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봐야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진가신 감독은 달변가다. 그리고 스스로 얘기하듯 말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결국 홍콩영화계의 주요 제작자로서의 입장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지만, 정작 <퍼햅스 러브>에 대해서는 꼼꼼히 듣지 못했다. 한국 기자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타임> 아시아판과의 인터뷰를 위해 황급히 걸어가는 그에게 한국 개봉 때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 외에 던질 말은 없었다. 다음은 속사포 같은 진가신 감독과의 대화.
-영화 속 영화에서 서커스를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인들에게 서커스는 일본과의 전쟁이 끝난 뒤인 40∼50년대 애환을 달래주는 큰 오락이었다. 그러니까 서커스는 상처를 잊고 새롭게 삶을 시작하자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이 영화 속에서 손나는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잊고 야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손나가 기억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것을 대변하는 뜻으로 서커스를 차용했다.
-뮤지컬 영화를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홍콩과 아시아의 경우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기보다 DVD 등으로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늘어가는 추세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꼭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뮤지컬을 찍으면서 생각한 건 우선 음악은 영화 속 감정을 고조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사를 통하면 내가 말하고 싶지만 대사로 풀지 못하는 부분들을 표현할 수 있다. 장학우의 노래가 그런 예인데, 직접 말로 하면 닭살 돋는 대사들을 가사로 대신해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예전 작품 속 사랑은 흐릿하고 여운이 있었는데, <퍼햅스 러브>에서는 분명한 형태로 드러난다.
=지금까지 내가 보여줬던 영화들은 과거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런 경우엔 전쟁, 가문, 종족 등 외부의 장벽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지기 힘든 사랑이 많다. 그런데 현재의 사랑 방식은 결정을 본인이 해야 한다. 그럼 지금의 사랑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물음표를 던진다는 의미에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
-극중 장학우가 연기한 니웬은 감독으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가신 감독 본인의 감정이 이입된 건 아닌가.
=장학우 캐릭터는 나 스스로에게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그건 중국 본토 감독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들은 문화혁명 이후 40년 동안 국가가 운영하는 스튜디오 소속이었다. 80년대가 되면서 첸 카이거나 장이모 같은 제5세대 감독들이 매우 논쟁적이며 중국의 현실과 과거에 대한 발언을 담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들은 시장을 상대로 영화를 만든 적이 없었다.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시장경제로 개혁해왔지만, 영화 분야의 개혁이 시작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그때 갑자기 돈이 영화에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영화계는 상업적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중국 본토의 감독들은 대단한 혼란을 겪고 있다. 나도 그들과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냐고? 그렇다. 홍콩영화의 기반이 중국이기 때문에. (웃음) 그러니 나의 러브스토리는 보다 큰 러브스토리여야 하고, 뮤지컬이어야 한다. 그리고 니웬과 나와의 차이 한 가지 더. 내겐 젊은 여배우 아내가 없다. (웃음) 대부분의 중국 감독들은 여배우 아내를 두고 있다.
-천사 몬티 캐릭터를 영화 안에 집어넣은 배경이 궁금하다.
=우선,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뮤지컬에는 대부분 스토리텔러가 필요하다. 그리고 난 언제나 내 영화 안에 보이스오버를 넣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난 개인적으로 말이 많다. 난 언제나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아트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다. 아트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하지 않나. 그리고 그 역할로 지진희를 찾은 것은 정말 반갑다. 애초 그 역할은 보다 눈에 드러나는 역할이었고, 보다 노래가 많았다. 애초 유덕화를 그 역할에 캐스팅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계약 문제 등 때문에 그가 빠지고, 지진희가 캐스팅됐을 때 우리는 역할을 바꿔야 했다. 몬티 캐릭터는 좀더 진실하고 확고한 성격을 갖게 됐다. 그리고 지진희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기 때문에 더욱 관찰자처럼 보인다. 만약 유명한 홍콩 스타가 그 역할을 했다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어떤 특정한 선입견을 갖게 될 것이다. 지진희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많은 것을 이 영화에 불어넣었다.
-홍콩영화의 활로는 어떤 것인가.
=과거 우리의 내수시장은 타이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해외의 중국인까지를 포함했다. 우리는 80년대에 이들 내수시장을 위해 좋은 영화를 만들었고 한국, 일본, 유럽이 이것을 봤다. 그런데 지금은 타이완, 싱가포르 등도 홍콩영화 보기를 그만뒀다. 인구 600만명의 홍콩은 시장이 될 수 없다. 영화가 산업이 되려면 새로운 기반이 있어야 한다. 홍콩은 새로운 기반을 찾아가는 과정 한가운데 놓여 있다. 그건 물론 중국이다. 그런데 13억 인구의 중국 사람들이 왜 홍콩 배경의 영화를 보겠나. 결국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바로 얼마 뒤 홍콩영화계에서 생길 일은 중국영화산업에 흡수되는 일이다. 그건 매우 슬픈 일이다.
-구상 중인 범아시아 프로젝트로는 어떤 것이 있나.
=세 번째 <디 아이>를 준비 중이며 새로운 <쓰리>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는 3개의 사랑 이야기로 만들려 한다. 내 생각에, 범아시아 프로젝트에는 2개의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그야말로 범아시아적인 것이다. 퓨전음식처럼 말이다. 한국, 타이, 중국이 한 영화에서 함께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를 알고 나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내가 오정완 영화사 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지진희가 출연 가능한지 알아본 것 같은 경우다. 그것은 첫 번째 단계를 통해 사귄 한국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시아 영화 중 90%는 여전히 각국 관객을 위한 영화다. 10% 정도만이 범아시아 프로젝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소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