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국가를 상대삼은 테러리스트의 싸움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감독 제임스 맥티그 출연 내털리 포트먼, 휴고 위빙 수입·배급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개봉예정 2006년 3월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앨런 무어의 1988년작 DC 코믹스 <브이 포 벤데타>를 각색했다는 소식은 워쇼스키 형제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반가운 뉴스였을 것이다.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이름이 낯설다지만 그는 <매트릭스> 전 시리즈와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의 조감독을 지낸 인물이며, 조엘 실버와 워쇼스키가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프로젝트라는 사실은 <브이 포 벤데타>를 2006년 기대작에 올려놓기에 충분하다. <브이 포 벤데타>는 근미래, 한 젊은 여성이 V라는 이름의 테러리스트와 함께 전체주의 국가에 저항한다는 내용으로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하지만 그보다 더 어둡고 정치적인) SF물. 내털리 포트먼이 여주인공 이비를 연기하기 위해 삭발했다는 소식도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복수의 V’라고 해석될 수 있는 <브이 포 벤데타>를 ‘불운의 B’라고 언론이 지칭하기 시작한 악재가 시작된 것은 2005년 7월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자살 폭탄 테러다. 가면을 쓴 테러범들이 런던 지하철을 공격한다는 영화의 내용은 영화라고 치부하기엔 사실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코믹스 원작자인 앨런 무어가 시나리오가 “바보 같다”며 영화와 자신이 무관함을 거듭 밝히는 것 역시 영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GOOD: 탄탄한 원작 그래픽 노블, 워쇼스키 형제와 조엘 실버의 이름….
BAD: 원작자 앨런 무어는 현재 영화화되는 <브이 포 벤데타>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을 누차 강조했다.
돌연변이, 유머 유전자를 이식받다
<엑스맨3> X-Men 3
감독 브렛 래트너 출연 휴 잭맨, 할리 베리, 재임스 마스든, 팜케 얀센 수입·배급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개봉예정 2006년 5월23일
브라이언 싱어가 워너의 <슈퍼맨 리턴즈> 연출제안을 받아들이고 나서 가장 난감해한 쪽은 이십세기 폭스사였다. <엑스맨> 시리즈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싱어는, 홀몸으로 빠져나가도 폭스사가 서운해할 판국에 작가와 프로덕션디자이너까지 데리고 갔다. <엑스맨3>의 감독은 매튜 본이라고 크랭크인 8주 전에 발표되었다가 <러시아워> <레드 드래곤>의 브렛 래트너로 최종 확정됐다. 래트너는 한때 <슈퍼맨 리턴즈>의 연출 준비로 바빴던 인물이다.
1, 2편과 마찬가지로 <엑스맨3>는 사비에 교수의 엑스맨들이 돌연변이를 혐오하는 세력과 맞서 싸우는 활약을 그린다. 시리즈 3편을 떠맡은 새 감독과 작가의 비전을 들어보자. 래트너는 “싱어가 성공시킨 것들을 이어가”는 동시에 “유머를 증폭시키겠다”는 결심을 밝혔고, 작가 사이먼 킨버그(<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트리플X2: 넥스트 레벨>)는 <엑스맨> 시리즈가 “정치적이면서 철학적”인 동시에 “재미있어야 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762m 높이의 규모로 금문교 미니어처를 제작했고, 축구선수 출신 배우 비니 존스가 새로운 악당 저거넛으로 등장한다.
GOOD: 감독 교체로 망가진 시리즈가 여럿 있다는 질문에 대해 래트너, “나는 조엘 슈마허가 아니다”라고 일갈.
BAD: 울버린과 스톰, 진 그레이와 사이클롭스의 <엑스맨3>가 성룡과 크리스 터커의 액션코미디 <러시아워>처럼 된다면?
잭 스패로우의 귀환
<캐리비안의 해적 2> Pirates of the Caribbean: Dead Man’s Chest
감독 고어 버빈스키 출연 조니 뎁, 올랜도 블룸, 키라 나이틀리, 빌 나이 수입·배급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개봉예정 2006년 7∼8월 중
제리 브룩하이머가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속편을 결정한 것은 전세계 6억5천만달러의 흥행 결과를 본 뒤다. 이기적이고 때로는 잔인하지만 허점투성이에 인간적인 면모도 지닌 매력적인 해적 잭 스패로우는 한번 쓰고 버리기 아까운 캐릭터라, 브룩하이머는 1편의 감독과 작가를 다시 모아 2, 3편을 동시에 진행시켰다. ‘망자의 함’(Dead Men’s Chest)이라는 부제가 붙은 2편에서 잭 스패로우(조니 뎁)는 피로 진 빚을 받으러 온 전설적인 해적 데이비 존스에게 쫓긴다. 유령인 존스는 잭의 영혼을 빼앗겠다고 위협한다. 윌(올랜도 블룸)과 엘리자베스(키라 나이틀리)는 결혼식도 뒤로하고 잭의 빚을 갚을 방도를 찾아 함께 나선다.
