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4]
1999-12-28
글 : 김영진 (영화평론가)
평론가가본 감독과 평론가

비평없으면 셰익스피어도 없다

아주 오래 전에, 비평적으로 막 재평가받기 시작하던 60년대 초에 앨프리드 히치콕은 <무비>의 빅터 퍼킨스와 나눈 대담에서 비평가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은 카메라 뒤에서 수십번 고민한 끝에 장면을 만든다. 그러나 평론가는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기초해 영화의 좋고 나쁨을 일필휘지로 판단한다. 시사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간 그날밤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평을 휘갈기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바로 평론가라는 것이다. 보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에도 잘난 체하는 평론가를 야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 시나리오 작가의 입을 빌려 평론가들의 경솔하고 천박한 20자평에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아예 영화감독들에게도 평론가들에 대해 20자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라는 심정이 드는 것이다.

다른 언론인과 마찬가지로 평론가도 독자에게 정보와 해설을 제공하고 가치 평가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평론은, 특히 저널리즘 평론은 특정영화를 볼 것인지 말 것인지, 그 영화가 볼 만하다면 무슨 이유로 볼 만한지 정곡을 찔러야 한다. 그것이 로저 코먼이 말한 평론의 역할, “비평가들은 영화에 대해 지적인 논평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이미 평론의 역할은 끝난 것이다. 80년대 말에 소장 평론가들이 이론적 수사를 구사하며 공식 언론에 나타났을 때 보여준 대중의 호의는 벌써 사라지고 없다. 비평의 계몽주의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비평은 표적을 잃어버렸고 대중은 즐길 만한 영화를 찾아내 스스로 여론을 형성하는 중이며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한국영화는 대중의 취향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유행에 개입하고 때로는 유행을 만들어내며 역겨운 유행을 공격할 만한 힘을 한국 영화평단은 이미 상실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영화비평 문화가 체계적인 지식과 가치평가 토대를 축적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국에 50여개의 영화과가 있고 영화 마니아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나라에서 로베르 브레송의 회고전이 만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때까지 한국 영화비평은 그 추억의 계몽주의 시대에 홍콩 누아르(이것은 전세계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개발한 용어다), 예술영화, 컬트영화, 할리우드영화로 재빠르게 옮겨가며 속물적 유행을 퍼트렸지만 표면만을 떠다니는 가운데 한국영화에 대한 주목할 만한 평문을 제출하지 못했다. 우리의 불행은 너무 늦게 대중문화 적자로서 영화가 부상하는 시기를 목격했고 그것을 문화적으로 숙성시키기에는 너무 빨리 활기없는 시청각 문화의 노예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초저녁부터 심야까지 스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농담이 대중의 시야를 휘어잡고 있으며 개그맨들이 서로 면박을 주며 웃음을 유발하는, 이런 빈정대는 문화에서는 누구나 잘난 체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게 마련이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한국 영화평단은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하는 투의 냉소주의를 돌파하기에는 공력이 달리는 것 같다. 평론가 개개인의 재능과 영화문화의 형세, 그리고 제도면에서 모두 큰 시련을 맞아 영화판의 미운 오리새끼 취급당하고 있는 것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장차 인류 역사에서 사라질 공룡 같은 존재가 평론가들이라고 예언했는데, 그것이 한국 땅에서 실현될지 두고 볼 일이다. 저널리즘 비평과 전문 비평, 그리고 학계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비평 공동체를 이뤄내지 못하면 우리 평단도 정말 그런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 저널리즘 평론은 그때그때 영화에 대한 해석과 가치평가를 제출하고 잡지를 축으로 한 전문비평은 저널리즘의 해석을 심화시키거나 수정하며 학계는 그것에 대한 이론적 담론을 생산하는 유기적인 관계, 그것이 곧 비평 ‘제도’이며 또한 비평을 제도로 인정받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노드럽 프라이가 말한 대로 비평이 없었으면 셰익스피어도 없었다. 오늘날 히치콕이 거장으로 칭송받는 것도 또한 평론가들의 공이다. 그런데 다소 시비를 걸자면 비평의 공력은 상당 부분 영화가 키워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계는 걸작과 수작을 고루 내놓고 있는데 평단은 삼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그런 기현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과연 한국영화가 고도의 지적 담론을, 진정한 전문비평을 요구할 만큼 질적 비약을 이룬 것이 대세이기는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