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말 없는 명상의 순간, <북쪽에서 온 이야기>
2006-05-04
글 : 김나형

북쪽에서 온 이야기 Stories frome the North
우루퐁 락사사드 | 태국 | 2005년 | 87분 | 디지털 스펙트럼

한시간 반 가량 말수가 적은 영화를 본다는 건 위험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화면이 어둠 너머로 물러나면서 머리 속에서 자신만의 화면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영화가 많은 말을 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일상은 전쟁터, 파악하고 처리하고 쌓아두어야할 수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그를 잠시 잊으려 찾는게 영화라면, 영화마저 복잡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당위성은 없다.

<북쪽에서 온 이야기>는 말 없는 영화다. 도시의 번잡한 풍경으로 문을 연 영화는 야자수 너머 아련한 하늘로 보는 이를 이끈다. 그곳에는 타이 시골의 조용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해는 하늘을 물들이고 달은 구름을 물들인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 사각사각 벼를 베는 소리가 지친 마음을 위무한다. 바람에서도 색이 느껴질만큼 아름다운 영상이 계속되지만 이 영화가 풍경을 잘라와 대리만족을 주는 ‘그림 같은’ 영화는 아니다. 9개 소제목 아래 펼쳐지는 시골의 일상 속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삶이 담겨있다. 농부는 개와 오두막에 앉아 저녁을 느끼고, 아이들은 저희들만의 이야기로 밤을 지샌다. 낮잠을 자는 사이 소를 잃어버린 노인은 황망한 표정으로 숲을 헤맨다.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이제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중얼대는 할머니. 감정마저 휘발한 그의 얼굴에도, 자식과 통화하는 순간에만은 어미의 표정이 스쳐간다. 우루퐁 락사사드 감독은 산업사회에 회의를 느끼고, 일하던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뛰쳐나왔다. <북쪽에서 온 이야기>는 그가 선물하는 명상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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