내가 매달린 주제였다. 대책도 출구도 없는 한심한 보통 사람들이 자기의 존재를 주장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춘기 때는 그런 고민하는 친구들을 우습게 생각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건 호사스런 고민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게 내 화두가 됐다. 나는 다만 그걸 관념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풀어보려고 한 거다.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주인공을 의도적으로 피한 건가.

=아니다. 김영호에게 내가 있다. 나처럼 나쁜 놈은 세상에 없다. 내 속에 온갖 야비함과 추함이 있다. 그래서 끄집어낼 수 있는 거다. 이건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라, 솔직함의 문제다. 그러다 보니 어둡다. 밝은 건 잘 안 된다.

-회고담 양식을 싫어하나.

=싫다. 이야기꾼이라면 자기를 잘 감춰야 한다. 그래야 재미있고 잘 소통된다. 이야기꾼이 자기고백처럼 말하는 것이야말로 사기다. 모든 체험은 윤색된다. 이야기란 근본적으로 사기다. 사기에 좀더 철저할수록 이야기다워지는 거다. 소설도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해체는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지면 가는 마지막 코스다. 그건 끝이다.

-전통적 이야기체 양식을 확신하나.

=확신이라기보다 직업의식이다. 시간을 거꾸로 간다고 해서 실험적 형식이라고 말하는 글도 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아마도 가장 낡은 방식으로 영화 만드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이야기 속에 진정성을 담는 게 내 일이라고 믿는다.

“같이 있다는 것만도 신난다”

제작자 명계남이 이야기하는 이창동

배우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명계남씨는 이스트필름의 대표로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등 두편의 이창동 영화를 만든 제작자이기도 하다. 이창동 감독과는 서로 무명 시절부터 오랜 지우로,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각각 조감독과 배우로 영화에 늦깎이 입문했다. 그때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 감독일을 보면서, 감독이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돕는 역할이 뭐냐고 물었다. 제작지휘라고도 하고 프로듀서라고도 하기에, 그럼 이창동이 영화 하면 내가 그거 하겠다 한 게 제작에 대한 첫 생각이다. 그런 시작만큼, 제작자로서 그의 입장은 보통 한국영화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이창동 같은 작가가 지치지 않고 가슴에서 분출되는 얘기를 잘 만들도록, 마음대로 하도록 도울 수 있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하사탕>도 “옆에 있으면서 꾸준히 기다리고 버틴 것 외에 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이창동의 작품이고, 기획영화도 아니라 프로듀서가 왈가왈부할 것도 없는 영화고, “누가 프로듀서를 하든 이창동의 세계가 손궤돼서도 안 될 것”이라는 마음에서다.

그가 보기에 이창동 감독은 “작품에 충실하지만 산업적 구조를 잘 아는 감독”이다. “남의 돈 가지고 예술하면 되냐는 말을 자주 하는데, 둘이 얘기하면 주변에서 누가 감독이고 누가 프로듀서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난 한번 더 해야 되지 않나 하고, 감독은 그만 됐지 하고.” 만드는 과정을 프로듀서로 지켜봤지만 그 고생은 다 상상이 안 간다. 감독이 혼자 고생하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답답했는데, 그렇게 나온 영화를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시간 순서대로 갔다면 눈물이 더 났을지도 모른다. 근데 지금처럼 가면 그렇게 눈물이 나지도 않는데, 그런 점에선 잔인한 거지. 지금 보는 장면이 아직 안 본 장면의 결과라 그게 통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환장할 만큼 공감가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이창동 감독이 징그럽고, 좋고,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영화를 보면 이창동이랑 같이 영화판에 있다는 것만으로 신이 난다. 안 보면 손해라고 말하고 다니니까 이창동은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박하사탕> 쫑파티 때는 고맙다고, 독하게 만들었다고, 너 이제 안 만들어도 된다며 둘이 같이 울기도 했다.

전작 <초록물고기>의 흥행이 흑자에는 못 미쳤고, 그간 빚도 많이 지면서 상업영화의 유혹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대박성도 아니고 상업적 코드가 별로 없어도 이런 영화에 손님이 많이 들고 얼마라도 투자자가 붙는 영화판을 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여기까지 왔다. “재미있고 시간 때우는 영화도 있지만 진실을 이야기하고 생각하게 하고, 가슴이 축축해지는 영화도 있어야지. 내가 만든 영화라서가 아니라 <박하사탕>은 내 취향인데, 나같은 취향을 가진 관객도 있을 거라 믿는다. 어릴 때 토란국 안 먹다가 나이 들면서 그것만 찾듯, 나이를 먹어야 진가를 아는 음식처럼.” 개봉을 앞두고 가슴이 벅차다는 그는 이창동 감독이 “하고 싶은 대로 예술 하고, 절충하고 타협한 점이 없었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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