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2] - 중국감독열전 ①
2005-09-27
글·사진 : 김수경

“나는 지아장커의 영화적 선배가 아니다”

<무극> 온라임게임 선보인 조어대에서 만난 첸카이거

<패왕별희>의 첸카이거 감독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조어대로 향했다. 타고 온 차량은 가까운 호텔에 세우고 주최쪽 차로 갈아타고 조어대에 들어간다. 북핵을 위한 6자회담 장소로 잘 알려진 조어대는 총리 윈자바오의 업무공간이며 청와대 영빈관과 유사한 장소이다. 오늘은 첸카이거의 신작 <무극>의 온라임게임 사업설명회가 열린다. 신작 <무극>과 관련한 사업발표가 조어대에서 열리고 구름처럼 몰려든 중국 언론의 태도만 봐도 첸카이거의 현재 위상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첸카이거는 중국 영화계의 최고 실력자 한상핑 총경비와 동석하여 기자들의 답변에 응했다. 그의 신작 <무극>은 중국 인민에게 유명한 또 한명의 감독 펑샤오강의 신작 <예앤>과 오는 12월 극장가에서 맞대결한다. 행사가 끝나고 첸카이거와 단독 인터뷰를 나눴다.

신작 <무극>에 3천만달러의 제작비가 투자된 것에 대해 부담감은 없느냐고 묻자 “상업적인 부담은 없다. 장동건이 중국어로 열 몇 시간씩 녹음하는 모습이나 다른 스탭들의 노력을 지켜보며 불안감은 사라졌다”고 답했다. <무극>은 미라맥스를 뛰쳐나온 웨인스타인 형제에게 이미 판권이 팔렸고 미국 전역에 개봉될 예정이다. <무극>은 한국의 쇼이스트, 일본의 가가픽처스와 워너도 부분투자한 다국적 합작 프로젝트이다. 최근 후배 감독들의 영화 중에서 인상 깊게 본 작품을 질문하자 “지아장커의 <소무>”라고 답하며 “나는 지아장커의 영화적 선배가 아니다. 우리는 평등하고 자유롭게 교류하는 영화인일 뿐”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지아장커는 “첸카이거의 <황토지>를 보고 영화감독을 결심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는 5세대 감독들의 상업적인 영화(특히 대작무협물)에 대해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는 인물 역시 지아장커다. 한편 첸카이거는 6세대 감독들의 연이은 흥행 실패에 대해 “시장에서의 성공이나 실패는 개인의 몫이다. 어떤 결과이든 앞으로의 작업에 도움이 되겠지만 누구도 결코 피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누구의 비판이 합당한지 두고볼 일이다.

“더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기대할 것이 없다”

베이징 제편창 영화제작사에서 만난 <더라무>의 티엔주앙주앙

<패왕별희>의 촬영현장이던 베이징 제1 제편창 세트를 지나면 낡은 제작사 건물이 보인다. 계단에 올라 어두운 복도를 지나면 2층 한켠에 25년간 베이징 제편창 소속으로 영화를 만든 티엔주앙주앙 감독의 집무실이 있다. 그는 5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인 동시에 현재 베이징 제편창 영화제작의 책임자이다. 78학번인 그가 제편창의 영화제작을 담당하는 것은 현 중국 영화계의 사정상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베이징전영학원의 원장인 장훼이준, 장이모, 첸카이거를 비롯해 현재 중국 영화계는 78학번이 줄줄이 요직에 포진해 있다.

티엔주앙주앙은 6세대한테 가장 존경받는 5세대 선배로도 유명하다. 이는 그가 왕샤오솨이를 필두로 한 몇몇 6세대 감독들의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백발이 성성한 그는 “세대와 상관없이 자신의 영화를 찍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동년배인 5세대에 대해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더욱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부산에서 선보인 <더라무>를 포함하여 소수민족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많이 찍은 이력에 대해서는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는 동질감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곳에서는 다양한 민족문화의 색채를 통해 마음속에서 느끼는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세대 감독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 동기는 “당시 감독 금지령에 의해 기획만 맡아야 했고, 재능있는 젊은 감독들과 자주 만났다”며 “내가 한 일은 그들을 영화업에 끌어들인 것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그는 베이징영화제작소와 민간자본을 연결해 다수의 6세대 감독이 지상에서 메가폰을 잡게 한 장본인이다. 한편 그는 “현재 중국영화는 100년의 역사에서 네 번째로 큰 변화를 맞이했고, 과거처럼 선전의 도구가 아닌 상품으로 나아간다면 낙관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화와 나는 동등한 존재지만, 내 생명보다 내 영화의 생명이 길 것이라고 믿는” 티엔주앙주앙 감독의 차기작은 장첸을 주인공으로 한 <기성 우칭위안>이라는 전기영화이다.

