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신성일의 행방불명> 제작기 [1]
2006-02-22
글 : 신재인 (영화감독)

<신성일의 행방불명>이란 영화의 개봉 시점이 다가오니 현재 프로페셔널 좀비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나 대신 나의 남자가 극장가 정찰 활동을 벌이고 돌아왔다.

그의 보고: <킹콩>하고 <왕의 남자>보다 <신성일…>이 더 재밌어. 걱정마.
그런데 솔직히 <신성일>이 <쿵푸 허슬>보단 재미없더라.
나: 알았어, 알았어. 다음 편은 그만큼 할게.
그: 그래, 그래
나: 근데 있잖아, 남들 있는 데선 그런 얘기 하지마. 사람들이 욕해.
그: 그래?

더머 앤드 더미스트 같은가? 내가 굉장히 덤하지 않았다면 독립영화라 불리는 사제(私製)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제영화, 사제블록버스터의 제작과정을 십분만 돌이켜봐도 내가 영화를 만드는 데는 뭔가 운명적인 사명이 있었음이 분명하고 영화가 인생보다 중요했음이 분명하다. 내가 덤(dumb)하지 않았다면.

다음은 <신성일…>의 제작사인 신재인랜드의 시이오이자 리셉셔니스트가 독립영화를 하며 배운 것들 중 자신도 잊어버릴 만한 것들을 적어본 것이다. 적은 이유는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영화계에서 암약하는 진시황들의 존재

독립영화계에 산재한, 결코 한데 모이지 않는, 오늘도 초라한, 그러나 그 외양 속에 진시황스러운 속내를 숨긴, 대체로 충분히 혹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그것까진 참을 수 있지만 자랑도 맘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에 조금은 주눅 든, 그럼에도 그 타고난 속내는 어쩌지 못하여 별로 동정이 가지 않는…저예산 스펙터클메이커들이 존재한다.

당신이 스펙터클과 몹신을 몹시 좋아한다면
그래서 없는 자원을 동원하여 당신 머릿속에 있는 그림과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하려는 욕망에 의해 영화를 만들려 한다면
해야지요.

그 스펙터클과 몹신이 돈과 인력만 들인다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고 제약조건을 어떻게 극복하고 그것을 이룩했는가는 스크린에 영사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따라서 당신을 사로잡아 역경을 극복하게 하고 나아가 당신의 알딸한 재산마저 축내게 한 그 스펙터클이 관객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안다 해도
해야지요.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관객에게 하고자 하는 서비스는 잠시 뒤로 미루고,
상업영화에서 만날 보던 건데 그거 하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이냐는 관객의 질문을 받을세라 당신의 업적에 대해 자랑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음을 알고 그래도
해야지요.

세상이 당신의 스펙터클로 모인 초고밀도의 순간.
되고 안 되고가 주는 엄청난 희열과 고통. 안 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마냥 괴롭게 되면 지상의 것이 아닌 감정의 폭발을 느끼는…장외 홈런의 순간? 아니다. 지상의 것이 아니라 했다. 비유를 찾지 말자. 다만 혈관마다 신경마다 여러 화학물질로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이며 자축하는 생리적 현상이 있다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적는 것으로 그치자. 정신을 차리고 기쁨을 함께하고자 둘러보면 스탭들, 아니 어찌 그럴 수 있는지, 졸린 눈으로 둘러앉아 있을 뿐. 간혹 초롱초롱한 눈동자도 몇 끼어 있으나 그것은 모두 원한서린 눈빛들.
어린애들 사십명을 모아 버려진 축사에서 함께 연기시키는 게 당신에게는 킹콩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이었음을 아무도 모르겠지만
해야지요.

그리고 영화가 촬영되고 나서 당신의 스펙터클만 편집하고 나면 할 일은 끝났다고 나가 놀고 싶지만 억지로 앉아서 매일 한컷씩 몇달을 붙이고 다 붙은 그림을 한번도 보지 않는,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연출의도가 무엇이냐고 물어올 때 난감하고 전문 평자가 뭐라고 할 때 무슨 뜻인지 불안하고
네, 어떤 스토리가 떠올랐고 알레고리, 있었던 것 같고 그렇지만 그 스펙터클이 아니면 혼자 공상하고 말 일이었을 거라고 중얼거리는
“너”희들.

