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LA의 새해를 맞이하며 ‘올해의 결심’ 리스트를 작성한다. 전년도 대비 새로운 아이템이 있었으니, ‘영화를 많이 보자’는 것이다. 사실 직업상, 영화는 늘 본다. 그렇지만 ‘작은 영화를 열심히 찾아보자’라고 아주 특별한 결심을 한다. 사연인즉, 연말이면 등장하는 ‘올해의 베스트영화’ 리스트를 보며 약간의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로라 하는 비평가들이 뽑은 리스트에 안 본 영화, 심지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영화가 꽤 있었다. 간혹 이들 작은 영화들이 애용하는 숨은 영화관 찾기, 영화관까지의 운전거리, 예술영화전용관의 열악한 시설 따위의 장애물을 떠올리며 주저앉고 만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오로지 내 게으름을 탓하며 다부지게 결심을 했다.
그런데 이 영화 편식이 나만의 고민은 아닌 듯하다. <LA위클리>의 신년 첫호에서, 영화평론가 스콧 파운더스가 ‘지난해 LA에 선을 안 보였거나 아예 안 올지도 모르는 베스트 독립영화’들의 운명에 대해 샅샅이 해부하고 있지 않은가. 알고 보니 LA에서 독립영화 보기가 어려운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뉴욕에서조차 더이상 메이저 신문의 열렬한 영화평이 외국영화의 흥행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대부분의 배급업자들은 뉴욕에서 안된다면, 그 어디서도 안된다는 상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의 예술영화관에서 흥행하지 못한 영화는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라는 LA에조차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가 지난해 베스트 독립영화로 꼽고 있는 로버트 르페이지의 <달의 저편>, 마르코 벨로치오의 <내 어머니의 눈물> 같은 외국 영화는 LA에서는 개봉 계획조차 없다고 한다. 그나마 간신히 개봉하는 영화들조차 보잘것없는 흥행수입을 기록해서 뉴욕 지존의 상식을 공고히 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기 일쑤라고 한다.
독립영화의 전반적인 부진은 새삼스러운 뉴스도 아니지만, LA에 관한 한 한때 이곳이 미국 독립영화의 산실 역할을 했었다는 역사를 되새기기도 민망한 사태에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 <LA위클리> 같은 호의 ‘예술’란에는 뉴욕의 MOMA에서 빅히트를 쳤던 <세잔과 피사로> 전시회가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는 한산하기 그지없는 기이한(?) 정경을 연출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분야는 다르지만, 두 기사가 공히- 나 역시 LA에서 자주 들었던 말- “사람들이 예술에 관심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신경도 안 쓴다”는 상투적인 LA 정체성론을 슬며시 암시하는 듯도 하다. 과연 할리우드 마인드가 이 도시를 지배하기 때문인가. 프리웨이에서 30분 떨어진 LACMA나 도시 반대편에 있는 예술영화전용관을 찾아가는 여정이 뉴요커보다 좀더 강도 높은 열정이 필요한 이 도시의 속사정 때문은 아닐까, 하고 나름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을 찾는다. 새해에는 부디 LA에서도 많은 독립영화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