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사생결단> 촬영현장 [3]
2006-03-30
글 : 김수경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황정민 on 류승범, 류승범 on 황정민

현장에서는 툭하면 장난치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처럼 즐거워하는 황정민과 류승범. 6년 만에 만난 그들이 배우로서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따로 진행한 인터뷰는 공교롭게도 모두 두 사람의 밴 안에서 이뤄졌다. 황정민은 김해공항에서 촬영지를 향하는 차 안에서, 류승범은 감천항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러한 의문에 답해줬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첫 인연에서부터 현재의 변화까지 두 배우는 마주 앉아 이야기하듯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황정민

황정민: 예전에 <씨네21>이 주최한 ‘사상최대의 오디션’이라는 게 있었다. 8개 영화사가 참가했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와니와 준하> <수취인불명> <선택> 등의 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뽑는 과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합류했다. 같이 지낼수록 승범이는 어린 나이에도 ‘생각이 깊다’는 느낌을 줬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승범이가 드럼을 배우려고 조르면 내가 말리는 장면이 있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다. 둘이 대본 리딩을 하는데 장난을 하도 쳐서 코미디가 됐다. 임 감독님이 웬만해선 화를 내지 않는데, “지금 대본을 어떻게 보냐”며 엄청 화를 내셔서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난다.

류승범: 정민이 형, 원상이 형, 이얼 형, 광록이 형 다 연극판에서 이름 석자 대면 알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극단을 대표하는 배우였는데 나는 잘 몰랐다. 그러다가 크랭크인 전에 연포해수욕장을 갔다. 정민이 형이랑 그때부터 유일하게 터놓고 지냈다. 먼저 다가와줬던 것 같다. 나랑 같이 나오는 신이 정민이 형 분량에 많았다. 집도 같은 방향이라 그때는 늘 붙어다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두 사람에게 공히 장편영화 정식 데뷔전이었다. 건방진 소리인지 모르지만 촬영 전부터 정민이 형을 비롯해서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한 배우들이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배우들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벌써 6년, 무엇이 달라졌나?

황정민: 느낌이 달라진 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장난만 안 치면 돼. (웃음) 승범이와 나는 작품에 임하는 생각이나 연기의 톤이 좀 비슷하다. 해석하는 방법이나 노선이 비슷해서 말하지 않아도 연기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다. 그런 것이 다르거나 안 맞으면 아무리 친해도 연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사적으로 친한 것과 작품은 별개다. <너는 내 운명>의 도연이 때와 비슷하다. 촬영하기 전에 걱정이 전혀 안 되는 상대랄까.

류승범: 정민이 형도 그렇고 나도 몇 작품을 거치면서 영화라는 작업, 연기, 상대 배우와의 관계, 상대 캐릭터와의 대립에 대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만약 한 사람은 그동안 많은 경험을 했고, 상대는 그런 경험이 부족하다면 다시 만났을 때 힘들었을는지 모른다. 다행히 정민이 형도 굉장히 많은 작업을 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충실한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 <사생결단>에서는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으며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누가 누구를 이끌어줄 수도 이끌려 가서도 안 되는 게 작품을 위한 길이다. 남자 투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두 사람이 가진 연기의 경험치를 모두 끌어낼 만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배우 류승범

류승범

황정민: 내가 못 가진 타고난 감각이 탁월하게 번득일 때가 있다. 그리고 류승범은 본질적으로 진지하다. 겉보기에는 까불까불하는 것 같지만 실은 예민하고 진지하다. 아무래도 <와이키키 브라더스> 때는 배역도 그렇고 가벼운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그동안 차곡차곡 잘 배워왔다는 느낌이다. 영화에 섣불리 덤비지 않으려는 태도나 의지가 쌓여 있기 때문에 이제는 가볍지 않다. 동생을 떠나 좋은 상대이고 파트너다. 승범이 나이에 그 정도 묵직함이 있는 배우는 거의 없다. 말 그대로 배우니까 좋아하는 거다. 직업이 배우라면 배우의 모습이 그렇게 정확히 보여야 한다.

배우 황정민

류승범: 정민이 형 전작을 모두 봤지만 <달콤한 인생>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정민이 형이 인물을 굉장히 노력해서 만드는데 그 노력이 어느 정도였을까 싶었다. 배우가 배우한테 놀라는 것은 저 배우는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할까 종잡을 수 없을 때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그저 잘한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과 말이 안 나오게 입이 쩍 벌어지게 압도하는 사람이 있다. <나쁜 피>나 <퐁네프의 연인들>의 드니 라방을 보면 후자의 느낌이 드는데 정민이 형도 그랬다. 그리고 정민이 형은 가진 게 많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갈고닦아 습득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다. 가진 재능보다 과대평가받는 사람이 많은 현실에서 정민이 형은 춤이나 노래 같은 배우의 기본적인 기량을 갈고닦으며 자기 내실을 다져왔다. 이제는 뭘 시켜도 능숙하게 해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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