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E. M. 포스터를 아시나요 [1]
2006-04-28
글 : 김혜리

“<전망 좋은 방>? 아, 그거 영화로 봤지. <오만과 편견>이랑 원작자가 같은 것 아냐?”

따지고 보면 다 영화 때문이다. 우리가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인도로 가는 길> <모리스>의 원작자 E. M. 포스터(1879∼1970)를 한 세기 앞선 제인 오스틴이나 뉴욕에서 태어난 헨리 제임스 심지어 <남아있는 나날>을 쓴 가즈오 이시구로와 혼동하게 된 것은. 우선 그들이 창조한 남녀는 대체로 약혼과 결혼을 둘러싼 소동을 빈번히 일으키고, 유산을 놓고 갈등하며,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인생의 의미를 각성하기 일쑤다. 부풀린 스커트 자락과 티파티, 녹색 장원의 이미지는 이방 관객이 그들의 작품을 한 덩어리로 기억하도록 현혹한다. 세월이 흘러 영국 중산층의 계급성과 완고한 매너도 유적이 된 지금, 문학도가 아닌 우리에게 그들을 분별하는 과제는 얼 그레이와 다르질링 홍차의 구별만큼이나 긴급할 게 없다.

영화의 감미로운 잔향만으로 만족하는 이들에게도, 지난 3월 말 완간된 한국어판 E. M. 포스터 전집(고정아, 민승남,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 펴냄)은 사양할 수 없는 만찬이다. E. M. 포스터는 “언어의 장벽은 간혹 좋은 것만 통과시킨다”는 낙관을 표명한 바 있지만, 이제야 번역된 그의 소설은 찬장 속에서 뒤늦게 발견한 꿀단지와 비슷한 기쁨을 안겨준다. 사회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관찰하는 영국 소설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개인의 내면을 모더니스트의 눈으로 그려낸 포스터의 장·단편은 서로 다른 문화,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세계관 사이에 팬 골짜기- 종종 그 골짜기는 한 사람의 영혼 속에 있다- 에서 피어나는 드라마를 주말 연속극만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호흡 짧은 독자라면 반짝이는 문장과 통찰을 건져올리는 재미만으로도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E. M. 포스터의 서재를 방문하기로 하자. 그곳은 오로지 먼 나라로의 여행과 책, 두 가지에 삶을 반분했던 E. M. 포스터에게 세계의 반쪽이기도 했으니.

“(케임브리지는) 그에게 약간 웃어 보이면서 (중략) 소년 시절은 청년기의 널찍한 방으로 이어지는 먼지 가득한 복도였을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 <기나긴 여행> 중에서

프로이트에 경도된 예술사가들이라면 E. M. 포스터의 유년 시절 이야기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1879년의 첫날, 런던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는 2살도 되기 전에 건축가 아버지를 여의고 영국식 장원에서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에게 둘러싸여 자랐다. 이모 메리앤 손튼이 여덟살 소년에게 물려준 8천파운드의 유산은 평생 독서와 자유로운 여행의 재원이 된다. <하워즈 엔드>의 머리말인 “오직 연결하라”는 포스터 문학의 모토로 오늘날까지 회자되지만 정작 소년 포스터는 세상과 부드럽게 연결되지 못했다. 기숙학교 시절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변태성욕자에게 추행당하는 사고를 겪은 포스터는 “나는 용감해지느니 겁쟁이가 되겠다. 왜냐하면 용감하면 사람들이 나를 해치려 하니까”라는 슬픈 혼잣말을 남기기도 했다. 포스터가 후세에 알려진 대로 ‘우정의 달인’이 된 것은 1897년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에 입학한 뒤였다. 고전과 역사를 공부한 그는 엘리트 그룹 ‘사도들’에 가입했고 뒷날의 블룸즈베리 그룹과 어울렸다. 친구들 가운데 포스터를 무신론으로 이끈 휴 메러디스는 알려진 대로 영화 <모리스>에서 휴 그랜트가 연기한 클라이브 더럼의 모델이다. 24살의 포스터는 메러디스와 연인이 됐다. 플라톤의 <향연>이 설파한 에로스에 감화된 플라토닉한 연애였다.

“로맨스는 오직 인생과 함께 죽는다. 그 어떤 집게도 우리에게서 그것을 뽑아낼 수는 없다.” -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중에서

20세기 초는 제국주의와 여행의 시대였다. 국경을 넘는 영국 여행자 무리 중에는 러디어드 키플링, 조지프 콘래드, 서머싯 몸 그리고 포스터가 있었으니 이들은 이국의 태양 아래서 영국 문화의 결핍을 보았다. 대학을 졸업한 E. M. 포스터는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 그리스를 돌아봤고 독일에서 가정교사로 몇달을 보냈다.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기나긴 여행> <전망 좋은 방> 등 초기작에 등장하는 이국 풍경도 이때 포스터의 마음에 들어왔다. 26살에 출간한 첫 장편소설 <천사가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Where Angels Fear to Tread, 1905)은 포스터가 “세계의 학교이자 놀이터”라고 예찬한 나라 이탈리아의 몬테리아노와 영국 소스턴을 오가며 펼쳐지는 멜로드라마다. 죽은 남편의 가족이 요구하는 규범에 매여 살던 릴리아 헤리턴은 이웃 처녀 캐롤라인과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 핸섬한 청년 지노에게 반해 몬테리아노에 주저앉는다. 가문의 재산과 명예를 염려한 헤리턴 부인은 아들 필립을 보내 막으려 하지만 둘은 이미 약혼한 터다. 헤리턴 가족이 다친 자존심을 추스르는 동안 신혼부부의 문화적, 기질적 차이는 그들의 결혼에 그늘을 드리우고 릴리아는 아기를 낳다 숨진다. 체면에 떠밀린 헤리턴 부인은 이번에는 아기를 데려오라고 아들과 딸에게 명한다. 풍속 코미디로 출발한 소설은 비극적 멜로드라마로 고양됐다가 “가장 멋진 일은 지나가버렸다”는 깨달음으로 끝난다. 포스터는 “내 소설에는 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내가 동경하는 사람의 세 가지 인간형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 처녀작 <천사가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으로부터 그 구도는 명확하다. 인습을 초월한 척하지만 실상 그렇지 못한 필립, 천진하고 아름답지만 탐욕스러운 지노, 오만과 편견으로 만사를 그르치는 해리엇은 이후 포스터의 작품 세계 속에서 각기 계보를 형성한다.

