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1]
2005-09-27
글·사진 : 김수경
급변하는 중국영화의 중심, 베이징에서 12명의 감독을 만나다

타이, 인도, 이란을 경유한 아시아영화의 네 번째 기착지는 중국이다. 이것은 인디컴시네마가 기획하는 12부작 다큐멘터리 <아시아영화기행>의 중국 1편 촬영팀과의 동행기다. <씨네21>과 부산국제영화제가 후원하고 CJ미디어가 공동제공하는 <아시아영화기행>은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12편의 각 작품을 1편으로 모아 편집한 버전을 상영하고, 10월3일부터 12일까지는 SBS에서 연속 방영할 예정이다. 이번 기획에서 한국과 더불어 중국은 유일하게 두편의 다큐멘터리로 방영된다. 100년을 맞이한 또 하나의 영화종주국, 세계 영화시장의 마지막 엘도라도, 화권 영화라는 이름으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영화사적 지위를 유지해온 아시아영화의 본가 중국을 찾아갔다. 1952년생 첸카이거부터 1971년생 루추안에 이르기까지 중국영화의 명운을 결정지을 대륙감독 12인과 베이징에서 차례로 조우했다. 세계 영화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황사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올해 베이징의 모래바람은 중앙아시아의 사막이 아니라 공사현장에서 불어왔다. 4월의 베이징은 ‘공사 중’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베이징은 도시 전체를 뒤집어엎는 ‘대역사’를 행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올림픽에 대비해 베이징 내의 신축이 금지되기 때문”에 건물을 짓는 사람들의 마음은 조급할 수밖에 없다. 영화 100년을 맞이한 중국영화의 사정도 비슷하다. 현재 중국 영화시장의 제1 화두는 ‘시장’이다. 4월의 베이징 거리에서 만난 중국 인민들이 기억하는 감독은 장이모, 첸카이거, 펑샤오강이다. 베이징 거리 어디에나 존재하는 DVD숍에서도 세 사람의 영화는 항상 진열대 가장 좋은 곳을 차지한다. 주성치 영화와 함께. 영화국 장핀민 국장은 “<영웅>으로 시작된 대작에 대한 관객의 지지가 <연인> <천하무적> <쿵푸 허슬>로 이어진 것”이라 평했다. 왕샤오솨이 감독은 “무협대작의 의미는 관객의 저변을 넓혔고, 중국에서도 블록버스터를 찍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전영으로 당국과 적대적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6세대 감독들의 해금과 지상으로의 복귀도 한창이다. 중국 전역 개봉을 경험한 지아장커의 <세계>와 왕샤오솨이의 <상하이드림>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아장커는 <세계>의 첫 국내 시사회장인 선전에서 “산업화가 급격히 이루어진 2003년부터 영화에 대해 다시 사고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중국형 블록버스터 무협대작 인기

다수의 영화인을 배출한 베이징전영학원
베이징전영학원 78학번들의 졸업사진

이러한 흐름 뒤에는 ‘베이징전영학원(일명 베이징영화학교, 이하 베이징전영) 78학번’으로 칭해지는 5세대들이 영화연출을 비롯하여 영화정책과 산업 전반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한 요소가 존재한다. 그들은 6세대를 차후 중국영화 제작의 핵심으로 판단하며, 향후 개방될 국내시장을 대비하는 세력으로 6세대 감독들을 시장의 시험대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들른 하야트 지하의 멀티플렉스에는 시네마테크와 살롱을 전전하던 6세대의 새로운 영화들이 속속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곳에서는 한국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함께 지아장커의 <세계>, 장지아뤠이의 <화요우색시>의 포스터가 인민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피를 부른 문화혁명과 하방(농촌으로 가서 노동자 생활을 하는 일)을 겪은 뒤 1978년에 베이징전영에 입학했던 5세대와는 달리, 사실 6세대는 ‘지하전영’이라는 범주 하나로 묶이기는 불가능한 다양한 색채를 지녔다. 과거의 도식적인 세대 구분으로 현재의 중국 영화계는 설명되지 않는다. 지아장커의 지적처럼 “물론 예전에도 그것은 그저 이론가들의 주장”에 불과했다. <해방일보>나 <신화통신>은 장양, 구창웨이, 루추안을 포스트 6세대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구창웨이는 78학번 촬영반 출신으로 <붉은 수수밭> <패왕별희>를 촬영했으나 연출데뷔작인 <공작>은 지난해에 만들었다. 제편창에서 마주친 5세대의 주역 텐좡좡은 “2004년 영화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은 <공작>과 <커커시리>”라고 했다. <공작>을 만든 구창웨이와 <커커시리>의 루추안은 정확히 14살 터울이다.

16mm 카메라로 세트에서 작업하는 학생들

한편 영화교육도 급변하고 있다. 베이징전영 장훼이준 원장의 말처럼 “아직도 공식적으로 영화연출을 가르치는 학교는 베이징전영뿐”이며 90년대 중반까지 중국 영화제작 인력의 95%는 베이징 전영에서 배출됐다. 직업을 세습하는 사회주의적 풍토도 이에 한몫했다. 중국에 유독 2대 영화인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연출은 베이징, 연기는 중앙’이라는 중국 영화계의 오래된 공식을 타파하는 감독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상업영화 감독인 펑샤오강은 무대미술을 공부했고 TV에서 활동했으며, 시네마테크 출신인 류하오는 베이징전영 청강생이지만 상하이에서 독학했고, 중앙희극학원 출신 감독인 장양은 연기와 음악을 기반으로 출발했다. 구창웨이 감독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과거처럼 영화학교에서만 영화를 배우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한다.

