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감독
영화 매체에 대해 새롭게 사유하는 작가, <극장전>의 홍상수
올해의 감독으로 <극장전>의 홍상수 감독이 선정된 것은 크게 예상을 벗어난 결과는 아니다. 일례로, 그의 영화는 개봉 해마다 거의 매번 <씨네21>의 송년 설문 결과에서 베스트 5위 안에 들었고, <생활의 발견>은 1위에 선정된 적도 있다. 올해의 영화 1위에 선정된 <극장전> 역시 개봉 이후 많은 호평이 잇따랐다. 그러나 거의 매번 베스트 5위 안에 들었던 영화들과는 달리 정작 홍상수 감독 본인이 올해의 감독으로 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소감과 답말을 부탁하자 처음에는 “이상하다… 뜻밖이고… 너무 고맙다… 뭐라 그래야 하나(웃음)…”라며 약간 낯설어하는 반응이다. 그러나 정리된 한 문장으로 다시 들려준 그의 답말은 “스스로 비판하면서 가는 건데, 여러분들의 <극장전>에 대한 생각과 격려가 있어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극장전>을 같이 만든 사람들 모두에게 보람이 되고 격려가 될 겁니다”라며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한편, 홍 감독은 자신에 대한 결과를 상세히 더 묻기보다 “배우는 누가 됐냐”며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김상경과 엄지원에 대한 결과에 더 궁금해했다. 연말의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극장전>이 후보에도 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에도, “신경이 아주 안 쓰이는 건 아니지만, 뽑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건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웃음)”라며 자신보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아쉬운 일이었을 거라는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이번 설문 결과는 그의 작가적 길이 평단의 호응을 적극적으로 끌어냈다는 점을 반영한다. 같은 곳에 머무르지 않고 한 차원 더 나아간 것을 인정하는 평단의 반응이기도 한 셈이다. <극장전>은 일반적으로 영화에 대한 영화들이 취하는 상투구를 예리하게 떼어냈을 뿐 아니라, 영화의 안과 밖을 서로 잇는 방식으로 간명하면서도 다성적인 영화 미학의 새로운 진을 짜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 <극장전>에 주목한 필자들은 대체로 그의 영화 만들기의 노정이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 동의서를 제출하고 있다. “삶과 일상을 파편들로 분해하고, 그 파편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내는 홍상수의 구성능력은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극장전>이 해내고 있는 ‘영화적 체험’의 자기 반성적 사유는 새롭고 소중하다”(변성찬), “결대로 영화를 찍는 법을 터득한 홍상수”(안시환) 등이 주요 반응이다.
<극장전>으로 형식의 한 끝에 닿아본 그의 미학이 어떻게 또 한번 그 끝을 뚫고 나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 현재로선 다시 관심거리다. 그런 점에서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은 당연하다. 여기에 대해 홍 감독은 “그동안 영화 외적인 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느라 영화에 집중을 못했다. 봄 영화가 없어서 봄바람 불 때쯤 한번 찍어볼까 한다. 1월 중에 긴 시놉 형태로 써내고, 2, 3월 중에 사람 모아서 준비하고, 4월 정도에는 촬영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후 홍상수 감독은 2년에 한번꼴로 만들던 주기를 좁혀 1년에 한편씩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는데, 내년에 그의 영화가 만들어지면 계획대로 실현되는 셈이다. 그의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그보다 더 즐거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올해의 배우
완벽한 균형감각의 소유자, <너는 내 운명>의 전도연
“껌 짝짝 씹는 소리, 하늘거리며 날아오르는 치마, 숟가락 꽂고 부르는 노래 모두를 관객의 가슴에 얹힐 수 있는 배우. 바로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생명력으로 충일한 가장 섹시한 배우.” <ME>의 이종도 기자가 묘사한 대상이 전도연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을 터. <너는 내 운명>에서 연기의 파노라마를 보여준 전도연이 <인어공주>에서 1인2역을 훌륭하게 선보였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의 여자 주연배우로 선정됐다. 전도연은 바쁜 스케줄 때문에 소감을 밝히지 못했지만, 아마도 “진정?”이라고 되물었을 법하다.
<너는 내 운명>에서 전도연의 연기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완벽한 균형을 보여준다. 다방 여종업원 은하 역을 맡은 그는 석중(황정민)과 연애를 할 때는 간드러지고 귀여우면서 섹시한 모습을 드러냈고, 에이즈 환자임이 드러나 석중 곁을 떠난 뒤로는 영화 전체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울 정도로 비애에 찬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작품 안에서 표현해야 하는 감정의 진폭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연의 연기는 은하라는 캐릭터를 일관된 한명의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한국 영화계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어정쩡한 위치로 취급받는 30대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정확하게 찾아내고 있다는 점과 여전히 박스오피스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대목 또한 전도연의 힘으로 보인다. <프라하의 연인> 이후 휴식을 취하며 다음 작품을 고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도연에 대한 찬사는 이후의 활동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은하씨! 은하보다 더 좋은 배우가 될 거요. 댁은 무엇과도 영화를 바꾸지 않으니.”(심영섭)
무정형의 색채를 한껏 뿜어내는 배우,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
올해 개봉작만 <천군> <달콤한 인생> <너는 내 운명>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까지 도합 네편.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한자리에서 싹쓸이하는 괴력으로도 모자라 감동적인 수상소감으로 수많은 블로그와 게시판을 눈물바다로 만든 남자. <씨네21>은 올해의 남자배우로 황정민을 택했다. 당시 수상소감이 나온 배경을 묻자 그는 “카메라나 영사기 같은 기계가 우리를 찍고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철저히 사람과의 관계가 전부다. 그래서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했을 뿐”이란다. 부쩍 늘어난 사람들의 환호에 대해서도 “비행기도 태웠으면 내려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시작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 때의 마음을 요즘은 더 많이 되돌아본다”고 했다. “화면 속 어느 공간에 있어도 존재감이 느껴진다.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무정형의 색채를 한껏 발산하는 배우다”(김지미)라는 평이 많았다. “올해 출연한 네편의 영화에서 보여준 ‘다른’ 연기, ‘비슷한’ 성취도. 이제 연말을 뜨겁게 달굴 정도의 스타성까지”(전정윤)라는 평처럼 이제는 시내버스 타고 다니기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알아보는 사람 있어도 상관없이 타고 다닌다. 배우로 주목받은 일은 감사하지만 인간 황정민은 바뀔 이유도 필요성도 없으니까”라고 답했다. “역할이 크고 작은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고 싶지, 역할을 내세우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라는 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5년 만에 재회한 류승범과 부산에서 하드보일드물 <사생결단>을 ‘사생결단’으로 촬영 중이다. 통화 말미에 황정민은 독자들에게 “미리 메리크리스마스예요!”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