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파라치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2]
2006-03-22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정리 : 이영진

적정 가격의 유료화가 필요하다

씨네21/ 유료화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

조성규/ 올해 베를린에 갔는데 모바일 판권을 계약서에 넣어달라고 했더니 상대가 좀처럼 이해를 못하더라. 그들 입장에선 그게 수익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반면, 우리 입장에선 거대 통신회사들의 요구가 있는 거고. 인터넷 판권만 하더라도 지금은 다 계약서에 명시하는데, 실은 한국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다.

조광희/ 초고속 인터넷이 발전한 한국 같은 멋진 신세계에서 발생하는 곤란한 문제인데. (웃음) 개인적으로는 결국엔 극장, DVD와 비디오 그리고 인터넷 정도로 윈도가 압축될 것이라고 보는데. 현재는 이용하고 싶고, 이용하기 쉬운데, 자꾸만 묶어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인간행동 차원에서 볼 때 법이 있고 그 법을 사람들이 얼마나 잘 지키느냐 하는 문제는 얼마나 법을 쉽게 어길 수 있느냐, 법을 어겼을 때 리스크는 어느 정도냐, 합법적 대안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그런데 법을 어기기는 쉽고, 리스크는 별로 크지 않고, 합법적 모델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혼란이나 갈등이 초래된다고 본다. 선을 그어줌으로써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가 합리적 행동 패턴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적정 가격의 유료화가 필요하다.

조성규/ 유료화를 하면 새로운 윈도가 생기는 셈인데, 어떤 국제적인 표준화 모듈이 없다. 또 국내 수요만 갖고서 그게 가능할까. 게다가 유료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공짜를 찾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저작권자 입장에선 파일을 다운로드받게 하는 방식은 여전히 불안하다. 누가 가져갈지 모르니까. 디빅 파일을 CD에 담아서 DVD보다 저렴한 상품을 내놓는 것이 어떨까 싶다.

조광희(변호사·법무법인 한결)

조광희/ DVD보다 값이 싸겠지만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편의성이 없다고 본다. 클릭, 클릭, 클릭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굉장히 큰데 그게 없어지는 것이니까. 외국 작품이 곤란하다면 한국영화부터서라도 그런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제협에서 추진하는 저작권 사업도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고. 또 유료화할 경우 불법 다운로드를 근절할 수 없다고 비관적으로 얘기했는데, 처벌이 필요한 행위도 있고 쉽게 접근해서 볼 수 있는 방법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섬세한 기준이 당연히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김혜준/ 제협은 저작권을 갖고 있는 쪽이 아니라는 점에서 딜레마를 안고 있다. 투자·배급사쪽이 권리를 갖고 있는 경우도 많고. 그 권리자 관계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조성규/ 조 변호사님의 예측처럼 윈도가 그런 식으로 정리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지금의 갈등도 해프닝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나마 영화쪽은 음악보다는 상황이 심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극장이 관객을 유인하는 힘을 여전히 갖고 있고. 일례로 <나비효과>는 디빅이 많이 돌아서 외려 마케팅에 활용했고, 흥행이 잘되기도 한 예외적인 선례가 있는 걸 보면.

이원재/ 영화가 음악과 양상이 많이 다를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다만 음악쪽보다 영화쪽이 불법 파일로 인한 피해가 적다는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영화쪽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도 된다. 모니터를 보면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꽤 있으니까. 인터넷과 TV의 융합이 이뤄지는 기술적인 시도들이 계속 잇따를 텐데 유료화에 대한 논의는 그런 기술 발전까지 염두에 두고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의 공공성 회복도 논의돼야

씨네21/ 문화연대쪽에서는 그동안 저작권이 배타적인 소유권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해왔다.

이원재/ 불법 파일을 둘러싼 논쟁은 따지고 보면 이용자와 창작자의 싸움이 아니다. 문화 콘텐츠가 디지털화하면서 등장하는 자본과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자본의 싸움이다. 저작권은 그동안 강화되어왔지만, 저작권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 것이 사실이다. 소리바다 등과 관련해서 음악쪽 토론에 여러 번 참여했는데, 1, 2년 동안은 네티즌과 저작권 단체 그리고 시민단체가 뒤섞여 싸우다가 그 뒤로 포털사이트와 통신회사가 싸우는 형국이 됐다.

