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 얼굴, 내 두 눈, 난 내 얼굴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구석구석 살펴보았지요.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미라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그 얼굴에서 조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겁니다. (중략) 그의 얼굴은 그의 아버지의 얼굴 모습이 되어버린 겁니다. 골격도 같고, 눈도 같고, 코도 같고, 숨쉬는 모습도 같았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모습은 다시 그의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 <매장된 아이>
셰퍼드는 비트 세대뿐 아니라 마약과 재즈의 영향도 받았다. “나는 재즈를 하나의 운명으로 간주한다. 글이라는 것이 재즈의 즉흥연주와 같아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무엇의 영향이었건, 셰퍼드는 1966년에 이어 67년과 68년에도 오비상을 받았다. 셰퍼드는 60년대 반문화의 상징이었고, 오프 브로드웨이 최고의 스타작가였다. 그는 라디오, 영화, 광고, 로큰롤, 재즈와 같은 비문학적 요소를 무대에 도입했으며, 현실을 설명하는 대신 ‘감정의 풍경’을 대사와 무대를 통해 드러냈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였다. 그는 각성제와 록 음악에 빠져 있었고, 헤로인 중독을 이유로 징집을 피하기도 했다. 1969년에 그는 오-랜 존슨 다크와 결혼했다. 70년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자브리스키 포인트> 대본을 쓰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런던으로 떠난 셰퍼드는 74년까지 런던에 머무르며 <범죄의 위력>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마침내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정착한 그는 ‘가족 3부작’으로 알려진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77년에 <굶주리는 층의 저주>를, 78년에 <매장된 아이>를, 80년에 <진짜 서부극>을 쓴 그는 <매장된 아이>로 퓰리쳐상을 받았으며,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서부 가정의 붕괴를 통해 꿈의 상실, 물질문명의 창달과 황폐해진 인간성, 부자(父子)로 대변되는 옛 서부와 신 서부의 갈등을 드러내는 ‘가족 3부작’은 유진 오닐에서부터 이어지는 미국 가족의 비극을 그렸다. 셰퍼드는 미국 대중문화가 생산한 허구적인 서부의 이미지를 폭로하며, 폭력을 대물림하는 가족 및 국가의 허위를 드러냈다. 근친상간, 유골단지, 정신병에 걸린 아버지/아들, 신경쇠약에 걸린 어머니/딸, 창밖의 황량한 풍경, 근친 살해, 엽총, 사냥, 가출, (환영받지 못하는) 귀환, 부모의 과오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들, 폭력적 아버지/아들, 알코올 중독, 죽은 식물이나 동물의 이미지는 이후 <돈 컴 노킹>에 이르기까지 부분적으로 끝없이 차용된다.
서부는 황폐해진 현대 미국사회의 초상화
셰퍼드가 영화 출연으로 관객의 이목을 끈 것은 농부로 출연한 1978년 테렌스 멜릭의 <천국의 나날들>에서부터였다.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은 <뉴요커> 기고문에서 “범상치않은 잘생긴 얼굴에 살짝 뻐드렁니가 있는 셰퍼드는 거의 대사가 없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진정한 초기 미국인 그 자체로 보인다”고 셰퍼드의 연기를 평가했다. 82년에 출연한 <프랜시스>에서 그는 연기로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이후 그의 삶을 함께할 여인을 만나는 수확을 거뒀다. 아내와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던 그는 함께 공연한 제시카 랭과 살기 시작했다. 랭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 복잡한 개인사는 83년작 희곡 <사랑의 바보짓>에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배우 에드 해리스가 데뷔한 연극작품이기도 한 <사랑의 바보짓>은 이중생활을 한 아버지의 배다른 자식들인 아들과 딸이 사랑에 빠지는 근친상간을 소재로 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삶을 고스란히 반복, 두 여자와의 불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아들의 이야기다. 셰퍼드와 제시카 랭은 지금까지 함께 살며 두 아이를 낳았고, <돈 컴 노킹>에도 동반 출연했다. 셰퍼드는 <필사의 도전>(1983)에서의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척하기. 그게 나를 채우니까. 채우지. 비지 않았어. 다른 것. 평범한 것. 좋지 않아. 빈 것. 평범한 건 빈 거야. 지금 난 남자 같아. 난 남자처럼 느껴. 셔츠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줘. 나는 셔츠 입은 남자야. 그렇게 보여? 아버지처럼. 보고 있어? 형처럼. - <마음의 거짓말>
