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E. M. 포스터를 아시나요 [2]
2006-04-28
글 : 김혜리

“(산문과 열정을 연결하는) 그 다리가 없으면 우리는 모두 의미없는 조각들, 절반은 수도승이고 절반은 짐승인 채 인간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부서진 아치들일 뿐이다. (중략) 단지 연결하라! 그녀의 설교는 그게 전부였다. 산문과 열정을 연결하라. 그러면 그 양쪽이 모두 고양되고, 인간의 사랑은 정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시는 조각난 삶을 살지 말라.” - <하워즈 엔드> 중에서

<인도로 가는 길>과 더불어 포스터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하워즈 엔드>(Howards End, 1910)는 계급의 전쟁을 그린 소설이다. 전원 저택 하워즈 엔드가 상징하는 ‘영국’을 누가 상속할 것인가를 놓고, 식민지에서 부를 축적한 산업자본가 윌콕스가와 진보적 중류층 슐레겔 자매, 중산층의 문화를 동경하는 도시 근로자 레너드 바스트가 보이지 않는 투쟁을 벌인다. 결국 하워즈 엔드는 물질과 문화, 전원과 도시를 ‘연결’하려고 애쓴 마가렛의 손을 거쳐 헬렌과 레너드의 사생아에게 상속된다. <하워즈 엔드>로 자리를 굳힌 포스터는 1912년 인도를 처음 방문하고 마수드와 재회했다. 1913년 포스터는 시인이자 동성애인권운동가인 에드워드 카펜터를 방문하며 얻은 영감으로 <모리스>(Maurice)에 착수했다. 케임브리지 시절 휴 메러디스와의 연애가 녹아 있는 이 소설을 포스터는 “내가 죽거나, 영국이 죽기 전에는” 출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구서 <E. M. 포스터>의 저자 로버트 K. 마틴은 <모리스>가 동성애 권리를 탄원하는 소설이 아니라 동성애 의식의 발전을 그린 소설이라고 지적한다. 여성혐오가 깔린 고대 그리스적 동성애에서 섹스를 포함한 온전한 동성애로, 다시 동성애의 사회·정치적 결과를 성찰하는 사랑으로 모리스의 의식은 확장된다. 작가는 이렇게 정리한다. “그들은 연고도 돈도 없이 계급의 울타리 밖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노동하고 서로에게 충실해야 했다.” 포스터는 탈고한 지 47년 만에 쓴 저자의 말에서, 대중이 동성애와 관련해 정말 싫어하는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고 회고했다.

포스터의 성적 취향이 그의 문학세계에 끼친 형성력은, 동성애를 제재로 취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영문학자 김선형은 성(性)이라는 사적 영역에 공적인 요소가 끼치는 압력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기에 포스터는 사적인 인간관계의 오염과 단절을 극복할 방안을 평생 부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에서 소통 가능성을 중성적 가치인 인간적 소통과 유대에서 찾는 데에서 그의 성정체성이 암묵적으로 드러난다”고 평한다. <모리스>를 탈고하던 해, 포스터가 사랑했던 두 번째 남자 마수드가 결혼했다. 그리고 1924년 <인도로 가는 길>이 있기까지 포스터의 첫 번째 작가적 침묵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것은 불모의 시간은 아니었다. 포스터는 1917년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난 전차 차장 모하메드 엘 아들과 난생처음 육체와 정신이 합일된 사랑을 경험했다. 1차대전이 끝난 1918년 결혼한 모하메드는 4년 뒤 폐병으로 죽었다.