조성규/ 하긴 I업체의 경우 복제 파일이 꽤 많이 돌았던 곳인데, 최근에는 국내 대기업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일 정도라고 하니까. 스트리밍 방식이든 다운로드 방식이든 인터넷을 기반으로 새로운 윈도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이익은 자본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원재/ 저작권의 취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애초 저작권은 사회적 공공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산업화 초기에 마스터들이 시장에 생산물을 내놓길 꺼리다 보니 사회적 보상을 통해 내놓도록 하고 공공이 이용하게끔 한 것이다. 그런데 자본을 경유하면서 저작권 개념이 지나치게 배타적 소유권 개념으로 바뀌었고, 애초 취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를테면 독립영화 감독이 몇 백만원의 예산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하자. 공영방송이 저작권을 갖고 있는 자료화면을 쓰고 싶은데, 그걸 쓰려면 예산에 맞먹는 몇 백만원을 내야 한다. 도서관에서 복사를 하는 등의 자료 이용 권한도 저작권 보호라는 이유로 제한을 받는다. 저작권에는 공정이용(Fair Use: 저작권은 무조건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익 등의 이유로 제한될 수 있다. 즉,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사용, 복제해도 무방한 예외 기준과 범위가 정해져 있다)이 포함되어 있는데, 관련 법 개정 논의 등에서 그런 영역은 무시되기 일쑤다. 또 한국은 디지털이나 저작권 관련 법제화가 지나치게 빠른 편이다. 저작권의 본래 취지는 잊고서 관련 업계의 이익만을 대변하려 하는 것을 보면 심히 걱정이 된다.

조광희/ 최근에 우상호 의원이 발의했다가 무산된 저작권법 개정안의 경우 부정한 이득을 취한 온라인 업체들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입법 취지에는 공감한다. 다만 그 법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치밀하고 충분한 논의나 합의가 없었다는 점은 문제다. 저작권법의 경우 이제는 잘못 규정하면 전 국민이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일종의 기본법인데 지나치게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김혜준/ 자본은 돈이 된다고 하면 끊임없이 잡아먹게 되어 있다. 그런 자본의 논리나 운동에 정책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 통신자본이 진입하기 시작한 충무로의 경우 앞으로 기존 홀드백이 무너지고 콘텐츠 제작자들의 생산활동 또한 수익을 위한 행위들로 단순화할 위험이 크다. 이 처장의 말처럼 저작권의 공공성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은 중요하다. 특히 정부가 일부 창작자들에 대한 지원에만 집중하고 유통이나 소비 형태에 대해서는 별로 개입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강력한 문화정책이 절실하다

이원재/ 도덕적인 양심에 호소하는 캠페인보다 심리적 수혜감을 줄 수 있는 방식이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 호환마마 운운해서 먹힐 시대가 아니다. 정책 입안자보다 이용자들이 시스템을 더 잘 알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게다가 이용자들의 저작권자들에 대한 불신도 높다. 음악부문만 하더라도 죽은 사람이나 군소업자에게 돌아가야 할 저작권료를 떼어먹다가 형사처벌 받은 사례도 있고 하니까. 이용자들이 저작권료를 냈을 경우 그 돈이 도서관이든 시네마테크든 사회적 공공 인프라 구축에 쓰이는 방안이 어떨까 싶다.

조광희/ 저작권은 창작자를 보호해야지 더 많은 창작이 이뤄지고 또 인류 문명이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가정 아래 만들어진 사회적인 타협책의 하나다. 저작권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려면 영진위 등에서 나서서 창작자와 이용자가 고르게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분배 방식을 연구해야 할 것 같다.

김혜준(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김혜준/ 맞다. 정책쪽에서 어떻게든 분발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창구가 출현하면 고스란히 창작자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새는 것이 있게 마련인데. 정부가 사적복제 보상 제도(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공CD, 공DVD 등 복제매체 가격의 1∼2%를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금액으로 부과. 처벌이 곤란한 개인 불법복제의 경우 사적복제 보상 방식으로 피해 분야에 대해 지원한다) 방식을 통하거나 창작자를 위한 세금 정책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응답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당사자들끼리 싸우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셈이다. 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어떤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문화운동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이원재/ 지금의 이러한 상황은 문화정책의 실패 탓이 크다. 정부는 공적 영역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하는데 시장 개입 위주의 정책에 올인해왔다. 배타적, 독점적 저작권만을 보호하려 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색출 위주의 정책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포기하고 저작권자와 네티즌의 당사자간 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도 문제다. 그런 식으로 갈등이 쟁점화되면 발전적인 논의가 불가능하다. 사적 이해관계만 따지고 들다가는 공멸이 불가피하다.

조광희/ 제도라는 것도 복잡한 사회공학의 산물인데. 한국이 주도적으로 바람직한 제도나 모델을 만들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다른 나라들이 그걸 참고로 삼을 수도 있을 테고. 플레이어들이 나서서 혜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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