브룩하이머는 속편이 “카리브해를 넘어서 타이 근처와 극동의 바다까지” 헤엄쳐갈 거라고 귀띔하고 있다. 키라 나이틀리가 5.5m의 다리를 가진 거대한 오징어에 나꿔채이는 장면이 등장한다는 것으로 보아, 해저 괴생물체도 등장할 듯. 그러나 거대 오징어보다 위협적인 존재는 유령해적 데이비 존스와 그의 유령 일당들이다. <언더월드>에서 뱀파이어 집단 리더를 연기한 배우 빌 나이가 다시 한번 비인간 캐릭터 집단 리더를 맡았다.
GOOD: 전편의 배우 및 스탭이 고스란히 뭉쳤다는 점. 성공한 시리즈의 속편 제작에서는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BAD: 2, 3편의 잇단 제작 스케줄이 워낙 빠듯했던 터라 제작진은 완성된 시나리오 없이 프로덕션에 착수했다고 한다.
픽사, 자동차와 사랑에 빠지다
<자동차> Cars
감독 존 래스터 목소리 출연 오웬 윌슨, 폴 뉴먼, 보니 헌트 외 개봉예정 7, 8월 중
<자동차>는 <토이 스토리> 이후 처음으로 무생물을 캐스팅한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디즈니와 픽사의 동반 관계를 마감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한 <자동차>의 핸들은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만들고 한동안 연출에서 물러났던 존 래스터 감독이 직접 잡았다. 하긴 자동차가 성인, 특히 미국 남자들의 장난감임을 고려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픽사의 전작 <인크레더블>의 관객이라면 큰 눈을 껌벅이는 자동차들이 고속도로에서 수선을 떨던 <자동차>의 예고편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눈, 입술, 치아는 물론 취향에 따라 콧수염도 기르고 말도 하는 자동차들이 <자동차>의 주연이며, <토이 스토리>와 달리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
경주용 차 ‘번개’ 매퀸(오웬 윌슨)은 우월감 덩어리다. 나라를 가로질러 피스톤컵 챔피언십 대회에 출전하러 가던 매퀸은 캘리포니아로 가는 66번 국도변에서 졸고 있는 듯한 마을 래디에이터 스프링스에 발이 묶인다.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2002년산 포르셰 샐리(보니 헌트), 뭔가 사연있어 보이는 1951년산 허드슨 호넷(폴 뉴먼) 등은 스폰서와 트로피만 소중한 줄 알았던 오웬에게 “결승점이 아니라 여행 자체가 삶의 보상”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자동차 안에서 원하는 일은 뭐든 할 수 있었던 1950년대 문화 속으로 다이빙할 것”이라는 감독의 비전에 호응하여 <자동차>의 우화적 세계는 몽땅 자동차를 중심으로 디자인됐다. 주유소는 레스토랑이고 타이어 가게는 구둣방이다. 바위나 구름도 자동차 부품 모양으로 그려졌다. 포드사 디자인팀의 조력으로 창조된 자동차의 성격에는 저마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이를테면 레커차는 열정적이고, 폴크스바겐 미니버스―<포레스트 검프>에서 제니가 타던 그 차―는 친환경 기름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히피로 그려진다. “자동차광이라면 우리가 숙제를 제대로 했다는 사실을 알아볼 것”이라고 래스터 감독은 자신한다. 물론 픽사가 숙제를 제대로 했다는 소식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GOOD: <벅스 라이프>의 캐릭터 구성, <토이 스토리>의 이야기를 좋아한 관객이라면 안성맞춤일 듯. 단일종, 심플한 모양의 캐릭터를 갖고 드라마를 끌어낼 픽사의 재주가 볼거리다.
BAD: 최고 실적의 스튜디오 픽사가 들려주는 “트로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교훈은 얄밉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