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차이밍량과 <흔들리는 구름> [1]
2006-04-04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대만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차이밍량의 일곱 번째 장편영화 <흔들리는 구름>이 국내 개봉한다. <구멍>에 이은 두 번째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슬픈 포르노와 애교넘치는 뮤지컬이 함께하는 낯선 풍경이 있다. 그건 오직 차이밍량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기묘한 상상의 힘이다. 해석의 공터가 많고 전과 달라진 것이 눈에 띄는데, 이 변화된 기운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의 세계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흔들리는 구름>을 만들기 직전까지 차이밍량은 쌓여가는 명성과 상관없이 작품 외적으로는 악화일로의 길을 걸었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이민자이자 게이라는 그의 중첩된 소수 정체성에 대한 대만 영화계 내부의 곱지 않은 시선이 <구멍> 직후 불거져 나왔고, 더불어 작품에 대한 혹평 내지는 무관심 일색의 상업적, 비평적 냉기까지 더해지면서 차이밍량은 견디다 못해 2년간 말레이시아로 돌아가 몸을 추스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상황은 그 뒤로도 좋아지지 않았다. 2003년경을 전후로 들려오는 그에 대한 소식은 암담했다. 어렵게 단편영화 <천교는 보이지 않는다>와 <안녕, 용문객잔>을 만들었지만, 빚더미에 올라앉기 일보 직전이었고, 침체에 빠진 대만 영화산업의 흐름 속에서 급기야 그는 길거리에 나가 표를 팔고, 대학 등지에 손수 프린트를 들고 뛰어다니며, 초대받은 영화 행사장에서마다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눈물을 흘렸다. 심지어 미국의 어떤 대만영화 연구자는 각종 국제영화제와 컨퍼런스 등을 돌 때마다 차이밍량이 보였던 감정의 과잉 노출, 즉 공식석상에서 자주 눈물 흘리는 그의 모습이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아마 단순한 감정적 호소 차원을 넘어서 프로모션을 위한 전략적 “상연으로서의 행위”이자, 스스로를 구경거리로 만들면서 벌이는 “저항적 행위”가 아니었겠냐며, 호의적이지만 사려 깊지 못한 과포화의 해석을 덧붙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사려 깊지 못한 언급이다. 그것이 과연 차이밍량의 전략이었다 치더라도, 어떤 영화감독이 처음부터 대중 앞에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의 상연을 하는 상황까지 가고 싶을 것이며, 손수 나서 길거리에 몸을 세워두고 표를 팔면서 저항을 하고 싶겠는가. 차이밍량은 사지에 몰려 있었다.

몰락 직전, <흔들리는 구름> 덕에 살아나다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흔들리는 구름>이다. <흔들리는 구름>을 들고 베를린영화제에 갔을 당시 차이밍량은 대만 일간지 <애플 데일리>가 엄청난 혹평을 실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스탭들에게 차이밍량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애플 데일리> 머리기사에 실린 겁니다. 그거야말로 우리가 원하던 거 아닙니까.” 포르노 남자 배우와 한 여자의 사랑을 소재로 한 <흔들리는 구름>이 예상과 달리 삭제 논란 없이 대만 내 개봉에 안착하자, 도리어 차이밍량은 이 영화가 논쟁의 구심점이 되기를 바랐는데 그런 점에서는 아쉽다고 밝힌 바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흐름 속에서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이십세기 폭스 타이완이 배급을 맡았고, 통상 이 정도의 영화라면 2, 3개의 극장에 배급되었을 관행을 깨고, 전국적으로 43개 극장, 타이베이 안에서만 10개의 극장에서 상영하여 13만 관객을 모았고, 당년 개봉영화들 중 수위권 안에 든 것이다.

