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짐 캐리 주연의 <뻔뻔한 딕 & 제인> 뉴욕 시사회 [1]
2006-03-13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직장인이라면, 또 자기 사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악몽’을 꿔봤을 것이다. 대기업의 비리사건으로 한순간에 실직자가 돼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대사회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슈가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다큐멘터리 이외의 다른 포맷으로 작품화되지 않았던 것은 아직도 엔론이나 월드컴 사건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에 이유를 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뻔뻔한 딕 & 제인>의 뉴욕 시사를 가진 짐 캐리는 다르게 생각한다. “코미디언이 이같은 사람들의 상처를, 모두에게 불편한 이슈를 보듬지 않으면 과연 누가 할 것인가”라고.

<뻔뻔한 딕 & 제인>은 캐리의 초창기 영화인 <에이스 벤츄라>를 연상시키는 육체적인 코미디를 주로 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기업의 부패는 물론 미 정권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임을 알 수 있다. 딘 패리솟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밤 11시에 네트워크 뉴스를 보는 대신 <존 스튜어트의 데일리 쇼>(풍자 뉴스쇼)를 본다”며 “미국 관객이 사회적인 이슈보다는 안전한 코미디를 좋아한다는 생각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특히 코미디는 심각한 사회문제는 물론 이를 풍자할 수 있는 좀더 폭넓은 창작의 공간을 가진 장르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말에 개봉한 영화(국내 개봉 3월30일 예정)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일부의 우려에도 개봉 5주 만에 1억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짐 캐리 주연 영화 중 수익 1억달러를 넘긴 10번째 작품).

대기업 스캔들을 다룬 첫 코미디

<뻔뻔한 딕 & 제인>은 지난 77년 제인 폰다와 조지 시갈이 주연한 동명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대기업 스캔들이라는 현대 뉴스 헤드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사회문제로 내용을 바꾸었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은 현재가 아닌 2000년. 제인 역을 맡은 테아 레오니는 “2000년은 미국에 중요한 시기다. 미국인들이 아직 ‘순수’를 잃어버리지 않은 (엔론 사건이나 9·11 사태) 때라고나 할까”라고 밝혔다. 패리솟 감독은 “2000년에는 버블이 아직 깨지지 않았을 때”라며, “당시 가장 큰 일은 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이 전부였다”고 덧붙였다. <라이어 라이어>와 <그린치> 등 캐리의 작품을 제작해온 브라이언 그레이저는 “짐의 77년 동명작의 리메이크 아이디어로 시작됐다”며 “자신과 함께 이 영화를 제작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에 두말없이 승낙했다”고 한다. 이후 <갤럭시 퀘스트>와 HBO 시리즈 <Curb Your Enthusiasm> 등으로 코미디 연출을 인정받은 패리솟이 감독을 맡았고, 테아 레오니가 대부분의 장면에서 캐리와 호흡을 맞춰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일 제인으로 캐스팅됐다.

레오니가 완벽한 제인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은 캐리는 “테아가 <디제스터>(Flirting with Disaster)에서 보여준 코미디 연기를 아직도 기억한다”며 “그녀는 저돌적이지만 반면에 상처받기 쉬운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는데, 제인에게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주인공 딕 하퍼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기업의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6시간 만에 직장과 연금 등 모든 것을 잃는다. 바로 하루 전만 해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던 딕 하퍼는 아내 제인에게 다니기 싫은 여행사에도 사표를 던지라고 여유있는 제안을 던졌다. 그러나 회사의 홍보 대표로 뉴스채널과 인터뷰를 하던 딕은 CEO 잭 매칼리스터(알렉 볼드윈)의 대량 주식매각과 기타 스캔들에 대한 당혹스러운 질문 공세를 받으며, 회사의 주식시세가 곤두박질치는 것을 목격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졸지에 수입원이 끊긴 딕과 제인은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 위해 노력하지만, 좀처럼 쉽지가 않다. 딕이 찾는 고위직은 자리가 없거나, 다른 사람이 이미 차지했거나 아니면 딕의 악몽 같았던 뉴스 인터뷰를 6개월 뒤에도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고용주들뿐이다. 조금이나마 모아두었던 돈도 떨어지고, 회사 부도 뒤 회사 인근의 부동산 시세도 형편없이 떨어져 집도 팔지 못하고, 모기지나 전기료, 수도료를 내지 못하게 된 딕과 제인. 다급해진 딕은 ‘코스코’ 같은 대형 매장에서 판매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남미 불법 거주자들이 육체노동을 하는 곳에서 일거리를 찾다가 신원불명으로 쫓겨나 한밤중에 몰래 국경을 넘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편 제인은 어떤가. 역시 다급하게 일자리를 찾던 제인은 전혀 알지 못하는 에어로빅과 유사한 ‘타이-보’ 교사로 이력서를 속여 가르치다가 쫓겨나고, 아직 허가가 나지 않은 화장품의 테스트 대상으로 지원해 푼돈이라도 벌려다가 부작용으로 얼굴이 두배로 붓고 만다.

