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2006년에는 어떤 프로젝트들이 할리우드에서 날아올까? 클린트 이스트우드, 브라이언 싱어, M. 나이트 샤말란 등이 감독 자신의 이름값을 하기 위해 돌아오고, <엑스맨3> <미션 임파서블3> <캐리비안의 해적2> 등은 영화의 이름값을 하기 위해 돌아온다. 베스트셀러 원작에 톰 행크스 주연인 <다빈치 코드>, 소피아 코폴라와 커스틴 던스트의 재기발랄한 사극 <마리 앙투아네트>,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모호한 SF서사극 <파운틴>, 픽사 스튜디오의 신작 <자동차>, 70년대 최고의 재난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쳐>의 리메이크판 <포세이돈>, 워쇼스키 형제가 코믹북을 각색한 <브이 포 벤데타>도 주목할 이유가 충분하다. 테렌스 맬릭은 영화인생 33년에 다섯 번째 영화 <뉴 월드>를 내놓았다. 이 열세편을 모아 소개한다면, 그것도 나름 기억할 만한 신년인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해피 뉴 이어!
지구 영웅전설의 역습
<슈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브랜든 라우스, 케이트 보스워스, 케빈 스페이시 개봉예정 7월
슈퍼 히어로 세계의 패왕이 바야흐로 귀환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슈퍼맨2>의 5년 후다. 지구로 돌아온 슈퍼맨, 일명 클라크 켄트(브랜드 라우스)의 가슴팍에 S자는 여전히 빛나건만, 그의 귀향은 차마 ‘금의환향’이라 부르기 힘들다. 슈퍼맨의 영원한 사랑인 <데일리 플래닛>의 민완기자 로이스 레인(케이트 보스워스)에게는 이미 4살짜리 아들과 새로운 약혼자가 생겼다. 게다가 그녀가 쓰는 기사의 문장은 쌀쌀맞기 그지없다. “세계는 구세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설상가상으로 숙적 렉스 루더(케빈 스페이시)는 어느 때보다 슈퍼맨을 무력화시키려고 철저한 계책을 세운다. 딱히 크립톤 운석이 없어도 돌아온 슈퍼맨은 난감한 일 천지다.
슈퍼맨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스크린은 이미 마블 코믹스의 그늘진 영웅들이 접수한 지 오래고, TV 시리즈 <스몰빌>이 클라크 켄트의 사춘기까지 들춰낸 다음이다. 하지만 슈퍼맨의 생명력이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연출자가 다름 아닌 <엑스맨> 시리즈의 창조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인 만큼 우리는 경청할 필요가 있다. 싱어는 슈퍼맨이 대변하는 진실과 정의의 의미를 겉핥지 않고 ‘제대로’ 파악한다면 할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슈퍼맨 리턴즈>를, 이상적 슈퍼 히어로가 현대 세계에서 어떻게 기능할까에 관한 영화라고 요약한다.
11년에 걸친 워너 브러더스의 <슈퍼맨> 부활 프로젝트가 거친 우여곡절은 마태복음의 첫 장을 방불케 한다. 팀 버튼, 볼프강 페터슨, McG, 브랫 래트너, 다시 McG를 이어 메가폰 주인이 된 싱어는 <매트릭스>풍을 가미하길 원한 전임자들과 달리, 1940년대 맥스 플라이셔의 애니메이션부터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 영화에 이르는 전작을 존중했다. 망토부터 부츠의 V컷까지 슈퍼맨 의상에 복고풍을 적용했고, 1편의 감독 리처드 도너―<엑스맨> 제작자 로렌 슐러 도너의 남편―을 찾아 축복을 구했다. 슈퍼맨 역은 아이오와 출신 신인 브랜든 라우스에게, 로이스 역은 케이트 보스워스에게 돌아갔다. 보스워스의 연기 모델은 <필라델피아 스토리>의 캐서린 헵번이라고 한다. 새로운 렉스 루더는, 20세기 은막 최고의 ‘용의자’ 카이저 소제(<유주얼 서스펙트>)를 호연했던 케빈 스페이시의 몫이다. 진 해크먼의 귀여운 렉스 루더보다 훨씬 악랄할 게 분명하다.
