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백작으로 대변되는 옛 영화 속 뱀파이어들은 사람을 묘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남는 건 시간뿐이라는 듯 늘 천천히 다가오며, 느릿느릿 다가오는 동안 심지어 말도 한마디 안 한다. 그저 ‘있다는 것’으로, 그야말로 존재 자체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뱀파이어들도 변했다. 저마다의 성격을 가진 갖가지 뱀파이어들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주장하고, 수다 떨고, 사람을 웃기기도 하고, 스스로 웃기도 한다. 거대한 무리를 이뤄 인간세상에 버젓이 살고 있는가 하면, 현란한 액션으로 사람을 매료시키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에서 비둘기를 사냥하기도 한다.
마침 모기에 물려 흡혈귀가 됐다는 코믹한 형사 뱀파이어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기에, 뱀파이어에 관한 잡지식들을 모아 퀴즈로 만들어보았다. 그야말로 잡식의 응결체이니, 평소 관심있으신 이들은 슬슬 풀어보고, 평소 관심없으신 이라면 슬슬 읽어보시라. 혹여 80점 이상 얻었다면 당신은 뱀파이어 전문가로 불려야 할 것이다.
1. ‘드라큘라’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15세기 루마니아 영주 블라드 체페슈. 십자군의 수장이자 왈라키아의 영주로서 대담하고 총명한 전사·정치가였으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공포정치를 펴 상상을 초월하는 학살을 자행했다. 그에 관한 설명으로 잘못된 것을 고르시오.
① 블라드는 십자군의 적이었던 투르크인들은 물론 독일인, 루마니아인, 헝가리인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숙청·학살했다.
② ‘블라드 체페슈’란 ‘말뚝에 박아 죽이는 블라드’라는 뜻으로, 실제로 그가 산 사람을 말뚝에 박거나, 가죽을 벗기거나, 토막내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브라소프언덕 아래는 말뚝에 박힌 채 썩어가는 시체들이 가득했다.
③ 그의 별칭인 ‘드라큘라’는 ‘용(드라큘)의 아들(라)’이라는 뜻으로, 그의 아버지 블라드 드라큘이 ‘용의 결사’의 수장이었던 데서 비롯했다.
④ 드라큘라는 교회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신을 부정했고, 피에 광적으로 집착하여 학살한 자들의 피를 마셨다.
정답 ④: 블라드 체페슈는 자신의 잔혹 행위에도 수도원을 세워 헌금하고 죽음의 순간에 진실로 참회하는 등 선을 행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런 이유로 강박적일 만큼 신앙에 충실했다. 블라드 체페슈가 가공할 학살자이기는 했지만 피를 마시는 데 집착하는 취미는 없었다.
2. 아일랜드의 소설가 브람 스토커는 블라드 체페슈를 모티브로 흡혈귀 전설들을 결합하여, ‘흡혈귀의 시조 드라큘라’라는 가공의 인물을 창조하고 소설 <드라큘라>를 발표했다.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골라라.
① 이 소설로 드라큘라는 뱀파이어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반 헬싱 역시 뱀파이어헌터의 대명사가 되었다.
②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는 브람 스토커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연미복에 망토를 두른, 할리우드 드라큘라의 전형을 만들었다.
③ 토드 브라우닝 <드라큘라>의 주연 벨라 루고시는 실제로 헝가리 출신이며, 자신의 출신에 자긍심을 가진 나머지 영어를 배우지 않았고, 연극을 할 당시엔 뜻도 모른 채 소리나는 대로 대사를 외워 읊었다.
④ 패트릭 루시에 감독의 <드라큐라 2000>은 고전의 작법을 충실히 따른 2000년대 판 <드라큘라>다.
정답 ④: <드라큐라 2000>은 웨스 크레이븐이 제작한 영화로, 고전적 뱀파이어영화와는 전혀 거리가 먼, 액션·코믹·슬래셔 버전의 뱀파이어물이다.
3. 세계 곳곳에는 흡혈귀와 관련한 신화·전설·민담이 전한다. 다음 중 그 내용이 틀린 것은?