대륙영화, 시장과 관객을 향해 앞으로

산업적 측면의 변화는 더욱 거세다. <키네마준보>가 발간하는 <아시아 마케팅 리포트>에는 재밌는 통계가 있다. 중국의 스크린 수가 그것인데 10년 내내 3만6500개로 변동이 없다. 이는 외부에서 실질적인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중국 내에서는 ‘유효 스크린 수’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이는 실질적인 수익과 정산이 가능한 스크린을 뜻한다. 2001년 8개 영화사를 합병하여 건립한 대표적 제작사인 중국영화그룹의 한 관계자는 “2004년 말 36개 영화관 계열이 존재하고, 계열 내의 영화관은 1200개, 스크린 수는 2400개”라고 밝혔다. 현지에서 “현재 3만개로 추정되는 가용 스크린은 올림픽 뒤에 10만개로 확대될 계획”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한국의 멀티플렉스 메가박스도 올해 하반기쯤 베이징에 사이트를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영화그룹은 연간 35∼40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이중 15편 이상은 합작영화이다. 그들은 워너, 헝디엔그룹과 함께 중국 최초의 외자 투자제작사인 중잉워너헝디엔영상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게다가 디지털 상영시스템에 관한 한 중국은 한국보다 몇 걸음 앞서가고 있다. 장핀민 국장은 “올해만 300개의 스크린에 디지털 상영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말했다. 당이 주도하는 제도에 대한 일사불란한 태도는 이러한 영화정책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외화의 적극적인 유입도 중국 영화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뒤 중국은 수입 영화 쿼터를 10편에서 20편으로 확대했고, 2005년에는 50편으로 확대가 점쳐지고 있다. 장 국장은 “중국은 국산영화 쿼터를 3분의 2로 규정했지만 실제 박스오피스는 5:5의 형국”이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베이징 하야트호텔 지하 멀티플렉스

장밋빛 미래만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중국영화는 심사와 검열에 발목잡혀 있다. 장 국장은 “우리는 등급을 나누지 않는다. 우리 영화는 모든 관객을 상대로 한다”라며 전체 관람가만이 존재하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만드는 이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대륙에서 만난 수십명의 영화인은 입을 모아 “중국영화의 가장 큰 족쇄는 아직도 검열”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의 중국 진출이 어려운 이유도 상대적으로 폭력이나 성적인 묘사에 자유분방한 탓이 있다. 역대 한국영화 흥행 상위에 속한 영화 중 현재 기준으로는 중국에서 상영이 가능한 작품은 거의 없다. 허우하이에서 만난 구창웨이가 “중국에서도 이제 영화의 등급을 나누는 규정이 나올 예정이라고 알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불법 DVD 문제도 검열에 버금가는 심각한 요소이다. 자오웨이(조미)를 비롯하여, 츠이지엔, 장양, 류하오 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법 DVD가 아니면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에서는 불법음반이나 DVD로 인한 저작권 침해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강경책을 사용하지만 실효는 거의 없다. 아직도 개봉관 앞에서 해당 영화의 불법 DVD를 판매하는 사례는 부지기수이며, 40위안(약 5천원)에 달하는 극장 입장료와 10위안 이하인 불법 DVD 앞에서 인민이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명하다.

연간 25% 성장, 2009년 세계 2위 미디어산업국 예상

첸카이거는 중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상징적 존재가 되어가는 중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 고서 <현문>에 기록된 ‘장강의 뒷물결은 앞물결을 밀어내고, 새사람은 옛사람을 밀어낸다’는 오래된 격언은 현재의 중국 영화시장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그리고 그 도도한 흐름의 중심에 4월에 만난 수십명의 중국 영화인들이 서 있다. 조어대에서 만난 첸카이거가 <무극>에 무려 3천만달러의 제작비를 쏟아붓고도 “12월 극장 흥행은 삼국지의 재연이 될 것”이라고 여유를 부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웨인스타인 형제에게 팔린 <무극>의 미국 판권 가격이 3500만달러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면 <무극>의 본전은 이미 회수된 것이다. 연일 중국 언론에서 <세계>의 국내 흥행 참패를 떠들어댔지만 지아장커는 “정품 DVD는 15만장이 판매되었고, 최종적으로 약간의 수익이 생겼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사실 <세계>도 북미의 관객수익만으로 제작비인 1200만위안은 모두 회수했고, 아시아와 유럽의 흥행은 순수하게 이익으로 남았다. 중국영화그룹에 따르면, 2004년 중국영화의 해외 관객수익은 14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일본에서 프리세일을 통해 수익을 보전하는 한국영화의 양상과 유사하다. 미디어산업 규모의 예측으로 정평이 난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6월에 발표한 ‘2005-2009년 세계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전망’에 의하면, 중국은 2009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미디어산업국가 세계 2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PWC의 보고서는 “중국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산업이 연간 25.2%의 고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참고로 동기간 1위인 미국의 성장률은 5.6%에 불과하다. 세계 영화시장의 신대륙을 둘러싼 수성과 침공은 이제부터 ‘개봉박두’다. 중국영화를 짊어질 12명의 대륙감독들에게 베이징에서 11일 동안 들었던 오랫동안 지속될 미래의 싸움에 대한 희망찬 각오와 조심스러운 우려를 여기에 옮겨 적는다.

자료제공 인디컴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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