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모두들, 괜찮아요?> 촬영현장 [1]
2005-10-19
글 : 남은주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남선호 감독의 여동생 남은주 기자가 추적한, 홈코미디영화 <모두들, 괜찮아요?> 촬영현장
남선호(오른쪽) 감독은 나(왼쪽)의 둘째오빠다. 촬영현장에서 우리 두 사람을 찍은 사진이다.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는 오빠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10년 넘도록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분투한 감독의 자전적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를 감독한 남선호 감독은 바로 나의 둘째오빠다. 지난 여름 내내 설레는 마음으로 촬영현장을 쫓아다녔던 나는 그가 영화에서 다루는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훤히 꿰고 있는 덕분에 실제 이야기와 영화 속 이야기가 섞여버린 촬영현장기를 싣는다. <모두들, 괜찮아요?>는 험난한 가족사 속에서 건진 따뜻하고 유쾌한 일상을 다룬 홈코미디영화다.

오빠가 돌아왔다. 12년 동안 줄곧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나의 둘째오빠가 나이 사십에 <모두들, 괜찮아요?>라는 영화로 드디어 지망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게 되었다. 그동안 커다란 실패도 없었지만 지리멸렬한 좌절에 길들여진 가족은 그 소식을 듣고 우선 제작비가 얼마인지부터 물었다. 그리고 당사자가 듣지 못할 만한 곳에 모여 수군거리다 결론을 맺었다. 오빠는 절대 강제규 감독의 뒤를 좇으려 하지 말고 필히 김기덕 감독의 절약정신을 배워야 하리라, 아멘.

늘 이런 식이다. 가족이란 과연 힘일까, 격려일까, 아니면 생각해주는 척은 다 하면서 결국 현실을 보라고 아우성치는 그리스 극의 코러스들 같은 존재일까.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는 가족간의 누추한 애정과 한결같은 집착이 빚어내는 불완전한 변주곡을 담은 홈코미디영화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 가족 각자는 지금 ‘모두들 괜찮다’. 그닥 부족할 것 없이 입봉작을 끝낸 오빠나, 촬영현장기를 쓰면서 가족영화와 함께 매스게임이라도 한 기분이 든 나나, 일단 첫 작품을 찍었다고 하니 다른 욕심이 모락모락 생기는 엄마까지. 그러나 아마 우리는 절대 이 가족영화를 함께 보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함께 있을 때 불편한 마음이 더욱 커지는 것, 그것이 가족이리니, 아멘.

너는 평생 개털이라던데

<모두들, 괜찮아요?>의 집안 무대는 남양주종합촬영소에 마련되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 원조(이순재)가 사위인 상훈(김유석)과 딸 민경(김호정)에게 얹혀 살아가는 곳이다. 세트장을 구경하던 나는 그만 혼자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오빠의 처가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라고 해서 별 경계심 없이 온 게 잘못이다. 조카(극중 병국)가 어릴 때 보던 손때 묻은 동화책들은 물론이고, 화면의 공과금 독촉장들은 모두 실제 감독의 것들이었다. 자전영화야, 자학영화야? 이사가는 날 길가에 꺼내놓은 초라한 짐보따리처럼 카메라에 드러나는 가족의 누추한 살림살이는 민망하고도 민망하다.

<모두들, 괜찮아요?>의 촬영장면

그러나 가장 민망한 것은 남 앞에서 가족이 치졸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일 것이다. 이날 촬영은 두 종류의 싸움을 담았다. 낮에는 이순재에게 딸 김호정이 대드는 장면을, 밤에는 김호정과 김유석이 싸우는 장면을 찍었다. 촬영 스탭들이 가장 인상 깊었던 촬영으로 기억하는 이날 밤 촬영에서 김호정과 김유석은 “정말 서로 감정이 상할 지경으로 싸웠다”고 한다. 부부싸움은 서로 바닥을 드러내며 싸운다는 점에서 부모 자식간의 싸움에 댈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으리라. 서로의 탓도 모자라 서로의 가족 탓에, 가장 아픈 곳을 가차없이 찔러대며 그 결과 서로가 얼마나 구제불능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최대한 극악을 떤다. 이날 김유석과 김호정은 수도 없이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해가며 번갈아 대를 세워서 싸우고 또 싸워댔다. 연극무대에서도 빛났던 그들의 울림 좋은 목소리가 서로를 공격하고 피를 토하며 머리를 풀어헤치면서 점점 더 날카롭게 변성되었다. 오빠네 부부가 어떻게 싸우는지야 모르지만, 이 장면에서 김호정의 마지막 대사는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 나왔으리라는 추측이다. “점쟁이가 그러는데, 너는 평생 개털이라더라!”

