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충무로 상장시대 [4]
2006-02-22
글 : 김수경

충무로 투자·배급시장에 새로운 지각변동이 다가오는가. 영화산업을 휘감고 있는 상장열풍은 투자·배급시장의 지형도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그 핵심에는 돈이 있다. 그동안 투자·배급시장은 멀티플렉스의 수익과 모기업의 막강한 자본력에 힘입어 승승장구해온 대기업 계열사가 굳건히 시장을 지키고 있는 양상이었다. 시장점유율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지언정 시장을 나눠가질 수 있는 권리는 그들만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였던 CJ엔터테인먼트-쇼박스-롯데엔터테인먼트의 3강체제, 또는 시네마서비스까지의 4강체제는 대형 통신기업으로부터 자본을 수혈받아 투자·배급사업으로의 진출을 노리는 충무로 제작사와 새로 시장에 들어온 대기업 계열사, 주식시장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투자·배급사가 가세하면서 둔중한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투자·배급시장의 다변화는 2006 한국 영화산업의 또 다른, 중요한 관심사다.

MK 픽쳐스-안정적인 콘텐츠 생산력에서 나오는 배급 파워

현재 기존 구도에 가장 먼저 도전장을 던진 것은 MK픽처스다. 2004년 1월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이 공구업체인 세신버팔로와 합병하면서 만들어진 MK픽처스는 지난해 11월 공구사업을 분리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업으로 거듭났다. 차분한 스텝으로 메이저 시장을 향해 전진해온 MK가 투자·배급시장에서 주목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가 제작하는 콘텐츠에 기반한다는 사실이다. 명필름의 안정적인 콘텐츠 생산능력과 강제규필름의 파괴력이 결합하는데다 마케팅과 기획력까지 덧붙여지는 탓에 MK는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MK는 공식적인 첫 배급작인 지난해 말의 <광식이 동생 광태>로 깔끔한 출발을 보였다.

MK픽처스가 자체 제작하는 <사생결단>

투자·배급에 대한 MK의 구상은 해마다 한국영화 10편에 메인투자자로 참여해 배급을 한다는 것. MK는 여기에 대략 50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내다본다. 이를 위해 지난해 두 차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기반으로 몇몇 펀드를 구성했던 MK픽처스 이은 대표는 “우호적인 펀드를 통해 확보한 250억원을 2번 회전해 500억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올해 MK픽처스는 자체 제작영화 6편과 투자작 1편, 배급대행작 2편 등 9편의 배급 라인업을 확정한 상태다. 해외 비즈니스도 순조롭다. 중국에서는 화샤TV연합에 IP TV 콘텐츠 공급계약을 맺었고 국영기업 보리그룹과 합자회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합자회사 베이징&이스턴 시네마가 설립되면 오는 11월부터 충칭에서 멀티플렉스 사업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준비한 강제규 감독의 할리우드 프로젝트가 조만간 모습을 드러내는 점도 기대를 갖게 한다.

싸이더스-1년에 12편 제작, 배급은 아직 보류

싸이더스가 현재 보이고 있는 정중동 또한 투자·배급시장에 묵직한 울림을 던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KT와 KTF가 280억원에 싸이더스의 자회사 싸이더스FNH의 지분 51%를 확보했을 때만 해도 충무로의 대다수는 “거액을 확보한 싸이더스가 수순대로 곧 투자·배급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싸이더스는 기존 제휴관계를 맺고 있던 CJ엔터테인먼트와의 관계를 고려한 듯 좀처럼 손아귀에 말아쥔 두루마리를 풀어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싸이더스FNH의 올해 제작 라인업을 놓고 보노라면, 당장이라도 배급업에 뛰어들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현재 싸이더스FNH의 영화 중 촬영을 마쳤거나 촬영 중인 작품은 모두 6편이고, 3∼4월 안에 촬영에 들어갈 작품도 6편에 달한다. 단일 제작사가 1년에 무려 12편의 영화를 제작해서 개봉하는 것이다. 그것도 확정된 작품만 그렇지, 4월 이후 촬영에 돌입해 개봉하는 영화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제작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 라인업은 언뜻 자체 배급을 위한 포석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12편 중 7편의 배급은 CJ엔터테인먼트와 논의 중이고,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쇼박스가 배급한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4편을 기반으로 독자 배급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싸이더스 자신이 현재까지 자체 배급 문제에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2007년 초를 투자·배급을 본격화하는 기점으로 삼을 것으로 보는 쪽도 있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1년에 10편 이상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싸이더스FNH와 거대 통신자본 KT의 결합이 투자·배급시장 본격 진출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면 기존 구도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라임엔터테인먼트-독립·예술영화, 글로벌 프로젝트의 차별화된 배급

