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변신의 여신 샤를리즈 테론 [2]
2006-05-10
글 : 이종도
변신이 본능인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길어 올린 경험의 원천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다. 프랑스인 아버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발레 수업을 받았고 <백조의 호수> 같은 무대에도 섰다. 발레리나가 꿈인 아프리카 소녀와, 여섯 남자를 죽인 거구의 살인마 에일린(<몬스터>)은 할리우드와 아프리카 사이만큼 멀어 보인다. 14kg을 찌운 둔한 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을 부드럽고 상냥한 눈웃음이 있다. 금발에 풍만함과 튼튼함을 함께 갖춘 골격은 전성기 할리우드 여배우를 연상케 한다. 어릴 때 강간당하며 길바닥으로 나앉은 에일린처럼, 테론의 어린 시절에도 불우한 그늘이 있다. 15살 때 아빠가 엄마를 공격했다가 엄마가 쏜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엄마는 정당방위로 풀려났다. 엄마와 아빠의 판이함, 어린 시절의 비극 등을 보자면 에일린과 테론은 퍽 닮았다. 두터운 턱을 치켜들며 거만하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에일린과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테론이 하나가 될 수 있다니, 그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아마 <몬스터>가 없었다면,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아카데미 수상자도 없었을 것이고, 킴 베신저 이후 두번째 플레이보이 누드모델 출신 아카데미 수상자도 없었을 것이지만, 거기에 더해 샤를리즈 테론의 내면에 잠복한 변신 본능도 제대로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렌즈와 가짜 틀니를 쓰고 매일 2시간씩 분장하고 살을 찌우는 식의 고생담은 사실 부차적인 것이다. 엄마만 믿고 의존하던 모델 겸 발레리나 지망생 샤를리즈 테론이 LA행 편도 비행기 티켓 하나만 들고서 할리우드로 갔을 때의 고생에 비한다면 말이다. 8개월이나 에이전트를 찾아다니며 허탕을 치던 시절에 이미 에이린은 샤를리즈 테론 안에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배우를 꿈꾸었으나 아버지 친구한테 강간당한 것을 시작으로 밑바닥을 전전한 에일린은 죽음을 결심하기 직전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 셀비(크리스티나 리치)를 만난다. 셀비와 함께 살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매춘을 하다가 잔인한 손님을 만나 죽을 고비를 만나고 그만 첫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사회의 냉대와 셀비의 이기심 속에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에일린. 샤를리즈 테론은 건들거리는 걸음걸이와 열등감 가득한 어투로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 할수록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의 리듬을 창조한다.

vs <밀리언 달러 베이비> 힐러리 스왱크

악으로 깡으로, 삶의 곤경과 맞선다

배우가 되려 엄마와 둘이 LA로 간 외동딸 열여섯 소녀 힐러리 스왱크도 샤를리즈 테론처럼 가난했다. 고작 75달러, 주유카드가 전재산이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기처럼 트레일러에서 살았다. 테론이 발레로 시작했다면 힐러리는 수영선수였다. 덕분에 석달 간 하루 네시간 반씩 권투장에 살면서 샤를리즈 테론처럼 살을 찌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9kg의 근육을 늘리며 서른두살 먹은 웨이트리스 출신 복서 매기로 변신했다. 그러나 곤경을 풀어가는 길은 달랐다. 엄마는 134kg이고 남동생은 감옥에 있고 여동생은 자신이 손님이 남긴 스테이크를 먹으며 번 돈을 빨아먹는 흡혈귀일 때, 매기는 자신의 주먹으로 세상의 곤경을 때려눕혔던 것이다. 세상의 곤경에 맞서는 두 여자의 행로는 달랐지만, 아카데미는 두 배우의 연기 모두에 감탄했고 각기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