① 라미아 - 청년들을 유혹해 죽인 뒤 그 피를 마시고 살점을 떼어 먹는 여자 악마.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여인이었으나 헤라의 계략으로 미치광이가 된 뒤 복수하기 위해 밤마다 인간의 아이를 죽이고 다닌다.
② 스트리고이 - 아담의 첫 부인으로, 아담에게 순종하지 않고 도망쳐 홍해로 건너간 뒤 갖가지 악마들과의 접하여 자식을 낳았다. 아담이 이브와 재혼하여 아이들을 낳자 질투심에 그들의 아들딸들을 죽이고 다니게 되었다.
③ 몽마(夢魔) - 밤에 젊은 남녀를 찾아와 정액을 훔치거나 기를 빼앗으며 여성을 임신시킨다는 존재. 수면과 성교의 이미지가 흡혈귀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④ 구울 - 인간을 이빨로 물어서 마비시킨 뒤 먹어치우거나 무덤에서 시체를 파내 먹는 괴물. 피 자체보다 시체를 탐하며 생김새도 짐승에 가까워 뱀파이어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정답 ②: 스트리고이는 루마니아에서 흡혈귀를 지칭하는 말로, 낮 동안은 잠을 자고 밤에 날아다니며 잠자는 어린아이의 피를 빠는 사악한 존재를 일컫는다. 늑대, 개, 새 등의 동물로 변신할 수 있다고 한다. ②의 내용은 셈족 전설에 등장하는 릴리투(혹은 릴리스)에 관한 설명이다.
4. 다음 중 다른 계열에 속하는 것은?
① 뱀파이어 ② 구미호 ③ 강시 ④ 좀비
정답 ②: 뱀파이어, 강시, 좀비는 죽었으되 죽지 않는 언데드(The Undead) 계열에 속하는데, 구미호는 짐승이 된 인간을 가리키는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에 속한다. 늑대인간이 대표적인 라이칸스로프 계열 괴물이며, ‘라이칸’이라 할 때는 축소된 의미로 진화된 늑대인간을 뜻하기도 한다.
5. 엘리아스 머리지 감독의 <뱀파이어의 그림자>는 무성영화 시대의 천재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재구성해놓은 영화다. 앨리아스 머리지는 ‘이 감독’이 진짜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여 뱀파이어 영화를 찍었다고 가정했다. ‘이 감독’이 만든 ‘어떤 영화’란 무엇인가?
① 토드 브라우닝 - <드라큘라>
② F.W. 무르나우 - <노스페라투>
③ 테렌스 피셔 - <드라큘라의 공포>
④ 로만 폴란스키 - <뱀파이어와의 댄스>
정답 ②: <뱀파이어의 그림자>는 독일의 천재 감독이라 불렸던 F.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를 오마주하고 있다. 무르나우는 브람 스토커의 미망인, 플로렌스 스토커에게서 소설 <드라큘라>의 판권을 사지 못하자, 영화 제목을 ‘노스페라투’로, 드라큘라 백작을 ‘올록 백작’으로 바꾸어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었다. 대머리에 창백한 얼굴, 시커먼 눈가와 튀어나온 앞니, 긴 손톱을 가진 흡혈귀. 무르나우와 막스 슈렉(올록 백작 역)은 독일 표현주의 특유의 더할나위없이 기괴한 뱀파이어를 만들어냈지만, 플로렌스 스토커가 제기한 소송에서 패한 <노스페라투>는 네거티브와 프린트를 모두 폐기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영화사는 부도가 났다. 플로렌스 스토커가 죽고 난 뒤 여기저기에서 <노스페라투>의 복사본이 떠돌기 시작했고, 그 덕에 우리는 가끔씩 TV나 예술영화 상영관에서라도 이 명작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는 나중에 <노스페라투>의 새 버전 격인 <흡혈귀 노스페라투>(Nosferatu, The Vampire)를 만들었다.
6.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관계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는 것은?