“왜 우리는 지금 친구가 될 수 없지?” 상대방이, 그를 다정하게 잡으며 말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데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인데.” 그러나 말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서로 갈라졌다. 땅이 그것을 원치 않고 바위들을 올려 보내 말 탄 사람들이 일렬종대로 통과하게 만들었다.” - <인도로 가는 길> 중에서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 1924)이 제목을 빌린 휘트먼의 시는 동서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축하하는 시였으나 포스터의 소설은 동서의 만남에 비관적이다. 영국 처녀 아델라는 인도에서 판사로 일하는 약혼자 로니의 어머니 무어 부인과 함께 인도를 찾는다. ‘진짜 인도’를 보고픈 두 여자의 소망을 정착지 영국인들이 무시하는 가운데, 무어 부인은 친절한 이슬람 의사 아지즈와 친교를 맺는다. 한편 약혼자에 대한 감정에 확신을 잃은 아델라는 무어 부인과 함께 마라바르 동굴 소풍에 동행했다가 갑자기 아지즈를 강간미수로 고발한다. 영국인들의 집단 히스테리 속에서 인도인에게 우호적인 교육자 필딩은 아지즈 편에 선다. 제국주의가 조직한 세계가 개인의 우정을 조각내는 광경을 그린 <인도로 가는 길>은 영국에서는 정치적 논란을, 미국에서는 큰 호응을 얻었고 후일 탈식민주의 비평가들에게는 “제국주의의 인간적 얼굴을 강화하는 소설”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인도로 가는 길>의 구조는 겉으로는 미스터리지만 정작 아무것도 폭로하지 않는 텅 빈 이야기다. 포스터는 그 속에서 그저 인물을 사건과 정황에 부딪히게 한 다음, 돌아오는 메아리를 통해 그들을 고립시키는 힘의 실체를 가늠한다. 포스터는 “연결하라!”를 좌우명으로 삼았지만 공존이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과제인지 입증하는 데에 그의 소설을 바쳤다. 필딩과 아지즈는 친구가 되는 데에 실패한다. <모리스>의 게이 연인들은 숨어들 숲을 찾아야 하고 <하워즈 엔드>의 화해는 불안한 휴전일 따름이다. 포스터는 심지어 <전망 좋은 방>에서도 조지가 나무에 깔려 죽는 결말을 써놓았다고 한다.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부정과 탐욕이 진정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것에 매달려야 해요. 왜냐하면 죽음이 오고 있으니까.” - <하워즈 엔드>의 헬렌 슐레겔

소설가 포스터의 두 번째 침묵은 끝까지 깨지지 않았다. 45살에 <인도로 가는 길>을 출간한 그는 서평, 에세이, 전기를 쓰며 46년을 더 살았다. 현대 문학사의 최대 미스터리로 불리는 포스터의 침묵에 대해서는 추론이 분분하다. 그가 사랑했던 세계가 전쟁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일까? 현대사회 비판이 이미 쓰러진 나무에 가하는 도끼질처럼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완전한 사랑을 맛본 그에게 더이상 픽션의 위장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포스터는 다만 이렇게 변명했다. “현대의 세계는 시인에게 더 어울린다. 현대 세계가 가진 광대한 화두는 소설이 다루기 어렵다.”

포스터는 주도면밀하게 회색 지대를 사수한 작가였다. 그는 자신의 국가와 계급, 문화를 자성하면서도 그것의 반명제가 가진 한계까지 파악해 선악의 복잡다단함에 근접했다. 그는 제인 오스틴을 잇는 도덕적 사실주의자이면서 인간의 의식에 도사린 결함을 간파한 모더니스트였다.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행동을 묘사하는 그의 문장은 비유나 접속사도 아끼는 경제성을 자랑하지만, 곳곳에 간결한 암시와 상징으로 의미의 웅덩이를 파놓는다. 사적 인간관계와 윤리를 세상의 유일한 반석이라 믿는 까닭에 개인을 종교, 국가, 가족와 마찰시키며 부단히 회의하는 포스터의 소설은 성격 급한 독자의 짜증을 부르기도 한다. “E. M. 포스터는 언제나 차 주전자를 덥히기만 한다. 아주 세련되게. 그렇지만 차를 대접하는 일은 없다”라 불평한 캐서린 맨스필드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학자 라이오넬 트릴링의 변호대로 끝없는 회의는 도덕적 좌표를 아예 내던져버리려는 세태에 유용한 방패다.

