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영화의 돌파구는 바다 밖에 있다
필립 리와 유위강과 맥조휘는 모두 홍콩영화의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았다. 유위강은 중국 본토와 아시아 시장만으로도 거대하다 했지만, 필립 리는 서구까지 표적으로 삼아 이연걸을 기용한 액션영화 <곽원갑>을 찍고 있었다. 묻는 이가 미안해질 만큼 홍콩영화를 비관하는 필립 리는 “홍콩 시장만 고려한다면 기본적으로 영화를 찍을 필요가 없다. 너무 작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 중국은 홍콩영화를 수입영화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낙관적인 분위기가 퍼졌지만, 우리는 그 시장을 놓치고 말았다. 중국인은 개방을 겪으면서 좋은 영화를 원하게 됐는데, 홍콩엔 그런 영화가 적었다”고 말했다. 중국대륙은 홍콩 영화인 모두의 희망이고 한계이기도 하다. <강호>의 감독 웡칭포는 “중국 대륙에 진입하기 위해선 금기시하는 소재를 포기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소재를 버리면 흥행이 되지 않는다는 게 진퇴양난의 국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어디에나 생존의 논리와 무관한 듯한 돌발은 존재한다. 필립 리가 제작하는 작은 영화 <나나>의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선 잠시 상하이에 가야만 했다.
신인감독 수지 우가 연출하는 <나나>는 만화가 원작인 일본영화 <나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수지 우는 만화 <나나>가 인기를 얻기 전에 이 제목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구태여 제목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건물이 스스로 비집고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빽빽한 홍콩과는 달리, 넉넉하게 퍼진 4층짜리 호텔이 이 영화의 촬영장소. 로비에서 컵라면을 나눠먹곤 하던 프로듀서와 스탭들은 모두 지쳐 보였다. <나나>는 3월 말에 촬영을 시작했지만 배우가 바빠서 한동안 쉬어야만 했다. 유덕화의 <올 어바웃 러브> 현장에서 전해 듣기로 홍콩영화는 보통 한달 안에 촬영을 끝낸다고 했으니, 카메라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면서 복도를 막는 스탭의 심정을 이해하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 와중에 혼자 즐거워 보이던 젊은 스탭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 듯한 말을 건네기도 했으나, 중국어여서 알아듣지는 못했다.
우연하게도 <나나>는 <올 어바웃 러브>처럼 같은 얼굴을 가진 두 사람이 얽힌 사랑 이야기다. 민민이라는 소녀에게 반한 소년은 그녀와 꼭 닮은 나나를 만나고, 남자친구를 찾는 나나의 상하이 여행에 동행한다. 민민과 나나의 남자친구 또한 인연이 있으며, 그 남자친구는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아 헤맨다. 그들은 모두 사라진 사랑의 뒤를 쫓는다. 어둡고 슬픈 그림자. 필립 리는 “신심을 다해 찍고 있다. 하지만 <나나>는 스타가 없으니 질 좋게 만들어 아시아 시장만 공략하는 영화”라고 자조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신인감독과 배우가 없다. 아예 새로운 생명력을 볼 수가 없다”고 탄식하는 그이지만 서구관객이 기대하는 스타도 액션도 없는 영화의 한계는 미리 인정하는 것이다. 아마도 홍콩의 나나는 흥행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일본의 나나보다 가난한 소녀가 될 듯하다.
