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준비 - 사실 사회나 군대나 다 비슷하잖아
하정우/ 군대 생활? 정말 파란만장했지. 훈련소 끝나고 재봉질 배우다가, 자대 배치 뒤에는 용접 배우고. 1분에 워드 40타 치는 실력을, 400타라고 거짓말해서 행정병으로 바꾸고. 그리고는 용산 군영화제작소에 원서내서 1년 만에 옮겼어. 차인표, 이휘재씨 나온 <알바트로스> 찍은 데 있잖아. 내가 찍은 건, <헌병할머니>(일동 웃음) <크레파스> <고무풀>. 보통 군영화는 한달에 한편 정도 촬영하는데, 로케 나가면 모텔에서 다 같이 생활하고, 각자 제작부, 연출부, 배우를 다 해야 하니까 아주 힘들지. 근데 내 밑에 있던 애는 완전 고문관이었거든. 허지훈처럼 순도 100%면 그나마 낫지, 걔는 문제가 나름대로 어긋난 ‘파이팅’을 시도한다는 거야. 나서서 하겠다고 해놓고 실수하면 내가 뒤치다꺼리하고. 그러다보니 내가 상대적으로 귀여움을 받긴 했어.
임현성/ 난 의무경찰로 입대해서 방배경찰서에 있었는데 데모 진압하러 가는 날 맹장이 터진 거야. 수술하고 나니까 퇴원해서 돌아갈 생각에 앞이 깜깜하더라고. 답답한 마음에 숨이 안 쉬어진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진짜로 배에서 뭔가가 잡히는 거야. 그래서 CT촬영을 받느라고 또 일주일을 누워 있고. 물론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지. 근육이 놀랬대나, 뭐래나. 근육이 없는데 어떻게 놀랬을까 몰라. (일동 박장대소) 퇴원 뒤에는 의경 홍보단인 ‘호루라기 연극단’ 오디션에 들어갔어. 거기서는 막내라고, 가발 쓰고 치마 입고 박경림의 <착각의 늪> 부르는 쇼를 하는데…. 박경림이 유학 간 다음에 좀 편할까 했더니 이번엔 싸이 흉내. 아유, 다행히 곧 싸이도 군대를 갔지. (웃음)
하정우/ 그래도 연극영화과 출신이 좋아. 선배나 동기 중에 유명인 이름을 팔면 되거든. 나는 김희선 선배 덕을 좀 봤지. (웃음)
임현성/ 나는 장나라랑 친하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하도 물어보기에 귀찮아서, 사실 안 친하다고 고백했다가 맞아죽을 뻔했어.
하정우/ 일관된 노선이 중요해.
한성천/ 내가 공익근무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군대영화를 찍기 위해 특별히 공부를 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었어. 대한민국 남자들 군대 안 다녀와도 알 만큼은 다 알지 않나? 사실 사회나 군대나 다 비슷하잖아. (일동 동의)
서장원/ 면제라서 군 생활은 안 했지만, 저는 승영과는 달리 위계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선배들이 공연하면 후배들이 도와주는 연극영화과 분위기에선, 특히. 어떤 후배였냐고요? (나머지 세 사람의 눈치를 본다) 개인적으로는, 음 좀 어두운 편이긴 했죠. 오죽했으면 별명이 글루미 선데이였으니까. (웃음) 성격상 애교가 별로 없거든요.
하정우/ 장원이가 보면, 한방이 있어. 술먹으면 사람이 변신을 하잖아. (웃음)
한성천/ 속에 있는 말 다 하지. (일동 웃음)
하정우 - 유태정 역·1979년생·97학번
연극 <유리 동물원>에 완벽한 학창 시절 이후 평범한 모습으로 전락한 인물로 출연했다가 윤종빈 감독의 눈에 들었다. “남성적인 외모인데도 우유부단한 느낌. 힘있는 배우임과 동시에 장난기와 상처, 결핍 등이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하정우를 태정 역으로 점찍었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과연 태정처럼 동기와 후배들에게 듬직하다가도, 친한 사이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소심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평상시에는 제대 뒤의 태정처럼 나사가 빠진 듯 느긋하다. 최근 드라마 덕분에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난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며 갑작스런 유명세에도 그저 덤덤하다. 친구인 한성천이 말할 때 옆에서 참견하며 방해하는 것이 특기. 탤런트 김용건의 아들. 동생 역시 유시어터 소속 배우로, 집안의 세 남자가 한자리에 모이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연기를 시작할 때도, 지금도 부모님께선 언제나 덤덤하게 지켜봐주신다. 1년 내내 뭘 하는지 모르게 바빠 보이기만 하던 큰아들의 장편 데뷔작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내심 흐뭇해 하시는 것 같다는 것이 본인의 설명.
영화 <마들렌> <슈퍼스타 감사용> <잠복근무>, 드라마 <무인시대> <똑바로 살아라> <프라하의 연인>, 그외 연극 다수
역할분석 - 이게 바로 내 캐릭터의 진짜 모습!
