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제59회 칸국제영화제 [1]
2006-05-22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5월17일 개막… <다빈치 코드>는 혹평, 최민식은 쿼터 지키기 투쟁

<스크린 인터내셔널> <버라이어티> 등은 제59회 칸국제영화제가 어느 해보다 많은 거장들을 초대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들은 데이비드 린치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우디 앨런, 스티븐 소더버그, 모흐센 마흐말바프, 브라이언 드 팔마가 올해 칸을 찾아올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두 가지 방향에서 어긋났다.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질 자콥과 예술감독 티에리 프리모는 유럽과 아메리카 전역에 걸친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선택했고 비경쟁 부문은 할리우드를 위해 비워놓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마케팅 부문 대표 테리 프레스는 <헷지> <엑스맨3: 최후의 전쟁> <플라이트93>을 비경쟁 부문에 초대한 칸영화제를 두고 “티에리 프리모는 영리하게도 영화제가 상업과 예술의 교차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칭찬했다. 아마도 그 찬사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막작인 <다빈치 코드>는 할리우드 A급 스타인 톰 행크스를 남프랑스까지 데려왔지만 무자비한 혹평과 무관심 또한 함께 몰고왔다.

새로운 재능과 지역적 다양성 추구

한국 영화인들의 FTA 반대 시위를 제외하면 비교적 조용했던 5월17일에 개막한 올해 칸영화제는 이미 몇달 전부터 호화로운 축제의 조짐을 보여왔다. <르 피가로>는 미국인들이 지난해 10월부터 예약을 시작해 하루 방값이 600유로에서 2만5천유로에 이르는 칸의 호텔들이 3월에 이미 예약이 끝났고 항구에는 파티를 위한 요트 40척이 대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막식에는 <다빈치 코드> 출연진과 심사위원인 장쯔이와 모니카 벨루치, 개막사를 선사한 시드니 포이티에 등을 제외하면 스타가 눈에 띄지 않았지만, <헷지>의 브루스 윌리스와 에이브릴 라빈, <엑스맨3: 최후의 전쟁>의 할리 베리 등이 며칠 안에 칸에 도착할 것이다. 그럼에도 칸영화제는 파티에 가까워 보이는 분위기보다 신선한 재능과 지역적인 다양성을 발견하게 될 거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질 자콥은 “영화의 지도 위에 새로운 지역들이 등장하고 또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서 올해 낯선 국적의 영화들을 만나리라고 장담했다. 그의 말처럼 경쟁부문과 주목할 만한 시선은 루마니아와 헝가리, 포르투갈, 우루과이, 파라과이, 노르웨이 등의 영화를 초대해 여백이 많았던 영화제의 지도를 새롭게 채워넣었다. 켄 로치와 페드로 알모도바르, 아키 카우리스마키, 난니 모레티를 제외한 경쟁부문 감독들이 기대를 벗어나는 이름들이라는 사실도 영화제의 자랑거리다. “칸은 영화의 축제인데, 할리우드영화가 없다면 파티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실토했던 티에리 프리모도 “칸영화제를 비난하는 시선 중 하나는 언제나 같은 감독이 온다는 것이지만 올해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의 소피아 코폴라나 <패스트푸드 네이션>의 리처드 링클레이터, <사우스랜드 테일>의 리처드 켈리, <바벨>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단지 칸에서만 새로운 감독이라는 사실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인으로는 처음 심사위원장을 맡은 왕가위는 “거장과 신인을 막론하고 신선한 영화를 찾겠다”고 말했는데 어쩌면 그 선언이 공허한 장담보다는 충실할지도 모른다.

논쟁적인 정치영화들 초대

칸영화제 심사위원
개막작 <다빈치코드> 팀

올해 칸영화제의 또 다른 특징은 지난해 실종되었던 정치성의 복귀다. 난니 모레티의 <일 카이마노>는 마피아와 부패한 정치가의 유착 관계를 폭로해 이미 자국에서 논쟁을 일으켰고, 99년 <휴머니티>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탔던 브루노 뒤몽은 <플랜더스>에서 사막으로 떠났던 젊은 군인들을 불러냈다. 이 밖에도 20세기 초 아일랜드 공화주의자의 초상을 그린 켄 로치의 <바람이 보리를 흔들 때>, 2차대전 때 프랑스 군대에 징집된 알제리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알제리계 프랑스 감독 라시드 부샤렙의 <토착민들>, 프랑스에서 추방당한 알제리인이 고향을 찾아가는 라바 아뫼르-자이메쉬의 <블러드 넘버원> 등이 비록 과거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아직도 효력을 지니고 있을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이다.

칸영화제가 진정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는지, 의견은 분분하다. 냉소적인 <버라이어티>와 다르게 젊은 재능을 발굴했다고 인정한 <할리우드 리포터>마저 “올해 칸이 선호하는 감독들이 영화제에 나타나지 않은 까닭은 프로그래머의 신념 때문이 아니라 일정 탓”이라고 썼다. 우디 앨런과 데이비드 린치는 아직 새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고,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파운틴>이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출품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쟁점이 아닐지도 모른다. 칸영화제를 찾은 이들은 유명한 감독의 영화나 미지의 영토에서 발굴한 영화가 몇편 있는지보다 그저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욕심을 지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칸영화제가 자랑으로 내세운 생소한 국적의 영화들 또한 그저 생소한 데 그칠 수도 있는 위험을 짊어지고 있고, 개막일에 상영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파라과이영화 <하마카 파라과이>는 그 위험을 증명한 것 같다. <다빈치 코드>로 불운한 출발을 하고 만 칸영화제가 반전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앞으로 며칠을 더 기다려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칸에서 스크린쿼터 시위 하는 최민식

칸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기 네댓 시간 전부터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 들어 레드 카펫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레드 카펫 한쪽에 모여앉아 햇빛에 익어가던 동양인들이 누구인지, 왜 같은 옷을 입고 이곳에 왔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단일한 문화도 전세계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No one culture shold take all the place”)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던 이들 중에는 바로 일년 전에 <올드보이>로 레드 카펫을 밟았던 배우 최민식이 있었는데도. 이런 아이러니가 레드 카펫 변두리에서 벌어진 작은 시위에 필연을 부여하는 건 아니었을까.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와 함께 칸영화제를 찾은 최민식은 한국과 프랑스 영화인들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침묵시위를 하며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질서에 반대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들의 시위는 기자회견과 촛불시위 등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 칸영화제 기간 내내 지속될 것이다.

-<취화선>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두번 밟았다. 지금 그 자리 바로 옆에 서 있는 소감이 남다를 듯하다.
=이것도 영화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레드 카펫 위에서 이 순간을 즐기고 느끼는 것도 영화인의 특권이겠지만, 전세계 영화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국의 영상문화 수호를 위해 노력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비슷하지 않겠나. 퍼포먼스를 준비한다거나 해서 더 시선을 끌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저기 있는 방송 카메라들이 한번도 비추지를 않더라고. (웃음) 하지만 오늘은 칸영화제 개막식이고 이런 시위를 묵인해준 것만도 고맙다.

-1인 시위뿐만 아니라 스크린쿼터에 관한 강연도 했고 멀리 칸영화제까지 왔다. 스크린쿼터 수호와 FTA 저지를 위한 대외적인 명분 말고도 개인적인 신념이 있을 것 같은데.
=올해 초에 이 싸움을 시작하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냈는데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구나 싶다. 이것은 나와 나의 싸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도 있었지만, 내게도 아직 여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사회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나와 충돌하는 시간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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