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잔머리상 - <경찰서를 털어라>의 마일스(말론)
이번 수상자는 보석털이범 마일스 로건(마틴 로렌스) 님이십니다. 이분의 인생은 글쎄요, 운과 잔머리로 점철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처음부터 운이 좋은 건 아녔습니다. 그는 몹시 ‘미션 임파서블’스러운 작전으로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를 훔치려다가 그만 동료의 배신으로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물론 그는 바보가 아니죠. 재빠르게 다이아몬드를 LA 한복판의 신축건물 환기통 속에 단단히 붙여두었으니까요. 2년 복역 뒤 출소했는데 애인한테 차이고, 그것도 모자라 다이아몬드 숨겨놓은 건물은 하필 LA 경찰서로 변모했죠. 하지만! 여기서 멈췄다면 오늘 이 시상식에는 그저 전직 도둑이자 현직 피자 배달부로서밖에 참석할 수 없으셨겠죠? 그는 피자를 전달하는 생양아치인 척 경찰서를 들락거리다가 신참형사 칼슨(루크 윌슨)의 신분증을 몰래 훔쳐 나옵니다. 왜냐고요? 맞습니다. 그는 진짜 경찰이 되려고 했던 겁니다. 영화 보면서 경찰 포즈 익히고 (이건 불량 경찰들의 공통점일까요?), 친구에게 부탁해 경찰 배지까지 만듭니다. 그리고 절도범 전문으로 16번이나 표창을 받은 ‘말론 형사’로 다시 태어나죠. 그는 신참 칼슨과 함께 “내가 도둑이라면 말이야…”하며 도난사건을 단숨에 해결해치웁니다. 게다가 우연히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강도를 만나는데, 알고 보니 옛날 동료지 뭡니까. 그는 2만 달러 준다는 조건으로 동료를 체포합니다. 그 일로 도범계 책임자로 승진했지만, 그는 틈틈이 난방 환풍구를 뚫고 다이아몬드를 찾는 것도 잊지 않죠. 하지만 아무리 어리버리한 칼슨이라도 해도 형사 파일과 배지 번호도 없는 말론 형사를 의심하지 않을 리 없었죠. 하지만 마일스 아니, 말론 형사는 자신이 암행감찰 중이며 이 사실은 극비라고 얘기해 위기를 모면합니다. 박물관 이집트 유물 도난사건이 마약업자의 마약 도난 위장사건임을 포착한 말론 형사는 범인을 잡아 FBI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십니다. 그랬거나 말거나, 겨우 찾아낸 다이아몬드를 실수로 마약이 든 짐짝 사이에 떨어뜨린 그는 멕시코와 미국 국경 사이에 있는 실험실까지 쫓아갑니다. 그 사이 그의 정체를 의심한 동료들에게 말론은 끝까지 멕시코 요원이라고 속이죠. 칼슨은 그의 정체를 알았음에도 치외법권인 탓에 그를 잡지 못합니다. 덕분에 말론은 주머니에 든 다이아몬드와 함께 멕시코 땅으로 멀리멀리 도망갑니다. 그의 뒷모습을 보니, 김지애 씨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아~~~~~, 얄미운 사람~! 어서 나오시죠.
마일스(말론): “세상에서 가장 좋은 3가지가 있어요. 다이아몬드, 멕시코 그리고 치외법권이죠. 잔머리로 뚫을 수 없는 법은 없다니깐~.”
5. 인종차별상 - <크래쉬>의 라이언, 핸슨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정책을 시행한 지 15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이런 형사님들이 있습니다. 백인 경찰 라이언(맷 딜런)과 핸슨(라이언 필립)은 지방검사 릭(브랜든 프레이저)의 차를 강탈한 범인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필이면 릭의 차와 똑같은 차에 흑인 부부가 탔습니다. 라이언은 몸수색을 한답시고 여자(크리스틴)의 몸을 샅샅이 만집니다. 그대가 단지 경찰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모습을 보고 핸슨은 발끈하지만 소심한 탓에 앞에서는 말 못하고, 다른 선배와 일하게 해달라고 조릅니다. 그 일로 라이언한테 한소리 들은 핸슨은 종일 심기가 불편합니다. 때마침 한 착한 흑인이 그의 차에 올라탑니다. 둘은 한참 알콩달콩한 대화를 나눴지만, 흑인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 것을 본 핸슨이 그만 울컥합니다. 황야의 무법자도 아니고, 누가 빨리 총 꺼내기 시합을 제의한 것도 아닌데, 그는 한순간의 오해로 흑인에게 한발을 쐈습니다. 이런 것도 과실치사에 넣을 수 있을지는 <솔로몬의 선택>을 다시 보기로 보든지 해야겠습니다만은, 어쨌든 황량한 공터에 안타까운 시신 한구가 버려졌으며, 그때 그 흑인이 꺼내려던 것은 조그만 인형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어쨌든 교통사고를 당한 흑인 여성 크리스틴을 구해낸 ‘영웅’이 인종차별주의자 라이언이고 무고한 흑인을 죽인 이는 안티 인종차별주의자인 줄로만 알았던 핸슨이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두 후보가 동시 수상하는 것으로 갈음해야겠군요.