마침내 새로 깔았던 잔디까지 빼앗기자 자포자기 심정이 된 딕. TV에서 자신의 재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은 물론 수백만달러의 회삿돈을 횡령하고도 멀쩡하게 고개를 들고 사는 매칼리스터를 보면서 “나라고 왜 고지식하게만 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때부터 딕과 제인의 ‘뻔뻔한’ 삶이 시작된다.

짐 캐리와 테아 레오니의 즐거운 화학작용

딘 패리솟 감독은 캐리와 레오니의 증흥연기를 본 것이 촬영 중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말한다.

“꼭 그들에게 장애물을 던져놓고 지켜보는 것 같았다”는 패리솟 감독은 “짐과 테아의 케미스트리가 워낙 좋아 기본적인 세팅만 해놓은 채 보이스 박스나 프롭을 던져놓고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 감독으로 배우들을 놓아줌으로써 얻는 것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에 따르면 50%가량이 스크립트였고, 나머지가 거의 즉흥적인 퍼포먼스였다고. 일부는 촬영 중에 스크립트를 고쳐 쓰거나, 새로운 장면을 쓰기도 했다. 또 어떤 경우에는 4∼5테이크로 끝내는 장면이 있었는가 하면 배우들의 요구로 리듬을 찾으려고 계속된 테이크도 있었다.

“짐에게 쪽팔림(?)이란 없다”고 말하는 감독은 캐리의 즉흥연기로 연출된 재미있는 예를 몇 가지 들려주었다. 영화 속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딕이 은행의 한 사무실 천장에 숨는 장면이 있다. 패리솟 감독에 따르면 이 장면은 원래 캐리가 책상 뒤에 있는 커다란 의자 뒤에 숨는 것이었다고. 그러나 여기저기 새로운 장소를 찾던 캐리는 결국 천장 위에 원숭이처럼 매달리게 됐다.

또 딕과 제인이 도둑질을 하기 위해 변장하는 여러 캐릭터 중 ‘서니와 셰어’가 있다. 본래 캐리가 서니로, 레오니가 셰어로 변장을 하기로 했으나 캐리의 고집으로 그에게 셰어의 빛나는 드레스가 돌아갔다.

캐리에 버금가는 코믹 연기로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 레오니는 한동안 평범한 주부 역할을 도맡아 했으나, 스스로 스테레오 타입을 깨고 이번 영화에서 직접 대부분의 스턴트를 하는 등 육체적인 코미디 연기를 한껏 선보였다.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는 레오니는 “우리 가족에게는 웃음이 아픔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번 경험은 개인적으로도 무척 소중하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레오니에 대한 칭찬을 끊임없이 하던 캐리는 레오니와의 연기 중 그녀가 진짜 부인으로 보이는 ‘존’(zone), 삼매경에 빠진 장면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테아가 화장품 실험에 참여한 뒤 부작용으로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잠자고 있는 장면이 있다. 그 옆에서 잠이 깬 딕을 연기하는데, 테아의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더라. 부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코고는 소리도 안 들리더라. 그저 내 아이를 낳아주고, 10년 동안 변함없이 나를 지켜주었던 사랑스러운 아내로 보였다. 그 순간은 연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한다.”

캐리와 레오니의 연기 외에도 <뻔뻔한 딕 & 제인>에는 빛나는 조연들의 코믹 연기가 가득하다. 비열한 CEO 잭 매칼리스터 역을 맡은 알렉 볼드윈을 비롯해 매칼리스터 대신 모든 죄를 뒤집어쓴 고위 관리로 출연한 리처드 젠킨스, 딕의 질투심 많은 이웃과 친구로 출연한 존 마이클 히긴스, 제프 칼린 등이 있다. 대기업의 부패를 매칼리스터 역을 통해 잘 표현한 볼드윈은 캐리가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싶었던 배우였다고. 볼드윈이 “<NBC>의 스케치 코미디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한 호스트 중 가장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다”는 캐리는 “알렉이 <마이애미 블루스>에 나왔을 때부터 그의 약간은 비틀린 코미디 연기의 팬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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