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설 연휴 볼 만한 비디오·DVD 영화
2006-01-26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비슷한 명절 TV영화 지겹지 않나요?

이번 명절에도 일은 많고 사람들은 북적거릴 텐데 마음은 공허하고 지루할게 뻔하다. 무기력해진 두뇌에 충격을 가할 불운한 명작 두편, 명절증후군을 해소해 줄 색다른 코미디 두편, 명절이면 특히 기세를 떨치는 가족주의에 대해 성찰하게 할 독특한 가족영화 두편을 소개한다.

<극장전>
<사랑니>

머리에 신선한 자극주는 불운한 명작=우선, 명절이면 어김없이 재탕되는, 이제는 눈을 감고도 대사를 외울 수 있는 지겨운 영화들을 과감히 버릴 것. 정신적인 피로는 머리를 쓰지 않아야 해결된다는 오래된 편견도 버리자. 작년에 개봉됐다 관객에게 외면당하며 한 순간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던 불운한 운명의 영화 <사랑니>(감독 정지우, 주연 김정은·이태성, 2005년)와 <극장전>(감독 홍상수, 주연 김상경·엄지원, 2005년)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극장에서 이 영화들을 볼 기회를 박탈당했다면, 무조건 이 따끈한 신작들을 선택할 일이다. 생각할 틈도 없이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육체에는 신선한 정신적 충격만큼 효과적인 회복제도 없다. 첫사랑의 기억을 중심으로 멜로영화로서는 최대의 구조적 실험을 성공적으로 감행한<사랑니>와 영화 안과 밖의 세계를 넘나들며 홍상수 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펼쳐준 <극장전>. 두 영화는 반복되는 명절 증후군에 무기력해진 당신의 두뇌에 기름칠을 하고 당신의 감성을 살아나게 할 것이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스쿨 오브 락>

명절 홧병 해소하는 색다른 코미디=다음은 명절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홧병 난 남녀노소를 위한 영화들. 손님들은 모두 가고 산더미 같았던 설거지도 끝나고 지옥 같은 교통체증에서도 마침내 벗어났지만, 여전히 답답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다면? 하루 종일 즐겁지 않은데 즐거운 척하느라 고생했던 마비된 얼굴 근육은 미친 듯이 유쾌한 영화들로 풀어줄 필요가 있다. 당신의 웃음에 진심을 돌려 줄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주연 마띠 뻴론빠·까리 베나넨, 1989). 핀란드에서 멕시코까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밴드의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횡단기를 보고 있자면, 그 기이함에 낄낄거리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연주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듣고만 있어도 흥겹고 하늘로 뻗은 그들의 헤어스타일은 보고만 있어도 즐겁다. 이 한 편의 영화로 불충분하다면, <스쿨 오브 락>(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주연 잭 블랙·조엔 쿠삭, 2003)을 권한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빛은 배우 잭 블랙의 원맨쇼이다. (피터 잭슨의 <킹콩>에서 탐욕적인 감독을 연기한 바로 그 남자) 짧고 토실토실한 몸매에 걸맞지 않게 섬세하고 예민하고 재빠른 그의 몸놀림은 실로 경이로운 감상의 대상이다. 과장된 목소리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과장된 표정, 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과장된 로큰롤에 웃음을 참지 못하다 보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안토니아스 라인>

가족주의 뒤통수치는 가족영화=위의 영화들로도 도무지 원기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가족을 화두로 삼은 영화들로 눈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물론, 그 지겨운 가족주의를 다시 한번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족주의’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이기적이며,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환상인지를 성찰해보자는 것이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명절의 들뜬 분위기, 가족의 소중함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그 명절이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모른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2004)는 그 행복에서 소외된 이들, 가족주의의 환상 뒤에 방치되어 잊혀지는 또 다른 가족의 이야기이다. 버려진 아이들의 질긴 생명력을 보고 있자면, 내 가족만 소중하게 여기는, 무의식적으로 굳어진 나의 배타성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명절의 대미로, 지금 우리가 다시 꼭 봐야하는 또 다른 가족영화 <안토니아스 라인>(감독 마를렌 고리스, 주연 엘스 도터먼즈, 1995)을 추천한다. 그 어떤 강압이나 관습이나 혈연적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도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며 소통하고 연대하는 급진적인 가족 공동체의 이야기. 명절은 그렇게 보내야 하는 것이지, 가족은 그런 것이지, 뒤통수를 친다. 그런데 과연 다음 명절에 당신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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