독일의 그, 산으로 배를 올렸다는, 세계 몇대 영화에 작품 올린 적 아마도 없는 감독에게 어쩐지 혈연적 끈적함을 느끼는 너희. 그래, 어쩌겠냐. 그런 욕망을 지닌 걸. 관객도 평자도 칭찬할 일이 아닌 것임을 인정하고
해야지요. 정말 남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스펙터클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무엇을 한다.

우리를 반성케 하는 사람들, 주변에 많지. 그러나 반성이란 흡혈귀를 재로 바꾸고 진시황을 백수로 만드나니. 이를 악물고 반성하지 말자.

우리도 우리를 칭찬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눅은 들지 말자. 그리고 가끔은 염치 불구하고 자랑하자. 있잖아, 그거 찍을 때 상황이 어땠냐면 모래폭풍이 몰려와서 말야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는데 액션!하니까 말이지….

상업영화 현장의 스펙터클이 좀더 많은 사람과 크레인의 위용이라면 독립영화의 스펙터클은
폭풍과 해일, 쓰나미….

스펙터클을 만들 때 우리는 스펙터클 속에 있었다. 영사되나 가치없는 스펙터클을 만들 때 우리가 속했던 영사되지 않는 스펙터클. 그립다.

비니루의 위대함

<신성일…>의 촬영장소. 서울 인근의 소도시, 버려진 돼지 축사는 매우 널찍하고 황량하며 아름다웠다. 다만 건물에 창구멍은 있으되 창이 없어 겨울바람이 쌩쌩 불며 실내도 벌판이 되었다. 스탭들이 비닐을 사다가 그 구멍에 붙인다. 그러자 축사는 금세 방이 되었다. 난로를 틀자 온실처럼 따뜻하다. 비닐 한장의 위대함.

가슴이 벅차올라 주님께 감사도 드릴 겸 변소에 가려고 마당으로 나서니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쏟아지려 한다. 고함을 지르며 기도한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비닐 한장이면 되는군요! 비닐의 발명자께도 감사드리고요. 그간 사는 데 많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제 어리석음을 단박에 깨우쳐주셨습니다!

축사에서 조금 떨어진 변소, 푸세식인데 전등이 없다. 조감독에게 변소 앞에서 노래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무런 흥도 없는, 노래도 아닌, 조연출인, 노랫소리가 흐른다.

안에서 나는 말한다. “아가야(조감독 이름이다), 나 돈 많이 벌면 이 축사를 살 거야. 그리고 여기서 살 거야. 같이 살래?… 그냥 가끔 놀러와.”

새벽이 되어 비닐 안에서 조감독과 함께 눈을 뜨면 우리는 스스로 하우스의 청초한 난초처럼 느껴진다.
아, 비닐이시여.
그리고 비닐에 아웃포커스된 세상의 신비. 나처럼 시력 좋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보지 못하던 사물의 진실인 듯.
이 틈에 모든 비닐에 감사를 드리자.
어머니가 늘 들고 다니던 검정 비닐.
그 안에 든 게 두부건 콩나물이건 흘러나오던 어머니의 콧노래. 행복이 전혀 없을 것 같던 어머니의 흥얼거림.
청명한 푸른색의 얇은, 배추 싸는 비닐… 비닐 중에 진선미가 있다면 빠지지 않을.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비닐들. 날아다니는 비닐, 죽은 비닐, 묻혀도 죽지 않는 비닐.
환각제로 변할 수 있는 비닐.
영화화되길 기다리고 있는 너희 비닐들. 연기력마저 갖춘.
감사합니다.
꼭 출연시켜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1월1일 밤, 스탭들이 신정 쇠러 서울로 가고 축사에서 혼자 자던 나는 그 축사 주인의 친구로부터 거친 방문을 받았다.

분명 허락을 받았는데 무단 사용이라며 그는 나를 쫓아내고 달래보려는 나를 그랜저승용차로 밀어버리려 하였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그 소도시의 깡패분이신 듯). 비닐의 위대함과 인생의 한 진리를 깨달은 직후 나는 시신으로 발견될 뻔하였다. 그 사건은 아마 미제사건이 되었을 것이며 내가 죽기 전 얼마나 깨우친, 고급한 생명이었는가도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알려지지 않았을 나의 마지막 생각은 “괜히 찍었네”. 그 뒤 큰돈을 지불하고 다시 사용허가를 받았으나 촬영장소는 끝까지 내가 풀어야 할 숙제들을 계속 내주었다.

축사는 촬영 직후 주인에 의해 철거되었다. 그 황량하고 아름다운 곳에 지금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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