“주제와 스타일의 확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허우하이 호숫가 노천 카페에서 만난 <공작>의 구창웨이

천안문에 인접한 허우하이 호수 주변은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노천 카페로 가득하다. 인력거를 탄 외국인들과 자전거를 몰고가는 중국인들이 바람과 함께 호수 주위를 맴돈다. 볕이 잘 드는 한 카페에 인민복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다. 꾸부정한 자세와 순박한 얼굴을 한 구창웨이는 <붉은 수수밭> <패왕별희> <햇빛 쏟아지던 날들>을 촬영했다.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그의 감독 데뷔작 <공작>에 출연한 여배우 장징추는 그를 “소동파가 말하는 ‘대약지우’”라고 평했다. ‘대약지우’는 ‘매우 큰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잔재주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언뜻 보면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을 뜻한다. “10년 전부터 꾸준히 있던 감독제의”를 거절하며 묵묵히 촬영에만 열중하다가 조심스레 데뷔한 그의 이력도 그러하다.

구창웨이는 “현재의 중국영화는 작품 수와 스타일 모두 너무 협소하다”고 아쉬워하며 “주제와 스타일의 확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작>을 처음 연출한 소감에 대해 묻자, “생존이나 성공이 아니라 개인적 기쁨과 재미를 위해 만들었다”고 답했다. 또한 “영화 속의 평범한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지듯 공감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라고 덧붙였다. 6세대의 지상영화 제작에 대해서도 “다른 감독들보다 어렵게 영화를 만드는 만큼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수상이나 흥행은 어차피 운에 의한 것”이라며 “후일 기억에 남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원칙론을 강조했다. 촬영감독과 감독의 차이에 대해서는 “감독은 두눈을 뜨고 촬영감독은 한눈을 뜨는 정도, 촬영은 3개월 감독은 9개월 일하는 기간의 차이”라고 농담하며 “기술이나 미학이 발전하는 현 추세에서는 특별히 경계는 없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진저브레드맨> <뉴욕의 가을>의 촬영으로 경험한 할리우드에 대해서는 “할리우드의 시스템은 매우 정교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영화의 상품화에 기여할 뿐”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오래된 친구 우위썬 감독의 <적벽지전>을 촬영한 뒤 <입춘>이라는 두 번째 작품을 연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왕푸징 사무실에서 만난 <천하무적>의 펑샤오강

어둠이 내린 왕푸징 근처의 고층 아파트. 삼엄한 경비를 지나 대형 미술품들과 대리석 바닥이 깔린 로비에서 승강기에 오른다. 문이 열리면 눈앞에는 베이징 시내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전망과 포켓볼 당구대가 놓여 있다. 주인장 펑샤오강은 중국 서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영화감독 중 한명이다. 8편의 영화를 연출한 그는 ‘흥행의 마술사’로 불린다. 최근작 <천하무적>은 중국 박스오피스만으로 150억원이 넘는 성과를 올렸다. 대륙의 흥행감독은 “영화는 자기도취가 아니다. 한 영화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영화관에서 완성되어야 한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펑샤오강은 언제나 현대 중국사회의 단면을 포착하는 영화를 찍는다. 그가 포스터도 직접 제작했던 <휴대폰>이나 스타 감독의 거짓장례식을 광고로 풀어낸 <대완>에서도 그것은 선명히 드러난다. 그는 이를 “상상의 날개에 생활의 뿌리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펑샤오강은 자기 영화의 특징을 “전기성과 인민성의 결합”이라고 표현한다. 전기성은 소재를 플롯으로 만드는 능력이며, 인민성은 일상성과 사회적 배경의 적절한 배치를 뜻한다. “감독과 관객의 관계는 권투경기의 두 선수와 같다. 관객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당신이 쓰러질 것이다. 관객은 적수이자 친구이다. ‘관객은 하느님’이라는 설명은 현재에는 맞지 않다. 관객이 원하는 것에 휩쓸리다보면 관객은 언젠가 당신을 포기할 것이다. 따라서 관객보다 일단 앞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흥행 지론이다.

펑샤오강이 가장 중시하는 요소는 새로운 시점이다. “재밌는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거나, 만들어지고도 재미없는 작품이 되는 이유는 이야기의 시점이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매번 반드시 새롭고 독특한 시점을 찾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응접실 구석에 놓인 흰색 미니어처를 주시하자, 차기작을 설명한다. “<예앤>이라는 시대물이다. 1500만달러 규모라서 아마 해외와 공동제작할 것”이라고 한다. 당조를 배경으로 한 중국판 햄릿이 될 <예앤>은 중국 블랙코미디의 1인자가 시도하는 첫 번째 비극이 될 예정이다.

자료제공 인디컴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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