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사생결단> 촬영현장 [1]
2006-03-30
글 : 김수경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황정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뒤늦게 합류했다. 강수 역을 맡은 배우가 개인적 사정 때문에 중도하차했고 임순례 감독은 수소문 끝에 황정민을 오디션으로 발탁한다. 그리하여 1999년 10월 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신사동 연습실을 찾아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떤 양아치 같은 놈”이 부스에서 드럼을 치고 있었다. 황정민은 “물론 승범이가 보기에는 내가 더 양아치 같았겠지. 웬 시꺼먼 놈이 들어오니까”라고 말했다. 류승범은 크랭크인 직전 연포해수욕장에 워크숍을 갔을 때 “유독 정민이 형과는 터놓고 지내기 시작했다”고 기억한다. 이후 수서에 살던 류승범과 문정동에 살던 황정민은 류승범의 아토스를 타고 함께 출퇴근하는 일이 잦아졌다. 류승범의 말처럼 “정민이 형 어머니가 하시는 횟집에도 놀러가고 형 집에도 자주 들락거리던” 시절이었다. 영화 속 기태와 강수처럼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장군의 아들>과 <쉬리>의 단역이 영화 출연의 전부였던 극단 학전의 대표선수 황정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삽시간에 ‘화제집중’의 대상이 된 류승범에게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살 떨리는 “장편영화 정식 데뷔전”이었다. 류승범의 예상대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들의 도약대가 됐다. 두 사람은 현재 확고한 충무로의 간판 남자배우로 성장했다. 마약 소재의 하드보일드물 <사생결단>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든 MK픽처스가 제작한다. 6년 만의 재회에도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는 황정민과 “거의 똑같은 것 같지만 약간 다르기도 하다”는 류승범을 만나러 <사생결단>의 현장을 찾아갔다.

#0 황정민 vs 류승범,‘사생결단’을 하다

황정민: “과거 다른 영화에서 소품이나 배경으로만 사용되던 마약이라는 소재가 전면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류승범: “마약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는데도 처음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굉장히 사실적이라고 느꼈다.”

두 사람이 밝힌 <사생결단>의 출연 동기다. <사생결단>은 마약중개상 이상도와 강력계 형사 도진광 경장의 욕망과 운명을 다룬다. <사생결단>의 지하세계는 선악의 경계가 흐릿하다. 도 경장(황정민)은 마약계의 거물 장철을 잡기 위해 이상도(류승범)를 미끼로 사용한다. 장철은 도 경장의 동료형사를 살해했고, 이상도의 유일한 혈육 삼촌과도 관련된 인물이다. <사생결단>의 선과 악은 안개처럼 모호하고 인간관계는 복마전처럼 얽힌다. 각자의 욕망으로 인해 악어 도 경장과 악어새 이상도는 공생과 배신을 거듭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 이를 갈면서도 각자의 길을 가지 못하는 운명공동체”로 남는다. 류승범은 “<사생결단>은 촘촘하게 짜여진 정통 장르영화다. 장르가 가진 형식적 틀이 명확하다”고 말한다. 배우의 해석이나 연출의 운용보다는 드라마의 구조와 힘이 <사생결단>의 동력이라는 뜻이다. 황정민은 “도 경장의 처지는 경주마가 양옆의 시야를 가리고 콧바람을 내뿜으며 달리면서도 정작 자신이 왜 달리는지를 잘 모르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두 남자가 냉정하고 비열한 캐릭터로 맞설 <사생결단>의 현장 풍경은 어떨까.

#1 2005. 12. 30_ 도 경장 vs 이상도, 가라오케 난타전

이상도: (몇대 겨우 때리고 열나게 맞으며) 세상은 늪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악어가 되고 누군가는 반드시 악어새가 된다. 은젠가는 내도 악어가 된다. 늪을 건너고 또 건너믄… 은젠가는 내가 악. 어. 가 된다.
도 경장: (몇대 맞으며) 뽕쟁이한테 맞으믄서 머리 속이 점점 맑아짓다. (때리기 시작하며)… 내 우예 경찰이 됐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읐다. 진작에 글마를 잡았으야 했다. 진작에 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인기라.

열 시간 만에 격투장면이 끝났다. 류승범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내레이션을 녹음하는 동안 황정민은 생각에 빠져 있다. 가라오케 세트에서 톰과 제리처럼 탁자 아래위를 뛰어다니는 마약상 상도와 강력계 형사 도 경장의 얼굴에 고민이 묻어난다. 협소한 공간 탓에 동선을 짜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촬영 전 두사람과 감독의 논의가 활발했다. “감정을 실어 다부지게 때려야 한다”는 류승범에게 “일부러 얼굴을 때리면서 세게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라고 황정민이 만류했다. 최호 감독이 “일종의 애정표현이지만 때릴 때는 가차없이”라고 거든다. 동선이나 심리변화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 류승범은 매우 적극적이다. 그는 “나는 스스로 납득하지 않으면 참지 못한다. 이해가 안 되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도 상도와 도 경장의 감정에 대해 세트의 ‘뎅깡’(촬영을 위해 벽을 떼내는 일)을 하는 동안 세 사람의 논의는 계속됐다. 황정민은 대체로 최 감독과 류승범의 이야기를 들은 뒤 자기 의견을 보완하는 편이다. 황정민은 “막싸움 같지만 둘 다 머리로는 자기 실속을 차리려는 미묘한 상황이다. 그런 것이 언뜻언뜻 묻어나야 해서 더 어렵다”고 말했다. 류승범은 “같이 작업하는 상대배우와 감독이 아니면 누굴 믿나. 그래서 거침없이 이야기한다”라고 했다. “촬영기간 내내 아파트에서 형제처럼 합숙”하는 두 남자가 상의가 목 언저리까지 말려올라가고 손가락이 꺾일 정도로 격렬한 드잡이를 한다. 류승범은 “합이 정해진 액션보다 이런 막싸움이 더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런 격투는 익숙하지 않느냐고 묻자, 류승범은 “이제는 정말 이런 거 하기 싫어요”라며 손사래를 친다. “발라삐끼고”(‘도망쳐버리고’의 경상도 사투리)를 반복해서 되뇌는 류승범에게 마산 출신 황정민이 카메라 앞으로 걸어가며 슬쩍 대사톤을 조정해준다. 반나절 넘게 치킨 한 조각밖에 먹지 않은 황정민은 예민한 만큼 섬세하고 꼼꼼하다.

<사생결단>의 원활한 영화관람을 위한 비속어 단어장

물: 마약
짝대기: 히로뽕을 투입하는 주사기를 칭하는 말.
고사바리: 마약 소매상.
야당: 상도처럼 경찰의 끄나풀 역할을 하는 마약업자.
우방: 같은 편 혹은 짝패. 예를 들자면 도 경장에게는 김 형사, 상도에게는 성근.
상선: 소매상에게는 중간상이 상선, 중간상에게는 판매총책이 상선.
공장: 마약을 만드는 제조기구가 있는 제조공간.
교수: 마약을 제조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
염산: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 특히 유흥업소 종사자 중 마약 중독자를 가리켜 자주 쓰는 말.
백반: 마약에 밀가루를 섞어 파는 부정행위.
사또: 경찰
누워크는 콩나물: 경찰에서 실적이 떨어지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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