처녀작을 호평받았으나 젊은 작가는 끔찍하게 불행했다. 그즈음 휴 메러디스가 결혼했기 때문이다. 자살까지 상상하던 포스터는 라틴어를 교습한 인도인 유학생 사이드 로스 마수드에게 마음을 옮긴다. 친구의 결혼이 가져다준 배신감은 1907년작 <기나긴 여행>(The Longest Journey)에 점점이 배어난다. 유전적으로 다리가 불편해 연애운이 없는 리키는 “착한 아들, 다정한 남편, 책임감 있는 아버지… 자연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고 친구에게는 그 나머지 시간이 할애된다”라며 우정의 보잘것없는 지위를 탄식한다. 케임브리지 철학도 리키는 친구 앤셀과 교감하지만 실질을 숭상하는 여인 애그니스와 결혼하면서 점점 황폐해진다. 기숙학교 교사로 시들어가던 그의 삶은 어느 날 찾아온 앤셀과 몰랐던 사생아 동생의 존재로 다시 전환을 맞는다. <기나긴 여행>은 변덕스럽고 감상적인 플롯으로 악명 높다(그의 장편 중 유일하게 영화화되지 않았다). 죽음이나 치명적 사고가 느닷없이 독자를 혼비백산시키는 포스터 소설의 특징이 이보다 노골적인 작품도 없다. 평론가 윌 베버리지의 착실한 계산에 따르면 <기나긴 여행>에서는 갓난아기를 제외한 등장인물의 44%가 돌연사하는 운명을 맞는데 이러한 비운은 주인공도 비켜가지 못한다. 비평가 라이오넬 트릴링의 지적대로 <기나긴 여행>의 리키는 성장하는 대신 <적과 흑>의 쥘리앙 소렐처럼 깨달음을 끌어안고 산화한다. 미학적으로 방기된 듯한 이 야성적 소설에 대한 작가의 편애는 대단하다. 포스터는 <기나긴 여행>이 유일하게 그를 먼저 ‘찾아온’ 소설이라고 소개하며 “반문학의 정신이 팔꿈치로 밀어내기라도 하듯 일부러 잘못된 길을 택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나는 당신을 보면 어떤 전망이 떠올라요. 특정한 종류의 전망이 말이에요. 당신이 나를 보고 방을 떠올린다고 잘못된 건 아니죠.” - <전망 좋은 방>의 세실 바이스

20대 후반의 포스터는 암탉이 달걀을 낳듯 소설을 썼다. <기나긴 여행>과 연년생인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 1908)은 포스터의 가장 쾌활하고 낙천적인 로맨스다. 남의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던 영국 처녀 루시와 염세적 무력감에 빠져 있던 청년 조지 에머슨이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나눈 키스를 계기로 각자의 감옥에서 벗어난다. 그 와중에 발생하는 희생자가 루시의 약혼자인 금욕적 신사 세실 바이스. “저는 직업이 없습니다. 제 데카당스한 면을 보여주는 또 한 가지 사례죠”라는 대사가 우습긴 해도, 포스터가 세실을 다루는 태도는 경멸과는 거리가 멀다. 유산으로 먹고살며 사회의 관찰자로 남는 남자 캐릭터에게 포스터는 번번이 희미한 연민을 표한다. <전망 좋은 방>은 산들바람 같은 문체, 행복한 결혼으로 끝나는 결말 때문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비교된다. 포스터는 <전망 좋은 방>의 해피 엔딩이 꽤나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방 없는 전망’이라는 제목을 붙인 ‘지은이의 말’에서 포스터는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조지와 루시가 어디서 사는지 떠올릴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결혼과 연애 앞에 포스터가 설정하는 장애는 좀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의 연인들은 계급은 물론 인종, 성적 취향, 민족성을 저울질한다. 한편 포스터의 인물들은 오스틴의 인물에 비교하면 훨씬 불합리하고 충동적이다. 예컨대 <오만과 편견>의 리즈는 다아시가 악당이 아님을 확인하고야 감정을 확정하지만 루시는 그렇지 않다. 아마도 포스터의 인물들이 오스틴의 인물들과 언쟁을 벌인다면 백전백패일 것이다. 포스터의 윤리적 스타일에 주목한 영문학자 제이디 스미스에 따르면, 19세기 작가 오스틴이 세계와 자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를 원했다면 20세기 작가 포스터는 인간들이 그러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겁낸다고 보았다.

사진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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