시장이 건강해지기 위해 신인이 절실하다
<강호>의 시나리오 작가 두치랑은 “홍콩은 모든 변화가 너무 크고 빠른 도시다. 젊은이에게 주는 자극이 매우 커서, 우리 세대는 그 자극으로 감수성을 키워왔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이방인에게 홍콩은 레고 블록처럼 견고한 빌딩의 도시일 뿐이지만 그 내부에선 시간이 두배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나보다. 2002년에 신기한 성공을 거두었던 코미디영화 <금계>는 눈앞에서 세상이 변해가는 그 속도를 한번에 흝어볼 수 있는 영화였다. ‘못난이 공주’(ugly princess)로 유명한 중년 여배우 오군여는 못생겼다고 구박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매춘 서비스의 장을 지키는 창녀를 연기하면서 경제와 정치 상황의 변화에 발맞추어 살아남는 인생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원조교제 비슷한 일을 하다가 나이트클럽으로 진출하고, 지폐다발로 주던 팁이 낱장으로 줄어드는 불황을 견디고, 대륙의 젊은 아가씨들이 밀려오자, 사우나 안마사로 직업을 바꾼다. 감독 샘슨 치우는 전락을 거듭하는 여인을 낙천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마침 그때 홍콩에는 정부가 나누어준 전단지의 광고문구가 유행이었다. ‘금시금일(今時今日)의 복무태도.’ 어떤 직업이라도 태도를 바꾸면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미신을 믿고 향을 피우기 좋아하는 홍콩인들은 내세보다 현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이들이다.
현세를 개척하고자 한다면 젊은이들의 근력에 기대야만 한다. 유덕화와 증지위는 필립 리가 말한 “보던 배우만 계속 보게 된다”는 옛 세대에 속하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젊은 세대를 후원하고 있다. 유덕화는 동료들이 죽거나 영화계를 떠나거나 할리우드에 가는 사이 홍콩과 본토에서 인기가 높아졌다. 마담 튀소 밀랍인형관이 새로 만든 유덕화 인형은 값비싼 피부와 박동하는 심장을 사용했다. 밀랍인형관은 그가 가장 인기있는 배우이기 때문에 전세계에 몇 안 되는 인형의 모델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장국영과 매염방은 스테이지가 따로 있고, <대장금> 주제가를 부른 진혜림은 (궁녀 옷이 아니라) 중전마마 의상을 입고 뮤직비디오도 상영하지만, 입구에 서 있는 유덕화만큼 찬탄을 자아내진 못한다. 포커스 필름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메이드 인 홍콩>처럼 소박한 영화들을 제작하는 제작자이기도 하다. 신인감독들에게 기회를 주는 HD 프로젝트 ‘아시아 신형감독’도 그러한 예인데, 그들은 제작비뿐만 아니라 유덕화의 출연이라는 선물도 받았다. “새롭고 다양한 영화”를 바라고 있다는 그는 “속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는 낮고, 최악의 경우 일곱명의 감독들을 창문에서 던져버릴 생각도 한다. 그러므로 열심히 찍어야만 한다”는 뼈있는 농담을 남겼다.
주연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는 증지위는 80년대에 맥가와 함께 영화사 시네마시티를 세우고 걸출한 코미디 시리즈 <최가박당>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첨밀밀> <무간도> 등이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대표작. 그러나 게으르고 잠이 많아 웬만하면 아침에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그는 그런 태평한 인상으로 TV와 영화를 통해 두루 사랑받는 인물이고 몇편의 히트작도 제작했다. <디 아이> <금계> <대장부> <강호> 등을 제작한 그는 방송작가였던 두치랑에게 시나리오를 써보라고 응원했고, 젊은 성공작 <강호>를 내놓는 성과를 거두었다. 축구선수 출신인 그는 며칠 전 베이징에서 열린 친선축구대회에 나갔다가 인대가 늘어나 휠체어를 타고 인터뷰에 응했지만 한번 질문을 받을 때마다 A4 용지 두장에 달하는 답변을 쏟아내곤 했다. “한국에서 발견한 신인감독들에게 합작을 제안하고 싶었는데, 그새 거물이 되어버려…”라고 털어놓은 증지위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의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새싹이 없는 홍콩영화의 현실은 변할 줄을 모른다. 스스로 ‘80년대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시장이 건강해지기 위해선 신인이 필요하다고, 투자사의 욕구에만 맞춘 안전한 제작관행을 비판했다.