또 하나 주목할 움직임은 최근 발표된 프라임그룹과 LJ필름의 결합인 프라임엔터테인먼트(가칭)다. 부동산 등을 중심으로 하는 프라임그룹의 상장사 이노츠에 LJ필름과 LJ가 자회사로 확보하고 있는 매니지먼트사 4개가 인수되는 방식으로 탄생하는 프라임엔터테인먼트의 사업모델은 기존 멀티플렉스 기반 대기업 계열사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프라임산업이 확보하고 있는 테크노마트, 아바타 등 쇼핑몰의 멀티플렉스를 하드웨어적인 기반으로 투자·배급을 펼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노츠는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5300평 공간을 모기업 프라임산업으로부터 20년간 임차하고 서울의 숲에도 12개관을 만들기로 계약을 맺는 등 차츰 멀티플렉스를 펼쳐나갈 계획이다. 프라임의 목표는 4년 안에 200개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이다. 멀티플렉스 사이트와 관련해서 프라임은 CJ CGV와 충돌을 빚을 공산이 크다. 이미 프라임과 CJ CGV는 강변역 테크노마트와 명동 아바타에 입점한 CGV의 임대 연장을 놓고 신경전을 빚은 바 있다.

“운영자본금만 내부에서 500억원을 지원하고, 공개시장 등의 일반투자를 통해 500억원을 조달해서 1천억원 규모로 꾸릴 방침”이라는 이승재 LJ필름 대표는 “2007년부터 1년에 15편 정도를 배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힌다. 프라임은 두 가지 점에서 기존 투자·배급사와 차별화를 꾀할 방침이다. 하나는 독립·예술영화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전략적으로 배급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가시화한다는 것이다. 이승재 대표는 CJ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추진 중이던 미국시장을 겨냥한 제작비 200억원짜리 프로젝트 <줄리아>를 프라임에서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튜브엔터테인먼트, 쇼이스트, IHQ-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배급 전략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한국영화 투자·배급사업 복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튜브엔터테인먼트는 최근 <필름2.0> 등을 출간하는 미디어이쩜영의 우회상장 기업 영진닷컴에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후 영진닷컴의 유상증자나 CB 발행 등의 스케줄에 맞춰 펀드 등을 구성해 투자재원으로 활용하면서 올해 7편의 한국영화를 배급할 튜브엔터테인먼트의 중장기 전략은 다른 투자·배급사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김승범 대표는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의 결합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나가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인 디지털 콘텐츠를 활성화하는 데 큰 힘을 기울일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결국,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와 매니지먼트까지 역량이 닿는 대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자금난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쇼이스트도 재활과정을 밟고 있다. 코스닥 상장업체 엠에이티에 지분의 절반 이상을 인수시킨 쇼이스트는 엠에이티의 유상증자 등에 함께 참여해 재원을 확보할 전망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반기에는 4∼5편의 한국영화를 투자·배급한다는 것이 쇼이스트의 계획이다.

<파랑주의보>
<데이지>

꾸준히 투자·배급의 문을 노크해온 IHQ의 행보 또한 큰 관심을 모은다. 지난해 <파랑주의보>를 단독 배급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IHQ는 자회사 아이필름의 차기작 <데이지>의 배급을 쇼박스에 맡겨 ‘일보 후퇴’의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정훈탁 대표가 한 기존 영화사 관계자에게 전권을 보장하며 영화 부문을 총괄해줄 것을 부탁하는 등의 움직임으로 봐서는 곧이어 ‘이보 전진’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SKT는 KT가 투자한 싸이더스FNH의 활발한 움직임을 올해 고스란히 체감할 것이다. 오는 4월 SKT가 최대주주로 확정되고 작년에 조성한 대규모 영상펀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IHQ를 통해 영화투자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거나 다른 컨텐츠 기업을 합병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