<흔들리는 구름>
<흔들리는 구름>

물론, 영화가 아니라 섹스를 보러 온 관객이 그중 대다수가 아니겠냐는 빈축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차이밍량의 대답은 확신에 차 있다. “13만명 중에 7만명 정도는 영화 속 섹스장면을 보러 온 관객이겠지만, 그래도 그 7만명 중 5천명 정도는 (내 영화를 이해해줄) 새로운 관객이 되지 않았겠는가?” 그러고 보면 <흔들리는 구름>은 일종의 상업적 미끼를 갖고 있다. 알고 보면 거의 성욕을 저하시킬 만한 장면들뿐이지만, 만약 포르노 배우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거기에 따른 알몸과 체모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정말 차이밍량의 신작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을까. 만약 이 추측이 잘못된 것이라면, 왜 우리는 차이밍량의 대다수 다른 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인가. 장편 데뷔작 <청소년 나타>는 그렇다치더라도, 차이밍량에게 있어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과도 같이 고스란히 이후의 형식들이 내려앉아 있는 영화 <애정만세>, 신체장애의 알레고리를 등장시켜 혼탁한 대만의 두 세대 관계를 암중모색한 그의 가장 정교한 영화 <하류>, 공간의 멀고 먼 축도를 시간의 침으로 겹쳐놓고 판타지를 불러낸 그의 가장 예외적인 영화 <거기 몇시니?>, 프레임과 소리들 그리고 운위하는 인물들만으로 낡은 공간과 기억에 혼절할 만한 감정을 불어넣은 그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 <안녕, 용문객잔>. 이 영화들이 개봉되지 않고 지나갔음을 굳이 상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알게 모르게 <흔들리는 구름>의 포르노그라피적 소재는 우리 곁에 차이밍량의 신작을 데려다놓은 일등공신이 된 것인데, 이것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가.

비로소 섹스가 전면에 등장하다

비가 오지 않아 가뭄에 시달리는 타이베이. 물이 황금처럼 귀하고, 물값보다 수박값이 더 싼 그때에 남자 한명(이강생)과 여자 한명(천샹치)이 제각각 살아간다. 어느 날 여자는 하천을 타고 떠내려가는 수박을 발견하곤 그중 하나를 건져 집으로 가지고 간다. 그 길에 문득 놀이터에서 잠자는 남자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그의 물통을 몰래 훔쳐 물로 수박을 닦아내고는 조용히 도망친다. 그러나 잠시 뒤 다시 돌아온 여자는 남자의 건너편에 앉아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 어느새 잠이 든다. 먼저 잠이 깬 남자는 여자를 본다. 역시 뒤따라 잠에서 깨는 여자. 영화가 40분쯤 지났을 이때 두 주인공 사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사가 나온다. 여자는 남자에게 묻는다. “아직도 시계 팔아요?” 남자는 살짝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남자는 시계 장수가 아니라 포르노영화 배우다. 여자의 직업은 박물관 직원인 듯싶지만 확실하지 않다. 차이밍량은 인물들의 신상과 직업을 세세하게 알려줄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이번에도 지킨다. 서로를 알아본 남자와 여자는 그 뒤로 애정을 느낀다. 음식도 같이 해먹고, 포옹은 더 짙어진다. 그러다 여자는 우연히 남자의 현재 직업을 알게 된다. 그걸 계기로 두 사람의 ‘애정만세’는 차이밍량 영화 중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가장 과격한 방식으로 성사된다. 그런데, 이 둘은 언제 어떻게 알고 지내던 사이일까?

