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천년학>, 본격 제작 시작 [3]
2006-03-29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앞으로 촬영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애초에는 3월에 매화장면을 찍고 쉬었다가 8월 말부터 다시 촬영을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미리 해서 점검해야 하는 탓에 4∼5월에도 촬영을 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모든 촬영을 3개월 안에 마쳐야 했는데, 이제 촬영기간이 늘어나 사계절을 담을 수 있겠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기왕이면 그렇게 하자는 거다. 처음에는 계절을 완전히 배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앵글도 달라지고 다른 데 눈길이 가지 못하게끔 드라마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한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계절은 주인공의 내면을 담기도 하지만, 영화에 리듬도 줄 수 있다. 영화란 게 드라마를 타고 흘러가지만 강약에서 늦췄다 몰아쳤다 해야 하는데 영화에 계절이 들어가면 그런 것을 해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천천히 만든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나.
=3개월 동안 몰아쳐서 영화를 끝낼 뻔했는데…. 사실 이 영화를 냉정하게 뜯어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이렇게 시간을 벌게 되면 3개월 안에 찍으려고 했던 것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가령 영화는 관객 앞에 보여지고 그들에게 흥미를 줘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는데, 그런 점에서 잘되고 있었는가 하는 것도 검토할 시간을 갖게 됐다.

-첫 촬영분인 매화장면은 듣기만 해도 기대가 된다.
=해남에 살던 한 부자가 실제로 소리를 들으면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우리가 차용한 거다. 그래서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이 바람에 날리는 날에 찍자 하는 생각을 했던 거다. 잘 찍히면, 대단히, 대단히 감동적인 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뜻 판소리 들으면서 영감 죽어가는 이야기가 무슨 볼거리가 되겠느냐고 생각이 들겠지만, 그게 뜻밖의 엄청난 힘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잘 찍혀야지. (웃음)

-조재현은 어떤 점에서 인상 깊게 봤나.
=좀 포지티브하다기보다는 네거티브한 게 있다. 드러나지 않은 쪽에서의 힘인데, 굉장히 동물적인 것, 야성 같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야성이 동호라는 캐릭터와 맞는다고 생각하나.
=그런 면이 있다. 동호가 배운 게 뭐 있겠나, 가진 게 뭐 있겠나. 그저 가난이 싫어서 뛰어나와 뻔한 생활을 해가면서 살아가는데, 삶 자체가 즐거움으로 채워지기에는 어려운 거다.

-조재현에게 어떤 당부를 했나.
=당부랄 게 뭐 없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서로 같고 역할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이해를 같이 하고 있으면 된다. 그 다음에는 내가 현장에서 얘기를 많이 바꿔갈 수도 있고, 수정을 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그런 일을 가장 많이 하는 감독이라는 것을 저쪽도 알고 있다. 그런 점이 기본적으로 돼 있으면 문제될 게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런 바탕 위에서 연기자의 순발력 같은 것이 빛날 수 있다. 연기를 이렇게만 해야지 하고 고정된 생각을 지니고 현장에 오는 것보다는.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순발력은 능력있는 연기자에게는 외려 여러 가지로 활력을 주고 연기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되는 것이다.

-그에게 북 치는 기술을 준비시켜야 하지 않나. 짧은 기간 동안 잘할 수 있겠나.
=명고수가 돼서 누이가 득음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인 인간이니까 당연히 배워야지. 그런데 도리가 없는 게, 2∼3년 동안 연습한다 한들 명고수가 되진 않는다. 일단 기초만 되면 된다. 나머지는 진짜 고수가 하면 된다. <서편제> 때 김규철도 3개월 연습하고 촬영에 임했다.

-어제(인터뷰는 3월12일 이뤄졌다) 장흥에서의 촬영은 전반적인 느낌이 스산하고 황량하더라.
=그런 곳으로 들어오고 있으니까. 사실 그런 분위기가 십분 잘 드러나야 하는데 어제 그 정도로는 아니다.

-어제 촬영분은 영화에선 사용되지 않는 것인가.
=일단 조건이…. 영화상에서 동호가 주막으로 들어서는 시점은 만조 때여야 한다. 이 친구가 옛날의 그런 풍취가 있겠구나 하는 기대에서 그곳으로 갔는데 막상 가보면 둑이 콱 막혀버린 것 아니냐. 그런데 어제는 만조 때 찍은 게 아니다. 펄이 다 드러나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촬영을 안 할 수가 없잖나. 기자들이 저렇게 많이 와 있는데. (웃음) 내가 만날 그 따위 짓을 하는 감독이지만, 어제 찍은 것은 일단 버리고 가을에 만조 때에 맞춰서 찍을 생각이다.

