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브로크백 마운틴>의 리안 감독 [1]
2006-03-0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리안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브로크백 마운틴>이 방문했다. <와호장룡>의 신기를 뒤로하고 <헐크>를 만들었던 리안이 이번에는 눈부신 풍광의 서부로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는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 있다. 그것도 거친 카우보이들의 사랑이다. 그런데, 애달픔이 한없다. 먼저 개봉된 미국에서는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얻었고, 아카데미 시즌 최고의 화제작으로도 떠올랐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전개를 따라 리안이 만든 과거 영화들을 하나씩 조우시켜 그의 세계를 되짚었으며, 몇몇 매체에서 나눈 인터뷰도 묶어 실었다.

리안이 장편 데뷔작 <쿵후 선생>을 만든 것은 1992년이었다. 같은 해에 차이밍량 역시 장편 데뷔작 <청소년 나타>를 완성했다. 한눈에도 둘은 달랐다. 리안은 유연했고, 따뜻했다. 차이밍량과는 또 다른 대만영화의 작가주의가 나온 것 아닌가 싶었다. 대중과의 친화력에서만 본다면 그에게 미래를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두 번째 영화 <결혼 피로연>으로 보란 듯이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더니, 여세를 몰아 <음식남녀>까지 만들어 ‘아버지가 제일 잘 안다(Father Knows Best)’ 삼부작의 형태를 완성했다. 그러나, 차이밍량이 힘들고 고된 작가의 길로 파고들어가는 대신, 리안은 대중영화의 상대적 자유로움을 선택했다. 바깥으로 눈을 돌려 19세기 유럽의 귀족사회로 건너가 <센스, 센서빌리티>를 만들었다. 자세히 들여다볼 때 이 영화는 <음식남녀>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놓일 만한 사부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어쨌건 소재와 배경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그 보폭은 놀라운 이질감을 주었다. 보폭은 이때부터 더 빨라지고, 더 가늠하기 힘들어진다.

대만의 가족사를 다루던 그 실력으로 유럽의 가족사도 매끈하게 완성했구나 싶을 때쯤 <아이스 스톰>으로 미국의 1973년 겨울, 시체 같은 한 가족의 살풍경한 초상을 그렸다. 따뜻한 공기가 돌던 자리에는 얼음장 같은 무력감이 들어섰다. 주변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딛고 어떻게 미국 현대사의 심장을 할퀴어냈을까 궁금해하는 동안, 리안은 어느새 시간을 타고 올라가 <라이드 위드 데블>의 남북 전쟁 중 민병대 안으로 들어가 성별과 인종의 이상한 화합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는 놀랍게도 <와호장룡>에 이르러 고대 중국으로 다시 건너왔다. 그 안에 깃든 유연함은 자연과 인간을 조화롭게 존재하게 하여 보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흥행을 거둔 외국어 영화의 감독까지 되었다. 아시아의 정서를 살리면서도 미국 관객을 사로잡는 희귀한 길을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즈음, 이번에는 난데없이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인 <헐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비록 리안의 영화 중에서는 실패작에 속하지만, 코믹북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에서는 가장 별종에 가까운 흥미로움이 있었다.

그의 경공술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했다. 혹자는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더러는 의심스러워했다. 어떤 아시아인들은 그가 바로 아시아의 정서를 그려낼 줄 아는 것 같다고 말했고, 어떤 미국인들은 네까짓 게 미국을 알면 얼마나 알겠냐고 불편해했다. 틀림없는 건 언제나 일정한 장인적 기질이 발휘되었다는 것이다. 서부극이 있었고, 무협물이 있었고, 액션 블록버스터가 있었다. 강호의 숲과 웨스턴의 계곡을 동시에 동경하고 포착할 줄 아는 유일무이한 감독이 바로 리안이었다. 현존하는 감독 중에 리안에 견줄 만한 탐험가라면 마이클 윈터바텀 정도를 꼽을 수 있겠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아시아의 정서를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리안은 별스러운 지도를 지닌 감독이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지도는 리안의 방식대로 이리저리 접혀 있다. “영어를 사용하는 무협영화를 만드는 것은 존 웨인이 중국어로 말하는 웨스턴을 만드는 것”만큼 이상한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사실 그가 하는 작업은 그것보다 더 종잡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헐크> 다음에 게이 카우보이들의 구슬픈 사랑 이야기인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들 줄은 아마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쿵후선생>
<음식남녀>

리안을 소재와 배경으로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의미가 없다. 그조차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의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전통인 웨스턴 안에서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말할 때마다 리안이 명백히 맞춤형 대답으로 거기에 응하거나, 완곡하게 “이건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이며, 웨스턴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차라리, <브로크백 마운틴>의 형제가 있다면 그건 이상하리만치 <와호장룡>이다. 혹은 <와호장룡>이 기존의 무협영화에 두었던 거리만큼, 정확히 <브로크백 마운틴>도 웨스턴에서 비껴나 있다.

