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행간과 고백의 어휘
리안이 작가보다는 장인으로서 설명되는 이유는 주로 그에게 미학적인 어떤 구조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리안의 영화적인 풍부함은 비밀과 상실이 어떻게 전달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은 ‘고백과 침묵’으로 드러난다. 리안의 영화에는 언제나 이 두 양면의 순간이 들어 있다. 왜 아닐까. 비밀은 고백하거나 침묵하거나 해야 하는 것이고, 상실은 뱉어내거나, 마셔버리거나 해야 한다.
리안의 영화는 명확한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더 특이한 건 영화를 주의 깊게 볼 때만 이 공백들을 눈치 챌 수 있게 되어 있고, 만약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그냥 아귀가 맞고 의문은 없어 보이도록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대중영화 안에서 리안의 실력이다. 예를 들어, <와호장룡>에서 관객은 왜 리무바이가 수련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가 청명검을 버리려는 이유도 분명치는 않다. 푸른 여우는 “살을 섞은 사이임에도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사부를 욕하지만, 그녀와 사부가 어떤 관계였고, 푸른 여우가 사부를 어떻게 죽였는지는 영화상으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그 외에도 관객이 모르는 것은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영화는 정서의 끈을 따라 흘러가며 궁금증을 잠재운다.
(다음은 <브로크백 마운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내용)에니스는 어느 날 반송되어 돌아온 엽서를 받는다. 거기에는 수신자 사망이라는 믿지 못할 사실이 적혀 있다. 영화 속에서 잭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에니스와 잭이 마지막으로 간 브로크백에서의 순간이다. 거기서 잭은 “너는 나를 가끔 만나는 친구로만 생각하지만, 나는 너를 20년 동안이나 기다렸다”고 말한다. 그 뒤로 잭의 모습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으며, 죽었다는 소식만 들린다. 잭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소설 브로크백 마운틴이 뉴요커지에 실린 다음해 메튜 셰퍼드라는 와이오망 대학의 22세 게이 청년이 술집에서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다. 잭의 죽음을 그것과 연관해서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리안은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잭이 죽는 장면을 찍긴 했지만 넣지 않았다고 말한다).
에니스는 잭의 부인 루린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자신이 낚시 친구 에니스라고 말한다. 루린은 차 타이어가 펑크나 거기에 맞고 잭이 죽었다고 냉랭하게 설명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가 브로크백이라는 곳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어딘지 몰라 화장했고, 절반의 유골은 그의 부모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에니스는 잭의 부모를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20년간 잭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징표를 발견하고는 집에 갖고 온다. 어느 날은 딸이 찾아와서는 결혼을 할 거라고 말한다. 에니스는 정말 그 남자가 너를 사랑하냐고 묻는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에니스에게 잭과의 관계를 캐묻지 않는다. 영화는 누구에게도 그런 대사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 루린과, 잭의 부모와, 심지어 찾아온 딸까지 그들은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말하지 않으면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영화 속에는 어떤 순간들이 있다.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가로막는 그 절실한 상실에 대해 인식하게 되는 순간들. 에니스가 이혼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 찾아온 잭, 그와 만날 때 에니스는 한순간 저 멀리 지나가는 하얀 트럭에 눈길을 준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한 장면이지만, 그게 에니스의 침묵의 이유다. 그는 그 차를 타고 가는 주민이 자신과 잭의 관계를 의심할까 두렵다. 그런 세상의 편견을 이길 자신이 없다. 사랑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에니스는 영화의 마지막에 잭에게 “맹세한다”고 말한다.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고 맹세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맹세한다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그 의미에 있기보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에니스의 태도다. 잭이 사랑하는 방식이 언제나 구애였고, 마지막조차 20년 만의 슬픈 고백을 남기고 떠난 것이었다면, 에니스가 약속하는 사랑의 방식은 말해야 할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다. 리안의 영화가 스토리텔링의 많은 부분을 속으로 삼키며 정서를 내뱉듯이, 영화 속의 에니스도 그렇게 한다.
그런 점에서 리안은 아주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다. 리안에게는 ‘영화적 형식’이 없는데, ‘영화적 공기’는 있다. 만약 그 말이 과장이라면 영화적 형식의 독창성 없이 정서를 유지할 줄 아는 신기한 면을 지니고 있다. 그게 리안을 더 주목해서 봐야 할 이유다. 리안은 진정한 어떤 작가의 경지만큼 이르지는 못하지만, 늘상 자기 자장 안에서 인물을 살아 있게 한다. ‘형식’이 없는데, ‘순간’이 있다는 건 아무래도 침묵과 고백에 관계된 리안의 특징이다. “맹세할게”이 말은 다시 새겨도 모호한 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엔딩은 그렇게 뭔가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리안의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 자연과 문화, 사회와 개인, 이성과 감성 등 수없이 많은 대립물을 세워놓고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거의 언제나 이렇게 사이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거의 한 가지 약속이 있다. 슬프고 어쩔 수 없지만 살겠다는 것이다. 삶은 힘겹지만 지속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 마지막 말을 던진다.
원작과 영화 사이
소설 첫머리 나이먹은 에니스의 회상으로 이야기 전개
<브로크백 마운틴>은 <쉬핑 뉴스>로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는 애니 프루의 30쪽짜리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이며, 1997년 <뉴요커>에 실린 작품이다. 애니 프루는 높아진 영화의 인기 덕에 인터뷰 공세에 시달려야 했고, 급기야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인터뷰 사절’의 뜻을 표명할 정도였다. 질릴 정도로 반복했던 인터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다. 먼저 영화에 대해서는 “큰 충격이었다. 나는 제작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18개월 동안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거의 알 수 없었다. 좋게 나올지 나쁘게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9월에 본 영화는 놀라웠다. 영화를 보는 순간 내가 공들여 만들어냈던 인물들이 새롭게 내게 되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도 “제이크 질렌홀이 연기한 잭의 경우 내가 생각했던 촌스러운 이미지와는 좀 달랐지만 감수성을 풍부하게 보여준 것 같다. 히스 레저는 내가 생각했던 소설 속 인물과 꼭 맞을 뿐 아니라 소설의 묘사를 뛰어넘은 연기를 성취해냈다”라고 평했다.
그렇다면 영화는 원작을 어떻게 각색했을까? 영화는 원작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탈피를 시도한다. 젊은 시절의 에니스와 잭이 브로크백에서 처음 만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에 반해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 소설의 첫 번째 장에는 이미 늙어버린 에니스의 모습이 등장한다. 간밤에 잭의 꿈을 꾸고 나서 마음 설레는 에니스. 그 뒤로 이야기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에니스와 잭이 처음 정사를 나누는 순간, 에니스와 엘마의 결혼 생활, 4년 만에 다시 만나 사랑을 이어가는 것 등 긴 플래시백이 이어진다. 에니스와 잭이 브로크백을 떠나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슬퍼하며 싸웠던 장면을 한 문장으로 처리한 소설에 비해 영화는 그 장면을 좀더 비중있게 다뤘고, 잭의 부인 루린의 모습이 전화 한통화로 묘사되는 소설에 비해 영화는 그녀의 역할에 좀더 힘을 실었다. 영화는 소설보다 잭의 부분을 다소 늘렸는데, 그럼으로써 두 인물의 세월을 ‘병렬’로 전개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