-주막 세트와 풍경이 절경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 그런데 그것을 절경으로 만들어놨을 때 이 작품이 살아날 것 아닌가. 저거 가지고 어떻게 절경이 되겠냐 하는 그런 기대를 영화 속에서 바꿔놔야 한다. 그게 또 프로들이 하는 일이다. 단지 CG만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아니다.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 이 영화의 형식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가면서, 나도 촬영해가면서 개척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가 없다. 영화가 끝났을 때야 논리적인 설명이랄지 해명이랄지 비로소 할 수 있다. 어떤 영화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을 것이냐 하는 것은 내가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이 되지도 않고, 설명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건 이미 창의적인 세계가 아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답할 수 없는 것을 질문하고 있으니.

-제작사에서 정리해준 긴 시놉시스에도 신지수가 맡을 앵금이라는 캐릭터는 안 나와 있다.
=앵금이라는 캐릭터는 원작 안에 없긴 한데, <선학동 나그네>라는 단편을 가지고 2시간짜리 영화를 하자면 채워넣어야 할 이야기가 있잖나. <서편제>도 그렇게 채워넣기로 이뤄졌듯이. <선학동 나그네>에서 송화의 역할을 보면 주막에 왔다가 가버리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 왔다 간 것만으로는 얘기가 안 되기 때문에 송화의 삶을 좇아갈 필요가 당연히 생긴다. 그러면 이 사람이 시각장애인인데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아내자면 당연히 눈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 필요해진다. 그렇게 생겨난 역할이다.

-아버지 역으로는 김명곤을 캐스팅했는데 돌연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김종원 대표(제작사인 키노투 대표)가 어디서 잡아오겠지. (웃음) 출연하기로 결정해놓고는 갑자기…. 나는 김 대표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야지.

-캐스팅이 결정된 다른 배우들도 있나.
=매화 꽃보라 속에서 죽는 부잣집 노인네까지 정해졌다. 장민호씨가 맡을 예정이다. 아주 중요한 장면이라 아무나 정해가지곤 소화하기도 어렵다. 일단 3월에 매화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그쪽을 중심으로 먼저 캐스팅했고, 나머지 배역들은 더 꼼꼼히, 촘촘히 챙겨야 할 것이다.

-시나리오는 여전히 이청준씨와 작업 중인가.
=이청준 선생과 하는 얘기가 그거다. 시나리오는 영화가 끝나야 끝날 거라고. 이청준 선생도 그런 각오가 돼 있다. 현장을 따라다니면서 대사를 보충해야 할 때 작업해줘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동안 나도 겁없는 짓 많이 하고 살았는데(웃음), 이청준 선생이 구사하는 대사는 도저히 흉내를 낼 수가 없더라. 언어 구사방식이 정말 정교하다.

-음악을 양방언씨에게 맡겼다.
=<상도>라는 드라마 주제곡이나 KBS 다큐멘터리 <도자기> 주제곡 그리고 연주회에서도 들어봤다. 그런데 국악과 현대 악기가 서로 충돌없이 잘 매치되더라. 그래서 함께 해볼 의향이 있냐고 물었더니 전부터 내 영화의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하더라.

-지난해 말 투자로 영화가 중단됐을 때 충격은 없었나.
=내가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잖나. 사실 내가 흥행을 시킨 것은 모두 신인배우와 함께 작업할 때였다. <장군의 아들>이며 <서편제>며. 그런데 그런 이유 때문에 투자사가 손을 뗐다고 하니까…. 세월이 여기까지 온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영화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는 있었나.
=속으로 ‘아이, 지랄들 하고 있네. 너네들 한번 두고 보자’, 그런 오기 같은 것이 왜 없었겠냐. 자존심도 상했고.

-새 제작사인 키노투는 이전보다 굉장히 젊은 분위기일 텐데 적응 안 되는 면은 없나.
=나는 그 젊은 분위기가 굉장히 신선하다. 너무나 오랫동안 바깥을 전혀 모르고 살았잖나. 그냥 태흥이라는 곳에서 한 영화가 끝나면 어디서 소재 하나 구해서 ‘이거 합시다’ 하면 ‘어, 그럽시다’ 하고 살았다. 영화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전혀 모르고 살았다니까. 그러다가 젊은 제작자들을 만나면서 ‘아 많이 달라졌구나’ 하고 느꼈다. 나는 사실 80년대 그쪽에서 허우적대고 살았던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는 채.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에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실제로 전화위복이다. 가장 큰 것은 시간을 벌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자본만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런 건전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자본도 있다는 것을 이번 일로 알게 됐다.

-이태원 사장에게 섭섭한 점은 없나.
=그분은 어찌보면 만날 임권택이 하자는 대로 했잖나. <장군의 아들> 빼놓고는 그가 하자는 대로 한 게 없으니까. 그러다보니 신날 리도 없고. 그러니 다 이해하고, 원망할 여지가 없다.

-김영민에 대해서는 미안한 감정이 있을 것 같다.
=그에게는 내가 좀 미안하다는 생각을 한다. 기회가 있으면 한번 같이 일을 해보고 싶은 연기자인데,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게 돼 아쉬운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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