“<슈퍼맨 리턴즈>는 메시아가 귀환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우리가 그를 어떻게 포용 혹은 배척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싱어 감독의 예고편이다. 너무 거창하다고 불평할 관객을 위해 친절한 감독은 이런 설명도 잊지 않았다. “옛날 남자친구가 다시 찾아올 때 일어나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GOOD: 인지도 최고의 캐릭터와 <엑스맨> 시리즈로 증명된 싱어의 해석력.
BAD: 신인 브랜든 라우스가 달인 케빈 스페이시와 팽팽한 게임을 벌일 수 있을까?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스몰빌>까지 나온 지금. 슈퍼맨은 너무 단순하고 보수적이지 않을까?
아버지의 슬픈 깃발
<플래그 오브 아워 파더> Flags of Our Fathers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라이언 필립, 제시 브래드퍼드, 애덤 비치 개봉예정 11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격전지인 이오지마섬에 필사적으로 성조기를 꽂은 미군 병사 6명을 AP통신의 사진과 동상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훗날 이 여섯 중 살아남은 병사가 악몽에 시달리며 “그 막대기 끝에 깃발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중얼거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보다 적을 것이다. 이오지마 전투 생존자 중 한 명의 후손인 제임스 브래들리와 론 파워즈의 원작을 각색한 <플래그 오브 아워 파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6번째 연출작이자 실화를 소재로 삼은 첫 번째 작품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전부터 이 영화에 뜻을 품었던 이스트우드는 원작의 판권을 한발 먼저 매입해두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를 오스카 시상식장에서 만나 대화 끝에 감독과 제작자로서 파트너십을 맺게 됐다고 한다.
미국군 2만4800명이 사상당하고 2만여명의 일본군이 죽어간 이오지마 전투는 2차 대전 최악의 혈겁을 빚은 사건이다. 아수라장을 뚫고 성조기를 휘날린 여섯 병사 중 세 명도 결국 전사했다. 그러나 종군기자가 찍은 그들의 사진은 당시 전쟁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미국민들에게 나팔소리가 되었고, 정권이 전쟁공채를 팔 호기를 제공했다. 귀향한 세 병사―아이라 헤이스, 르네 가뇽, 존 브래들리―는 심지어 성조기를 꽂은 순간을 재현하는 쇼까지 펼쳐야 했다. 그리고 각자의 번민을 안고 천천히 대중의 망각 뒤로 사라졌다. 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게 <플래그 오브 아워 파더>는 어쩔 수 없이 반쪽짜리 영화다. 널리 보도된 대로 이스트우드는 일본군의 시점으로 동일한 전투를 그린 영화 <바람 앞의 등불>도 연출해 동시개봉하는 초유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양면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양쪽 진영을 교차 편집하는 <도라 도라 도라> 방식이 아니라, 두편의 독립된 영화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스트우드가 밝힌 의도다. <바람 앞의 등불>의 각본은 일본계 작가 아이리스 야마시타가 썼다.
위험을 무릅쓰고 쌍두마차를 몰고 있는 감독 이스트우드가 주목하는 지점은 살육의 지옥에서 맞닥뜨린 이질적인 두 문화다. 실용적 세계관을 지닌 미군 병사들이 출전의 대의야 어쨌건 전장에서는 전우를 위해 죽어갔고, 죽지 않고 살아 돌아가기를 자연스레 열망했다면, 일본 병사들은 무사도의 유사 종교적 권위에 의해 자결을 강요받았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반면 권력의 명이 신탁이라도 되는 양 목숨을 끊은 일본 병사들보다 살아남은 미군들은 훨씬 지리한 생존 싸움을 감당한다. <미스틱 리버>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이어, 운명은 그렇게 다시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테마가 된다.
GOOD: 역사라는 강적을 굳이 불러내 대적한 원숙한 카우보이의 속내와 솜씨가 궁금하다.
BAD: 대규모 전투 연출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처음이다. 병사들의 종전 후 삶을 그린 후반부는 <미스틱 리버>의 기시감을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