핸슨 & 라이언: “저희가 왜 이 상을 타야 하는지는 모르겠소만, 어쨌든 백인은 위대합니다.”
6. 카리스마상 - <트레이닝 데이>의 알론조
여러분께 ‘심각한 투캅스’를 소개합니다. 알론조(덴젤 워싱턴), 제이크(에단 호크) 형사들입니다. 같은 일을 12, 3년쯤 하면 다들 매너리즘에 빠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철중 형사도 그렇고 여기 나와 계신 13년 경력의 LA 경찰청 베테랑 마약수사관, 알론조 해리스 경관도 그렇고요. 원래 범죄자랑 같이 있다 보면 자신이 범죄자인지, 형사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고들 합니다. 제이크 호이트 형사는 그걸 몰랐습니다. 단지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닌 알론조 경관이 멋있게 느껴질 뿐. 알론조 형사는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해놓고 면전에서 저 혼자 신문을 읽어댑니다. 제이크가 같은 조 여경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와 ‘했는지’만 집중 추궁하죠. 하지만 제이크는 경찰차도 아닌 시커먼 차에 둘이 올라탄 순간부터 뭔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죠, 알론조는 정보원을 통해 마리화나 매매 현장을 덮치고 그들에게 훔친 마리화나를 운전 중에 피웁니다. 마약 단속 경찰은 마약도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제이크에게 권하기도 하고 그가 거부하자 총구를 들이밀고 겁까지 줍니다. ‘마약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마약단속반에 들어온’ 신참 제이크는 마리화나 한방에 금세 해롱해롱. 그것도 모자라 알론조는 정신 차리라며 맥주까지 건넵니다. 영장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가 마약, 총기에 돈까지 갈취하는 알론조. 그는 친구이자 LA 최대의 마약중개상 로저(스콧 글렌)를 쏘고 돈을 강탈한 뒤, 제이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까지 하죠. 결국 화가 난 제이크는 알론조의 집에 찾아가 총격전을 벌이지만, 선배를 죽이진 못합니다. 차를 타고 도망치던 알론조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살해한 러시아인의 죽음에 대가를 지불하지 못해 무장괴한들에게 총 세례를 맞고 개죽음을 당합니다. 그날 TV에는‘13년 마약단속반 경관의 죽음’이란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고인을 대신해 유언이 되어버린 그의 마지막 말을 영상편지로 띄웁니다.
고(故) 알론조 형사: “늑대가 되든 양이 되든 선택해. 싫으면 교통순찰과나 가라고. 난 패배하지 않아. 날 쏠 수는 있어도 죽일 수는 없다고.”
7. 공로상 - <시효경찰>의 시효관리과
끝으로 좀 특별한 상을 수여하겠습니다. 요새 공소시효 논란이 많은데, 이처럼 시효가 끝난 사건에 ‘취미’를 붙인 별난 경찰이 계십니다. 바로 경찰서 시효관리과 소속의 키리야마 슈이치로(오다기리 조) 경찰입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공소시효를 넘긴 서류를 폐기하거나 유품을 유족에게 전해주는 게 전부. 그는 이력서에 쓸 취미조차 없다는 사실에 흥분, 밤새 예술작품 뺨치는 종이학을 완성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발한 취미가 바로 시효가 만료된 사건을 재수사하는 일이죠. 그는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에 뿔테 안경을 고집하는데 사건 해결만큼은 어느 경찰보다 능숙하게 해냅니다. 그의 유머센스는 가히 4차원적이라 할 만합니다. ‘일요일에 안경을 쓰면 영국인 같다’고 하거나, 매운 것을 먹으면 헤어스타일이 바뀌는 등 외계인이 따로 없죠. 그는 추리할 때면 안경을 벗고, 진상이 완전히 밝혀진 뒤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카드를 진범에게 건네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카드에는 도장까지 찍어주는 나름의 정성을 발휘하는데, 문제는 그걸 받은 범인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아니면 영문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래도 키리야마가 시효관리과에선 그나마 가장 나은 편입니다. 키리야마를 짝사랑해서 교통과 순경임에도 늘 시효관리과에 죽치고 있는 미카즈키(아소 구미코)나, 나이는 많지만 재수를 많이 해 키리야마와 동기이자, 키리야마에게 엄청난 경쟁심과 열등감을 갖고 있는 주몬지 하야테(도요하라 코스케) 형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이런 경찰서가 유지가 되는 걸까?’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어쨌든 발품 팔아 헛수고했지만 새로운 취미에 도전한 개척정신을 기리고저 시효관리과에 공로상을 수여합니다. 대표로 키리야마 군, 나오시죠!
키리야마: “시효가 끝난 사건 있으면 맡겨주세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취미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