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중년의 카리스마 김수미 [2]
2006-04-20
글 : 정재혁
사진 : 오계옥

김수미의 여성성, 모성과 도발적 설정의 충돌

<귀엽거나 미치거나>

김수미의 엄니, 엄마, 어머니 연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녀의 모성이 여성성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귀엽거나 미치거나>이다. 그녀는 이 시트콤에서 1인2역을 맡아 자신의 일용 엄니 이미지를 패러디한다. 그녀는 미술관 관장인 우아한 김수미와 말 농장을 운영하는 그녀의 엄마 역을 맡았다. 서로 상반되는 이미지는 수시로 충돌했고, 그 둘 사이의 화학작용은 웃음을 유발했다. 이는 곧 다양한 이미지의 충돌과 결합이 나타내는 시너지 효과로 해석됐다. 그러나 이 웃음의 내부에는 예상외로 간단한 구도의 대립항이 존재한다. 하나는 일용 엄니로 대변되는 모성의 이미지고 다른 하나는 여성성의 표현이다. 김수미에게 여성성은 언뜻 가깝게 다가오지 않지만, 실제로 그녀는 매우 여성적이다. “저는 옷 치장하고, 액세서리 사는 거 좋아해요. 그래서 <안녕, 프란체스카3> 하면서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구나 생각했죠.” 그녀의 코미디에는 항상 여성성이 존재했다. 욕설을 내뱉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는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모성이 그녀의 욕설이 가진 선정성을 희석시키는 작용을 한다면, 여성성은 그녀의 연기에 코미디적 리듬을 불어넣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 <안녕, 프란체스카3>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등이 그렇다. 물론 이 작품들에선 모성이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안녕, 프란체스카3>의 이사벨은 20대 나이에 남자에게 정기를 빼앗겨 50대가 된 슬픈 뱀파이어이고,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의 홍덕자는 엄마이기보다 조폭의 우두머리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에서 김수미가 만들어내는 코믹 연기는 일용 엄니 이미지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다. 특히 조폭 두목이 여자라는 설정은 김수미의 모성에 기대는 바가 많다. 그녀는 등에 용 문신을 한 무시무시한 조폭이지만, 아들의 결혼을 준비하는 극성스러운 엄마이기도 하다. 즉, 영화가 코미디 장르를 통해 조폭이라는 소재의 무거움을 덜어내듯이, ‘여자 조폭 두목’이라는 선정성은 김수미라는 배우의 이름으로 완화된다.

그녀의 코미디 연기는 덜 영화적이고, 덜 연기적이며, 더 인간적이다. “코미디 연기나 그냥 연기나 기본적으로는 똑같아요. 연기에 몰입하는 스타일도 그렇고. 하지만 코미디는 긴장이 좀 풀려서 하죠. 좀더 즉흥적이고, 내 내면에 들어 있는 설정들이 드러나곤 해요.” 그래서 그녀의 모성은 조폭영화가 코미디 장르로 안착할 수 있는 하나의 안전판이다. 즉, 최근 작품 속에서 그녀의 모성은 코미디영화의 도발적 설정들과 충돌하며 존재한다. 그리고 이 도발성은 그녀의 여성성이 스크린에 투영되는 방식이다. <안녕, 프란체스카3>의 이사벨은 우아한 드레스와 액세서리를 한 채 젊은 남자들을 유혹했으며, <귀엽거나 미치거나>의 갤러리 관장은 학력 콤플렉스가 있음에도 항상 우아한 자태를 뽐내려 했다. 그리고 이런 연기들은 항상 과장되어 있다. 코미디의 틀을 쓰고 변형되어 있다. 그녀의 여성성은 작품 속에서 코믹적인 무언가로 수정된다. 이는 그녀가 가진 코미디 연기 내부에서의 자연스러운 충돌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연기를 수용하는 관객의 태도이기도 하다.

관객의 오해와 이해사이, ‘김수미 장르’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마파도>

‘김수미라는 장르’는 그녀가 과감한 역할에 도전할 때 일종의 보호막이 되기도 하지만 그녀의 여성성을 왜곡시키는 부작용도 갖는다. 그녀가 멜로 연기에 도전하기 위해 “리처드 기어와 함께 영화 찍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 이는 관객에게 멜로가 아닌 코미디로 다가간다. 이것은 지금의 김수미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김수미를 둘러싼 태도’의 한계이다. 소설가 정이현은 <안녕, 프란체스카3>의 이사벨에 대해 “스물네살의 처녀에서 어느 날 갑자기 오십대로 변한 여자 뱀파이어라는 설정은 매력적이었지만, 극 내내 과장되고 희화화된 모습으로 비쳐지기만 했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영화와 드라마가 중년 배우들을 대하는 태도와 일치하는 지점이다. 김수미는 어느 정도 다른 중년 배우들과 다른 궤적에 놓여 있지만,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그들과 같은 벽에 부딪힌다. 코미디를 담보로 하는 그녀의 여성성은 치밀한 균형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이 무너지면 그녀의 코미디도 힘을 잃는다. <안녕, 프란체스카3>의 후반부가 그랬다. 이 시트콤은 드라마의 결핍을 이사벨의 욕설로 대신하려 했고, 관객은 점점 그녀의 육두문자에 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 알고있다. “이제 코미디 연기는 그만 하려고해요. 연기 톤을 몽땅 바꿀거예요. 저는 항상 새로운 걸 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녀의 도전정신은 <전원일기>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다. 22년간 갇혀 있었던 일용엄니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코미디를 그만 둔다는 발언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관객은 그동안 그녀의 도전정신을 즐긴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일용엄니처럼, 때로는 이사벨처럼, 관객과의 오해를 즐기는 그녀는 2006년 한국 영화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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