하정우/ 태정 캐릭터에 제일 중요한 장면은, 태정이 승영한테 물광 설명하는 부분이었어. 마수동한테는 적절히 ‘엉까면서’ 잘못한 승영을 챙겨주는 모습이, 군대에서의 태정을 제일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사회에서의 태정을 보여주는 건, 여관방 침대에서 승영과 대화하는 장면. 군대였다면 승영 얘기를 듣고 설명도 해줬을 텐데, 사회에선 그걸 못 참고 신경질을 내잖아.
서장원/ 저도 그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요. 물광 장면에서 승영은 태정에게 계속 집요하게 따지잖아요. 그리고 여관방에서도 계속 답답하게 굴고. 내가 봐도 짜증이 나더라고요. 그 부분은, 동작을 일부러 좀더 조용하고 작게 하려고 했어요. 큰소리로 그러는 것보다 조용하게 집적대면 더 짜증나잖아요. (일동 고개를 끄덕인다)
한성천/ 나 같은 경우는 태정에게 늘 맞기만 하던 대석이, 승영이랑 둘이 있을 때, “너 무서워서 못 건드리는 것 아니다”라면서 처음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사실 대석은 다른 캐릭터에 비해서 후임일 때와 제일 고참까지 갔을 때 그 변화가 가장 큰 인물이어서 그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거든.
임현성/ 난 사실 모든 장면이 다 마수동의 전형적인 모습이어서. (웃음) 마수동은 정말 전형적으로 악랄한 고참이니까. 신경썼던 건, 깔깔이(군용 방한내피). 군대에선 ‘짬밥’ 없으면 깔깔이 못 입잖아. 마수동은 군복 위에도, 추리닝 위에도 항상 그걸 입고 있었지. 그리고 삭제된 부분 중에 마수동의 진짜 악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허지훈한테 라면 준다고 화장실로 불러서 성폭행하는 장면. 너무 수위가 높아서 결국 편집됐지. 좁은 장소에서 정말 힘들게 찍은 장면이었는데.
하정우/ 사실 난 마수동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 병장 태정이 어리버리한 이병 허지훈한테 전화받는 교육시키는 장면, 그렇게 ‘데리고 노는’ 상황이 진화하면 마수동이 되는 거거든.
한성천/ 나도 마수동.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참 궁금해. 아, 물론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지. 오히려 비슷한 캐릭터는 승용? 혼자 놀기 좋아하고. (웃음)
서장원/ 저는 영화 속 인물 중에서 딱히 비슷한 사람은 없었어요. 물론 승영과 아예 다르다면 거짓말이지만. 섬세한 거라던가. (일동, 웃음 참는 분위기) 하지만 해보고 싶은 역할은 태정. 워낙 그 영화에서 여린 캐릭터다보니까 좀 벗어나고 싶더라고요. 영화 속에서 승영이 군대에 적응하려고 자기를 변화시키잖아요. 정작 가장 부정적인 캐릭터는 마수동이 아니라 승영이었던 것 같아요.
임현성/ 난 승영 역할 하고 싶던데. 음. 정말 착해 보이는, 이를테면 장원이 같은 애가 마수동을 연기하면 더 재밌듯이. 성격과 외모가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으로. 물론 내 성격이 승영에 가깝기도 하지. 좀 소심하잖아. (웃음)
하정우/ 넌 정말 그래. 넌 내가 전화를 조금만 딱딱하게 받아도 바로 문자 보내잖아. ‘형, 안 좋은 일있어요?’ 그러면 나도 또다시 전화하지. “너, 뭐 안 좋은 일 있냐?” (일동 웃음)
서장원 - 이승영 역·1983년생·02학번
연기 경험은 학교 연극무대에 섰던 것이 전부. 영화는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장·단편을 포함하여 데뷔작이다. “배우의 연기보다는 이미지나 목소리 톤이 중요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배우들을 만나다가, 처음 만난 순간 딱 원했던 얼굴이라고 생각”했던 윤종빈 감독은, “이후 리허설과 촬영을 진행하면서 순발력있고 섬세한 연기에 다시 한번 놀랐다”고 전한다. 이후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모두 까마득한 선배였던 탓에 ‘말 못할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지만, 하고 싶은 말은 (술을 마시고서라도) 꼭 한다는 것이 주변 선배들의 전언. 실제로도 조용하게 던지는 한마디가 언제나 정곡을 찌른다. 영화 속에서는 삐쩍 마른 앙상한 외모로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지만, 실은 선굵은 이목구비에 거뭇한 수염이 먼저 눈에 띄는 외모의 소유자. 현재 맹렬히 운동에 열중하고 있어,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몸매를 자랑한다고. 탤런트 서인석의 아들. 고3 때 처음 연기에 대한 뜻을 비쳤을 때 반대하던 아버지는 대학 합격 이후 신중한 지지자로 자리했다. 배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심 맘에 안 들어하는 것은 여느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