꽃보다 아름다웠던 그들이

이 땅의 많은 형제 자매들처럼, 남선호 감독도 대학에 들어가면서 급격히 ‘개털’이 되었다. <금관의 예수> <오월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와 같은 연극들은 그의 인생을 빛나게 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이 ‘조진’ 것이었을까. 그즈음에는 한 지붕 아래 살아도 서로의 거리가 오한이 일도록 멀었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뼈빠지게 공부시켜서 졸업하게 해놨더니 취직도 안 하고 노동자뭐라는 끔찍한 작당이나 해대고!”로 시작되는 엄마의 부르짖음이 매일 아침을 알리는 관용어구가 되고 나서야 확신이 들었다. 아, 우리 오빠는 개털이 되었구나.

장면의 느낌을 주고받는 김유석, 남선호
촬영을 기다리고 있는 배우 이순재

민경 역에 몰입한 배우 김호정은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어요? 내가 선택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는 안 살았어요”라고 치를 떨었고 그 말을 듣다가 다시 민망해진 나는 변명할 말을 생각해낸다. 나도 결혼한 지 오래되어 사람들이 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결혼하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결혼할 때 그들은 아름다웠다, 그건 기억이 난다.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이하 노문연)에서 올케 언니를 만나 개털인 주제에 덜컥 결혼부터 해버린 15년 전의 그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들을 지켜보던 김정환(金正煥) 시인이 시로 만들 만큼. ‘여자는 매혹의 발레리나였고, 남자는 못생긴 영화지망생이었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힘을 갖추었고 남자의 패기는 과학을 장비했다.’(<사랑과 진실>, 1991) 그때만 해도 올케 언니는 “이 사람은 뭘 해도 되고, 나는 이 사람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공언했으며 오빠는 생계를 위해 출판사를 차릴까, 영화감독이 되어도 괜찮을까 최소한 갈등이라도 하는 양심을 유지했다. 그러나 다섯살 때부터 촉망받는 춤꾼이었던 언니가 공연을 포기하고 강사로 생업전선에 나서서 어린 아들과 치매에 걸린 아버지까지 보살피는 동안, 오빠는 모스크바로 영화를 공부하러 갔다와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10여년을 보내고 말았다. 올케 언니의 증언에 따르면 “첫 영화만 찍어봐, 바로 당신하고 이혼하겠어” 하며 벼르던 힘이 빠지고 “내가 남선호를 크게 만들고, 남선호가 나를 크게 만들겠지”라고 성불하기까지 딱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 도저한 체념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언니는 수도 없이 많은 점술가들과 심리상담사들의 조언을 받아야 했다.

남선호 감독 인터뷰

“반추할 만한 재미를 주고 싶다”

-<민중문예>에도 처갓집 이야기를 다룬 시나리오가 실린 일이 있다. 줄곧 처갓집을 테마로 삼은 이유는.

=장인 어른은 박헌영 밑에서 공산당 세포 활동을 하고, 정주영과 사업을 한 분이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압축된, 드라마가 있는 집이다. 공감을 주면서도 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 이게 중요하다. 결국 영화는 누가 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느냐의 문제인 듯하다.

-졸업작품을 찍고 나서 감독이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큐채널에서 다큐멘터리 PD를 하며 돈을 벌려고 해본 일도 있다. 그 다음에는 시나리오 <쇠>로 영화진흥위원회 개발 지원금을 받았지만, 상업적인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여러 번 썼다 지웠다 했다. 그 과정에서 좀더 인물과 생활에 밀착된 이야기를 만드는 법을 익혔는데, 이건 일이라기보다는 놀이였다.

-신인감독으로서 주장할 수 있는 자신의 스타일이 있는가.

=러시아에서 익혔던 것이 체호프적인 감수성이었다. 실제 삶에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좋아 한다. 사소한 습관, 생활방식, 태도를 가진 여러 인물들을 통해 통쾌하다기보다는 유쾌한 재미를 주려고 한다. 반추할 만한. 기회가 되면 다음엔 이런 걸 해보려 한다. 유쾌한 활극이나 유쾌한 스릴러.

제창규 촬영감독 인터뷰

“상업영화 관습을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촬영이 이 작품의 큰 힘이라고 들었다.

=실제 눈으로 보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 대신 카메라 워킹과 상훈과 민경의 숏바이숏(shot by shot) 촬영을 주로 구사했다. 감독의 주문은 배우들이 상황에 몰입하도록 영화적인 기교나 상업영화 관습을 자제해달라는 것이었다. 정공법으로 갔다.

-단편영화 감독 출신으로서 자기 시선이 들어가지 않나.

=오명훈 감독, 여균동 감독 등 개성 강한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촬영의 스타일이 아니라 감독의 스타일을 살리려 해왔다. 특히 이 작품은 일상적인 드라마를 부각하기 위해 화면의 판타지를 억제하려 했다.

-제 감독도 ‘상훈과’라는 소문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남들이 하자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인 미숙아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이게 자기 모습이라고 쉽게 긍정하거나 부정하기 어려울 만큼 영화의 결이 촘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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