셰퍼드에게 또 하나의 전기가 찾아왔다. 그가 쓴 산문집 <모텔 연대기>를 읽은 빔 벤더스가 영화화할 뜻을 밝힌 것. 셰퍼드는 <파리, 텍사스>의 각본을 쓰게 되었다. “셰퍼드에게 트래비스를 직접 연기해달라고 했다. 그는 차일피일 답을 미루며 시나리오를 썼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에, 트래비스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피했던 것이다”라는 벤더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트래비스는 그가 연극에서 보여주었던 많은 아버지들과 아내와 아들을 떠난 그와 너무 닮아 있었다. 벤더스와 셰퍼드는 사막에서 한 장면씩 써가며 영화를 찍었지만 트래비스가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면서부터 시나리오 쓰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벤더스는 설득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인 핍쇼 장면에 이르러 벤더스는 셰퍼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셰퍼드는 전화통을 붙들고 트래비스와 제인이 나누는 40페이지 분량의 대화를 불러주었고, 벤더스는 일일이 손으로 받아 적은 뒤 아침 내내 타이핑을 해서 배우들에게 건넸다. <파리, 텍사스>는 8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1986년, 셰퍼드는 희곡 <마음의 거짓말>로 열 번째 오비상과 뉴욕극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정신상태가 고르지 못한 베스가 유일하게 희망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이 연극에서 그는 ‘척하기’, 즉 연기에 대한 단상을 풀어놓았다. ‘척하기’는 정체성의 변신을 뜻하는 동시에 폭력과의 단절, 진실의 회복, 사랑의 성취로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 서부의 종말만큼이나 강하게 시사되는 것은 세계를 상대로 무식하게 힘을 자랑하는 미국에 대한 은유다. 셰퍼드는 성조기를 둘러싼 인물들의 다양한 행동을 통해 “무기랑 깃발을 가지고 노는 것 말고 좀더 나은 일을 할 수 없느냐”고 힐문한다. 이후 그는 이전에 희곡으로 썼던 작품들을 시나리오로 개작했고, 그중 몇몇 작품에 출연했다. 셰퍼드는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1988년에 <먼 북쪽>을, 1994년에는 리버 피닉스의 유작이 된 <침묵의 말>을 연출했다. 이 무렵부터 그는 극작보다 영화 출연과 산문집에 더욱 몰두했다. 딸과 비극적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를 연기한 <사랑과 슬픔의 여로>, 여제자를 사랑한 대학교수 역의 <펠리컨 브리프>는 그의 존재를 빛내주었다. 특히 <블랙 호크 다운>에서는 정예 군인들을 통솔한, 단호하고 군인정신이 투철한 개리슨 소장 역으로 출연해 자신의 대사와 신을 직접 수정하기도 했다.
“내가 무엇보다 그리워하는 게 뭔지 아니? (중략) 바람. 아주 강렬하고, 뜨거운. 사막 깊숙한 곳에 있는 건조한 바람은 나무도 날려버려. 이 바람은 모든 걸 깨끗하게 없애버리고 하늘에는 구름도 남기지 않아. 순수한 푸른색. 순수한, 순수한 푸른색. 멋지겠지?” - <마음의 거짓말>
샘 셰퍼드는 <돈 컴 노킹>으로 빔 벤더스와 <파리, 텍사스> 이후 20년 만에 재회했다. 셰퍼드는 벤더스와의 협의를 통해 3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쓰고 주인공 하워드 스펜스를 연기했다. 이번에는 빔 벤더스가 그를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셰퍼드는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스펜스를 연기하고 싶어했다. 스펜스의 ‘감정의 풍경’ 역시 <파리, 텍사스> 때처럼 그저 사막이고 황량하고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것이다. 왕년엔 서부극 스타였지만 이젠 한물간 스펜스가 촬영장을 도망나와 30년 만에 찾아간 어머니는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일깨워준다. 스펜스는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 아들을 찾아간다.
20년 전 트래비스, 하워드로 돌아오다
<돈 컴 노킹>은 셰퍼드 작품세계의 축약판이지만 가장 긍정적으로 열린 결말을 맞는다. 포스터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에서, 안정적인 수평의 건물 지붕 위로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 앞의 건물은 그러나 수직으로 곤두서 있고, 위협적이다. 수직의 건물은 가로등에 기대선 스펜스를 왜소해 보이게 할 뿐 아니라 그를 덮칠 듯하지만 그 도시마저도 퇴락 일로를 걷고 있다. 그는 아들을 찾아 떠나면서 그간 애써 외면한 황폐한 내면의 풍경을 마주한다. “말이 지닌 위력은 인물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관객의 눈앞에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는 셰퍼드가 쓴 대본은 설명적이기보다 도발적이며, 그의 연기는 풍경과 하나가 된다. “쓰는 게 연극이고 연극이 쓰는 것인 세계가 있다. 나는 그 분리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모든 것이 교차되는 것에 흥미가 있다.” 셰퍼드는 캐릭터와 자신의 삶 또한 분리하지 않았다. 영화 속 스펜스의 “날 잊지 말아요”라는 말은 그래서, 길 잃은 카우보이의 또 다른 여정을 기다리게 만들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