신으로부터 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통보라도 받았을까. 포스터는 소설로 형상화했던 반인습과 진보의 정신, 자유주의 가치를 직접화법으로 옹호하며 45살 이후 반생을 살았다. 49살에는 레즈비언 소설 <고독의 우물> 판금에 항의하는 캠페인을 주도했고 59살에는 “조국을 배신하는 것과 친구를 배신하는 것 가운데 선택하라면 조국을 배신할 용기를 갖고 싶다”는 선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81살에는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재판에 변호인쪽 증인으로 나섰다. 사랑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1925년 만난 해리 데일리와 3년을 사귀었고 1930년 만난 경찰관 밥 버킹엄과 사랑에 빠졌다. 버킹엄의 결혼은 53살의 포스터에게 또 한번 채찍을 내리쳤으나 쓰러뜨리진 못했다. 버킹엄 아들의 대부가 된 포스터는 버킹엄과 평생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했다. 어머니가 향년 90살로 세상을 떠나자 67살의 포스터는 “아주 젊은 사람이나 아주 늙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라고 부른 킹스 칼리지로 거처를 옮겼다. 1970년 방에서 쓰러진 91살의 포스터는 밥 버킹엄의 집으로 옮겨진 다음에야 숨을 거뒀다. 이번만큼은 연인이 그를 떠나기 전에, 그가 먼저 연인을 떠났다. 그리고 1년 뒤 마침내 <모리스>가 출간됐다. 그토록 필사적인 해피 엔딩으로 끝난 소설을 누구도 쉽사리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E. M. 포스터와 영화

영화를 불신한 소설가, 영화가 짝사랑한 소설가

<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는 영화를 불신했다. “나는 사람들이 읽으라고 책을 썼다”고 단언한 그는 생전에 영화판권을 팔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미국의 외교정책에 분노한 나머지 미국 자본으로 만드는 영화에 원작 제공을 거부했다는 설도 있다. 작가 사후에 완성된 첫 번째 포스터 원작 영화는 1984년작 <인도로 가는 길>. 조셉 로지, 제임스 아이보리 등을 제치고 데이비드 린 감독이 판권을 잡았고 페기 애시크로프트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영화계의 포스터 권위자는 <전망 좋은 방> <모리스> <하워즈 엔드>를 만든 머천트-아이보리팀이다. 흥미로운 점은 포스터 문학의 정수를 영화로 옮긴 이들이 철저한 코스모폴리탄 집단이라는 점. 이스마일 머천트는 뭄바이 출신의 무슬림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제작자고,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한때 인도에서 거주했다. 작가 루스 프라워 야발라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독일을 거쳐 영국으로 건너온 다음 인도 건축가와 결혼했다.

머천트-아이보리팀이 꼽는 포스터 원작의 영화적 매력은 “좋은 스토리, 훌륭한 캐릭터, 시각적 파워”다. 에드워드조 영국사회와 영국 제국주의라는 한정된 맥락에도 불구하고 포스터의 소설은 서사의 기본에서 매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머천트-아이보리판 <전망 좋은 방>(1986)은 흥행 성공 뒤 오스카에서 8개 부문 후보 지명을 받아 각색상, 의상상, 미술상을 수상했다. 남자들이 숲에서 벌거벗고 뛰어놀다가 숙녀 일행과 마주치는 신은 영화사상 가장 우스운 장면의 하나로 비공식 인정받고 있다(“악 저것 봐! 아니, 보지 마!”). 1987년 아이보리 감독이 연출한 <모리스>는 클라이브 역의 신인 휴 그랜트에게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겼고 1991년에는 찰스 스터리지 감독이 <천사들이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을 스크린에 옮겼다. 1992년 오스카에서 에마 톰슨의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3개 트로피를 안은 <하워즈 엔드>로 머천트-아이보리의 영광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포스터 원작 영화를 비롯한 유산영화(Heritage Cinema)는 미장센 과잉의 허영스러운 장르로 비난받기도 했다. 비판자들은 유산영화의 유일한 장점이 “원작을 사서 읽게 한 점”이라고 비꼬았는데, 실제로 영미권 서점가에서도 E. M. 포스터 소설은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크게 판매고가 올랐다.

사진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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