<흔들리는 구름>의 전사는 <거기 몇시니?>와 <천교는 보이지 않는다>에 있다. <거기 몇시니?>에서 이강생은 다리 위에서 시계를 팔던 시계 장수였고, 그에게 시계를 사서 파리로 떠났던 여자가 천샹치였다. 영화 속에서 둘은 교감은 하지만, 끝날 때까지 서로 다시 만나지는 못한다. 다음 작품인 단편 <천교는 보이지 않는다>에서 여자는 타이베이로 돌아오고, 그때 그 남자가 시계를 팔던 천교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환기하게 된다. 정말 그 다리가 있었는지도 혼동된다. 그녀는 그 시계 장수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하여 찾고 싶어진다. 둘은 지나치고, 여자는 남자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사를 건네지는 않는다. 그러고는 남자는 먹고살기 위해 오디션을 통해 포르노 배우가 된다. <천교는 보이지 않는다>의 마지막 장면은 푸른 하늘에 떠가는 구름들의 클로즈업이다. <흔들리는 구름>에서 여자의 안방 천장에 그려진 그 구름들은 그렇게 이어진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결국 놀이터에서 ‘수박과 물’을 계기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애정만세>
<청소년 나타>

차이밍량의 영화는 어떤 면에서 전작 모두를 놓고 볼 때 의미가 깊어진다. 이건 작가 구조주의적 틀로 모두 뜯어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영화 속 인물들 자체가 영화 바깥의 실제 인간들처럼 동일하게 세월을 따라 나이를 먹고 살아간다는 뜻에서다. 대표적으로 차이밍량의 자동인형 이강생이 늙어간다는 것은 항상 그가 맡는 샤오강이란 이름의 인물이 늙어간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차이밍량은 자신의 영화 장면들이 말 그대로 실제하는 인생처럼 때로는 무언가 별안간 되돌아오고, 때로는 어딘가 다시 지나치고, 때로는 누군가 재회하면서, 더러는 무언가 달라지면서 나아가기를 추구한다. 그래서 그 기준으로 같은 배우를 예외없이 등장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 자신의 영화에 등장했던 장소와 상황을 반복적으로 다시 마주하거나 그것으로부터 꼬리를 문다. <천교는 보이지 않는다>는 차이밍량의 영화 속에서 이강생과 천샹치가 처음으로 만나 연기했던 <하류>의 그 에스컬레이터가 있던 장소로 되돌아간다. <거기 몇시니?>는 <하류>의 아버지로부터 시작한다. <거기 몇시니?>의 한 장면에 등장했던 극장은 <안녕, 용문객잔>의 주요 공간으로 재등장한다. 사물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식탁이 등장하고, 그 위에는 같은 상표의 밥통이 늘상 얹어져 있고, 가옥은 자주 누수되어 양동이가 필수품이며, 물은 사방에서 원인이 된다.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흔들리는 구름>은 그중에서도 <애정만세>에서 애정의 결핍으로, 욕망 충족의 대용으로 사용되었던 수박(<애정만세>에서 이강생은 <흔들리는 구름>의 천샹치와 같은 마음과 자세로 수박을 핥는다)을 다시 기억한다. 한편으론, <청소년 나타>에서 소년의 눈을 사로잡았던 그 포르노와 <하류>의 외로운 어머니가 포르노 업자에게 육체적으로 매달리던 관계들을 돌이켜보게 한다. 비로소 섹스라는 문제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차이밍량의 인물들에게 섹스는 나의 외로움을 확인하는 육체의 헛된 구애에 불과하고, 불통의 극한을 표현하는 간접적 수단 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침대 아래 숨어 위에서 벌어지는 정사장면을 상상하며 자위를 하거나(<애정만세>), 아버지와 아들이 어두운 사우나실에서 서로를 몰라보고 탐닉에 젖어들거나(<하류>),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한 부인이 베개를 가랑이에 끼고 애무하거나(<거기 몇시니?>), 그 무엇이라도 그들은 외로울 뿐이었다. <애정만세>의 양귀매가 낯선 남자와의 섹스를 끝내고 공원을 찾아 6분간이나 한없이 엉엉 우는 유명한 롱테이크 장면은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것이었다. 포르노의 이미지는 그걸 인증하는 일종의 허망한 신기루였다. 그런데 그 망상의 이미지가 지금 TV의 화면을 뛰쳐나와 살아 있는 주인공이 된 것이고, 거기에 애정이 끼어든 것이다. 인생은 더욱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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