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한류 본색’ 한-중 합작영화 옷 입는다
2006-01-23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한국 영화계 ‘중국전략’ (하) 13억 관객을 잡아라
한국과 중국이 합작 또는 협작으로 제작한 영화들. 왼쪽부터 <칠검>, <비천무>, <무사>, <무사>, <천년호>

지난해 9월29일 한국-중국-홍콩 합작영화였던 <칠검>이 개봉한 데 이어, 현재 한국과 중국이 합작 파트너로 참여하는 ‘한-중(-기타) 합작영화’들이 줄줄이 촬영 중이거나 기획 단계에 있다. 13억 인구의 중국 영화시장을 선점하려는 노력이 극장뿐 아니라 영화제작 부문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칠검>을 공동제작했던 한국의 보람영화사는 중국 화이브러더스, 홍콩 콤스탁, 일본 엔디에프(NDF)와 함께 9월 개봉을 목표로 1600만달러 예산의 합작영화 <묵공>을 제작하고 있다. 또 보람영화사(<만추>), 태원엔터테인먼트(<삼국지: 용의 부활>), 현진씨네마(<조폭마누라 3>)가 각각 한-중 합작영화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제작자가 자본과 인력, 현물을 함께 투자하고 제작한 뒤 이익을 배분하는 이들 합작영화 이외에, 나비픽처스가 중국 베이징나비유한공사와 함께 촬영 중인 <중천>처럼 한국이 출자하고 중국이 유상으로 인력과 현물을 대는 협작영화까지 범위를 넓히면 편수는 더 늘어난다.

‘칠검’ 등 공동제작 수입제한 장벽 넘어
조민환 나비픽처스 대표는 “중국 시장을 뚫어야 하는 당면과제는 있지만 수입쿼터 등 중국 영화정책 때문에 합작이나 협작 없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중 합작영화 증가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주익 보람영화사 대표는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한-중 합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시장만 보고 100억원이 훨씬 넘는 제작비를 투자받기가 힘들고, 투자를 받아도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중국·홍콩 등과 합작을 통해 제작비 부담 및 리스크를 중화권 시장으로 분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 <무극>에서 노예 쿤룬으로 출연한 장동건이 20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하지만 <아니키스트>(2000·배급연도), <비천무>(2000), <무사>(2001), <천년호>(2003) 등 중국과의 합·협작 경험은 중국과 공동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이 결코 상식대로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은 지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2004년 ‘중외합작 제작영화 관리규정’ 등을 발표해 외국 자본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합작 여건을 개선했다. 하지만 중외영화 공동제작 허가제에 따른 허가증 취득, 시나리오 사전검열 등 규제들은 여전하다. 또 확실한 중국쪽 파트너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작 단계별 브로커 개입이나 이중계약, 계약 불이행, 불투명한 배급 등의 난관들과도 곳곳에서 맞부닥치게 된다.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최근에는 좀 더 안정적인 방식으로 한-중 합작영화를 제작하려는 시도들도 생기고 있다. <비천무>를 제작했던 태원은 <삼국지…>를 준비하면서 중국 대신 상대적으로 투명한 홍콩의 비주얼라이저를 주 합작 파트너로 선택했다. 중국은 물론 홍콩과 합작한 영화도 중국 영화로 분류돼 중국 배급 때 수입쿼터 제한을 받지 않고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원은 또 비주얼라이저와 함께 투명한 자금관리와 수익정산이 가능한 특수목적회사(SPC)도 설립했다. 투명한 시스템을 만든 뒤 중국쪽 배급이 원활한 차이나필름그룹 등에 중국 배급을 맡기면 자금관리와 수익정산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브로커개입 등 부작용…‘믿을만한 인맥’ 필수적
아예 중국에 합작회사를 차리는 경우도 있다. 나비는 <무사>의 중국쪽 프로듀서였던 장샤와 함께 ‘베이징나비유한공사’를 세웠다. 나비가 합작영화를 만들 때 안전한 중국 파트너를 확보함과 동시에, 베이징나비가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영화를 제작해보면서 한국 자본의 중국 영화 제작 가능성도 타진한다는 포석이다.

하지만 이주익 보람영화사 대표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중국이야말로 ‘믿을 만한 중국쪽 파트너’를 만나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며 함께 작업하는 게 최선인 나라”라며 “매뉴얼을 만들고 시스템을 정비하는 게 장기적으로 필요한 일이지만, 일단은 인맥을 넓고 깊게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중국 관계에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이른바 ‘관시’(關係)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ggum@hani.co.kr, 쇼이스트 제공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