다이내믹한 너무도 다이내믹한 도시
대책은 없다. 그러나 홍콩영화에 남모르는 비급이 존재했던 적 또한 없다. 유위강은 “홍콩에는 영화학교가 없고, 정부는 영화계를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영화계는 자력만으로 유지돼왔다. 우리는 정식으로 영화를 배울 수가 없어서 외국영화를 보았고, 영어를 잘한다는 이점을 이용하여 정보를 많이 모았다. 할리우드처럼 시스템을 갖춘 제작사가 아니어서 회의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없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홍콩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능동적이고, 이른 시일 내에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왔다”고 말했다. 바다 위를 부유하는 듯한 인공의 섬 홍콩은, 동양과 서양이 뒤섞여 본토에서조차 배척받는 문화적인 특성 때문에, 오히려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샘슨 치우는 “홍콩은 나라가 아니라 도시”라고 말했다. “홍콩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만든 도시다. 100만명이 이 도시를 만들었는데, 오늘 갑자기 앞이 안 보인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홍콩 사람들은 너무도 다이내믹해서 밥을 먹으면서도 쉬지 않고 다른 일을 한다”고 말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잇는 바다 양쪽의 항구는 갑자기 산타가 사는 마을처럼 변한다. 건물 전면의 네온사인이 산타와 순록과 선물상자를 전구로 수놓은 태피스트리처럼 화려해지기 때문이다. 그 전류처럼 빠르고 역동적인 도시. 70년대부터 3년을 주기로 액션의 스타일이 바뀌곤 했다던 홍콩의 영화는 아직 낙담하기엔 이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위한 편의점 같은 곳
동양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 ‘무비시티’
구룡반도의 쓰레기 매립지를 메워 만든 무비시티는 ‘원스톱 프로덕션’이 가능한 동양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다. 영화사 쇼브라더스의 자회사인 쇼스튜디오는 이곳에서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야심으로 2003년 7월 공사를 시작했다. 규모는 약 95만 제곱미터. 다섯 개의 사운드 스테이지와 포스트 프로덕션 공간 30여개, 극장, 현상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음식을 배달하는 캐터링 서비스까지 제공할 예정이다. 야외촬영이 아니라면 한 발자국도 바깥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쇼스튜디오 마케팅 이사 로이드 차오는 “이곳은 영화의 편의점과도 같다. 모든 종류의 사운드 포맷을 지원하고, 필름뿐만 아니라 디지털 작업도 가능하다. 우리의 희망은 전세계 모든 영화인들을 초대하여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0년 동안 천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쇼브라더스는 스튜디오 건설에도 그런 자부심을 투영했다.(이곳에선 경비원마저 자랑스러운 태도로 스튜디오 시설과 역사를 설명해준다) 기술담당 이사 에릭 스탁은 “전자파와 주파수를 완벽하게 차단했고, 시설물을 광케이블로 연결하여 사무실에서도 CG 작업 감독이 가능하다. 이곳에선 원하는 영상을 얻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영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지에서 모인 첨단기술 인력이 이곳의 핵심. 넓이가 6천평이고 높이가 22미터인 제1스튜디오에선 와이어에 트럭뿐만 아니라 비행기도 매달고 촬영할 수 있다. 액션이 최고의 장기인 홍콩영화에 걸맞는 배려다.
쇼브라더스는 2,3년 이내에 무비시티와 가까운, 50년전 둥지를 틀었던 클리어 베이워터 스튜디오로 회사를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국적 합작이 대세가 될 것이고, 그 흐름은 제작뿐만 아니라 포스트 프로덕션에도 반영되리라는 기대로. 그러나 제작자 필립 리는 “나는 홍콩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홍콩은 새로운 로케이션 장소를 찾기가 어렵고, 중국 스탭들은 인건비도 저렴하고 일도 잘한다”고 말했다. 2005년 겨울부터 시작하여 내년에 모든 시설을 공개할 무비시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길조가 있었다면 무비시티에 들렀던 날, 우연히 한국에서 찾아온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을 만났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