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중년의 카리스마 김수미 [3] - 인터뷰
2006-04-20
글 : 정재혁
사진 : 오계옥
“조인성과 사랑에 빠지는 역할 어때요?”

<안녕, 프란체스카3>의 김수미는 유쾌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욕설과 흥겨운 <젠틀맨송>은 일용 엄니 이미지를 거침없이 벗어버렸다. 그리고 <맨발의 기봉이>, 포스터 속 그녀의 모습은 일용 엄니를 연상시킨다. 흰머리와 굽은 어깨, 순박함이 묻어나는 얼굴의 미소는 다시 <전원일기>의 한 페이지를 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바탕 코미디의 난장을 끝내고 휴먼드라마로 돌아온 김수미, 비오는 주말 그녀를 만났다.

-<맨발의 기봉이>는 어떻게 출연하게 되셨나요?
=일용 엄니랑 비슷할까봐 망설였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다보니 신현준씨 역할이 참 좋더라고요. 또 현준씨가 꼭 엄마가 되어달라고 부탁도 했고. 일용 엄니는 주책도 없고 가벼운데 기봉이 엄마는 전혀 달라요.

-애드리브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게 강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의 가장 큰 강점은 순발력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리허설할 때는 잘되다가도 촬영만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저는 촬영만 들어가면 나도 모르는 것들이 튀어나와요. <연리지>에 카메오 출연할 때도 다 애드리브였어요. 대본을 보니까 그냥 “찰스∼” 뭐 이러면서 지나가더라고요. 속으로 이거나 하라고 불렀나 했어요. 그래서 “철수, 이놈의 새끼, 맨날 사고쳐. 머리 널어.” 이런 식으로 했죠. 한번에 오케이됐어요.

-<빨간 모자의 진실>에 목소리 출연도 하셨는데.
=저는 제 목소리가 싫어요. 배종옥씨 목소리가 좋아요. 배종옥씨 참 좋아해요. 근데 그 영화는 외화잖아요. 그거 제가 다 전라도 사투리로 바꿔서 했죠.

-자연과 함께하는 촬영을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마파도> 때에는 서로 다같이 여름 한철 잘 놀자고 시작했어요. 섬에서 찍는다고 들었거든요. 시간만 나면 텃밭에 가서 상추, 고추 따서 반찬해서 먹고 재밌었죠. 이번 <맨발의 기봉이> 때에는 남해에 처음 가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바다가 에메랄드 빛이 나고. 아침에 운동화 신고 한 바퀴 걷고 나면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여행을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원일기> 종영 이후엔 혼자 인도로 여행 갔다 오셨다고 들었는데요.
=인도는 저와 잘 맞는 곳인 것 같아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더럽고, 고생만 할 텐데 인도가 뭐가 좋냐고 하지만 인도를 알게 되면 참 좋은 곳이에요. 이제는 자주 가서 아는 스님도 있어요. 저는 혼자 여행하는 게 좋아요. 등산은 모임이 있어 같이 하지만, 누구랑 같이 가면 산만해져요. 생각할 시간도 없어지고. 이제는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까 전국에 아는 사람이 다 생겼더라고요.

-시나리오 작업을 하신다고 하더군요. 소설책도 내셨고. 자기 표현 욕구가 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시나리오는 아직도 작업 중이에요. 김혜자 언니를 놓고 쓰고 있는데 아직 뭐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에요. 일단 저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내가 써서 내가 해요. 제가 좀 열정적인 편이에요. 독서는 원래 작가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항상 즐기고요. ‘일용 엄니 책방’도 하잖아요. 책방에도 제가 읽고 좋은 책만 갖다 놔요. 누가 “무슨 책 없어요?”라고 물어보면 “교보문고 가세요”라고 대답해요. 엿장수 마음인 거지. 한번은 어떤 주부가 계속 책방 앞에서 가격을 보면서 서성이더라고요. 자기는 결혼한 뒤에 자기가 보려고 직접 책을 사본 일이 없대요. 사실 책값 1만원이면 다섯 식구 생태찌개 끓여서 저녁 한끼 먹고 말잖아요, 주부들이. 그래서 제가 책을 몇권 줬어요. 그랬더니 요즘도 한달에 한번씩 책을 사러와요. 제가 책방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데뷔하신 지 35년이 됐습니다. 이제 연기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35년 연기했어도 정의는 못 내리겠어요. 하지만 70%는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수나 박사는 머리가 기본만 되면 나머지는 공부하면 돼요. 하지만 연기는 안 돼요. 연기는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해요. 나머지 20%는 부지런함 그리고 10%는 말하기가 복잡한데, 평소 연기를 위해 준비하는 것들이 있어요. 여행, 독서를 통해서 지식을 쌓아야 해요. 저는 이런 것들이 컴퓨터에 칩 들어가듯이 머릿속에 있어요. 그런 게 현장에서 튀어나오는 거고요. 시나리오를 보면 한쪽 머리에선 다 연상이 돼요. 그럼 나 혼자 울고, 웃고.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으신가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속 여주인공 같은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조인성하고 해보고 싶어, 획기적으로. 조인성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내가 있는 곳에 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랑에 빠지는, 엔딩은 결혼식 장면. 그냥 내가 쓸까? (웃음)

-최근 다시 전성기를 맞고 계신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동안 나에게 온 찬스가 적중한 거라고 봐요. 사실 <오! 해피데이> 전에는 영화 제의도 잘 안 들어오고, 기회도 별로 없었어요. 근데 이제 그 기회가 온 것 같아요. 물론 계속 코미디 연기만 할 생각은 없어요. 뭐든지 넘치는 건 싫어요. 저도 코미디 연기 하면 즐겁고 좋지만 식상하기 전에 패턴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마 <가문의 부활>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아, 지금 완전히 나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가 하나 들어와 있는데 그거까지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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