① <언더월드>
② 토드 브라우닝 <드라큘라>
③ <뱀파이어 헌터 D>
④ <진월담 월희>
정답 ①: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 <뱀파이어 헌터 D>, <진월담 월희>에서는 늑대인간이나 늑대가 뱀파이어의 분신이나 충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언더월드>나 <반헬싱>은 뱀파이어와 라이칸(진화한 늑대인간)을 서로 대결하는 존재로 설정했다.
7. 다음 중 이빨이 가장 많은 뱀파이어는?
① <퀸 오브 뱀파이어> 아카샤
② <블레이드> 블레이드
③ <반헬싱> 드라큘라
④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루이
정답 ③: <반헬싱>에 등장하는 드라큐라는 이빨이 어찌나 많고 빽빽하신지 무슨 심해어처럼 보인다.
8. ‘살아 있는 흡혈귀’란, 마치 흡혈귀라도 된 양,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한 짓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래 인물들은 ‘살아 있는 흡혈귀’로 불린 실존인물들이다. 설명이 잘못된 것을 고르시오.
① 엘리자베스 바토리 - 드라큘라와 비슷한 시대를 산 헝가리 백작 부인. 젊은 여성의 피가 자신에게 젊음을 돌려줄 것이라는 망상으로 농부의 딸들을 납치해 잔인한 고문을 가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즐긴 뒤 그 피로 목욕을 했다. 그녀가 죽인 소녀들의 수는 50명에서 610명까지, 문서마다 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② 질 드 레 - 백년전쟁의 영웅이나 전쟁이 끝나고 연금술, 흑마술에 몰두했다. 실험을 명목으로 소년들을 유괴하여 성추행한 뒤 토막냈고, 시간(屍姦)했다. 그가 죽인 아이들의 수는 150~1500명으로 역시 문서마다 차이가 난다.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의 모델이 되었다.
③ 제임스 리바 2세 - 스스로 살아 있는 흡혈귀라고 주장한 미국인. 할머니를 향해 총을 두발 쏘고 총알이 박힌 구멍으로 피를 빨아 마셨다. 그는 재판장에서, 흡혈귀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시켰다며 자신은 그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④ 조지 하이 - ‘하노버 흡혈귀 사건’의 장본인. 하노버 기차역에 나가 희생자를 골라 집으로 초대한 뒤, 묶어놓고 목을 물어뜯어 죽였다. 재판에서 그는 27명을 죽였다고 진술했다. 시신의 일부를 갈아 소시지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자신의 푸줏간에서 팔기도 했다.
정답 ④: 조지 하이는 1940년대 영국에서 아홉명을 죽여 그 피를 마시고 시체를 산에 용해시켰다고 자백한 인물. 영국 언론은 그를 산욕(酸浴)흡혈귀라고 불렀다. ④의 내용은 프리츠 하르만에 관한 설명이다.
9. 다음 중 가장 오래 산 뱀파이어는 누구인가?
①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② <드라큐라 2000>의 드라큐라
③ <언더월드>의 빅터
④ <노스페라투>의 올록 백작
정답 ②: <드라큐라 2000>에 등장하는 드라큐라는 자신이 드라큐라가 되기 이전에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가장 오래 묵은 뱀파이어일 수밖에.
10. 고분지통(鼓盆之痛)을 겪은 인물을 고르시오.
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백작
② <블러드 플러스>의 사야
③ <피안도>의 아키라
④ <황혼에서 새벽까지1>의 케이트
정답 ①: 고분지통은 아내를 여읜 슬픔을 뜻하는 고사성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투르크와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다. 그러나 그가 사랑하는 아내는, 남편이 죽었다는 거짓 정보를 믿고 상심하여 강에 투신하여 시체가 되어 있다. 자살한 영혼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성직자의 싸늘한 말에 드라큘라 백작은 “신을 위해 성전을 치렀는데 아내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졌다”고 절규하며 신을 부정하고 흡혈귀가 된다. 이런 설정은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이 된 블라드 체페슈의 첫째 부인이 투르크에 인질이 되지 않기 위해 강에 투신했다는 사실에 모티브를 둔 것으로, 그 강은 ‘왕비의 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참고로 사야와 케이트는 뱀파이어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으며, 아키라는 친구들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