줄도 열도 없는 것 같은 리안의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접힌 리안의 지도를 훔쳐보는 수밖에는 없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일종의 그런 지도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크게 펼쳐놓고, 두 명의 주인공 에니스와 잭의 20년 사랑이 그리는 그 궤적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지점들과 나머지 영화들과의 관계를 그어가면서 볼 때, 난수표처럼 보이던 리안의 영화적 행보는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는 없을 것 같았던 리안의 산맥이 그려져 있다.

아버지가 있었다

리안의 아버지 리상은 본토인이었다. 혁명이 일어났고, 지주 출신의 그의 가족은 전부 몰살당했고, 리상은 홀로 살아남아 대만으로 내려왔다. 그는 승려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대만으로 내려온 또 한 명의 생존자 양수창을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1954년 리안을 낳았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장으로서 경력을 쌓았고, 아들도 자신처럼 교육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영화감독이 되었다. 리안의 아버지는 리안이 <헐크>를 만든 얼마 뒤 세상을 떴다. “아버지가 (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들도록) 당신을 격려했다는데 사실인가?”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리안은 말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계속 영화를 만들어 나가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그건 내가 얼마나 의기소침해 있었는지를 알고 계셨기 때문일 뿐이다. 그가 내게 영화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해 격려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오스카상을 탔을 때조차 그는 여전히 내가 교사가 되거나 실제로 다른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나는 그에게 게이 카우보이 영화를 만들 거라고 말한 적이 없다.”

1963년 전까지 <브로크백 마운틴>의 주인공 에니스 델 마(히스 레저)와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할)는 그들이 남자를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그들은 브로크백이라는 이름을 지닌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에서 한철 방목 일꾼으로 처음 만났다. 산중으로 들어가 양을 돌보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그곳에는 둘뿐이었다. 어느 몸서리치게 추운 날 술에 취한 채 좁은 텐트 안에서 몸을 부대끼며 잠을 청하던 새벽에 그들은 본능에 이끌려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눈다. 다음날이 되어 서로 간밤의 일을 부정하려 하지만 사랑은 싹튼 뒤고, 브로크백은 이제 에니스와 잭의 천국이 된다. 그 뒤로도 20년 동안 그곳은 에니스와 잭의 사랑을 허용하는 유일한 자연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촬영현장

<브로크백 마운틴>의 아들들은 아버지들에게 자기들이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아니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은 원초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아버지다. 에니스는 잭이 죽는 순간까지 잭이 그토록 원하던 둘만의 가정을 꾸리는 것을 미룬다. 에니스는 유년 시절의 그 끔찍한 광경을 기억한다. 아버지가 손을 끌고 가 억지로 보여준 장면은 마을에서 함께 살며 목장을 운영하던 두 남자 중 한 명의 죽음이었다. 그는 성기가 뽑혀 죽어 있었다. 단지 남자 둘이 함께 살았다는 죄로 그는 죽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사실상 극의 중심은 에니스인데, 그가 끝내 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바로 그 아버지가 보여준 도륙의 현장 때문이다. 에니스는 분명 아버지 짓이었을 거라고 잭에게 말한다.

리안은 자신의 영화적 관심을 ‘아버지의 자리’를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아버지가 제일 잘 안다(Father Knows Best)’ 삼부작에서 아버지가 주인공이자 영화의 중심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세 편의 영화에는 모두 주 사부라는 아버지가 등장하며, 랑시웅이라는 배우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의 아버지는 마치 리안의 가족사를 배경으로 굴곡되는 듯하다. 특히 <쿵후 선생>의 주사부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아내를 학살로 잃고 대만으로 내려온 사람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형상은 리안의 영화 속에서 여러 가지로 변모해갔다. <아이스 스톰>처럼 무능한 어른들의 세계를 상징하는 허수아비로 나오기도 했고, <와호장룡>의 리무바이처럼 스승이고자 하는 유사 아버지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리안이 영화 속에 아버지의 자리를 넣으려고 얼마나 고집하는가는 없어도 될 듯한 곳에 그가 있을 때 더 명확해진다. 원작과 달리 과학자인 아버지로 인해 변이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아들이 괴물이 된다는 <헐크>의 내용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아버지는 <헐크>만큼이나 무서운 내력을 지닌 장애의 근본이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자리는 가족 안에 있고, 그건 곧 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