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엑스맨> 카운슬러의 임상 노트 [2]
2006-06-13
글 : 김혜리

미스틱은 일을 하려면 철저히 한다는 주의다. 다른 존재로 둔갑할라치면 아예 성문, 지문, 망막까지 복사하고 무술, 총검술, 컴퓨터 정보처리 기술도 완벽하다. 요컨대 007보다 유능하고 본드걸보다 섹시하니 인간 스파이들이 비공개 팬카페를 결성했다는 소문이 돌 만도 하다. 그러나 누구의 모습을 훔치더라도 미스틱은 미스틱이다. 미스틱은 타인의 외모는 그대로 베껴내지만 능력은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스틱을 정의하는 것은 오직 변신 능력 자체다. 미스틱도 매그니토처럼 오래전 인간들에게 혹독한 짓을 당한 모양이지만 과거에 대해 입을 여는 법이 없다. 과거를 꽤나 찾아해매는 울버린을 상당히 비웃는 눈치다. (※비록 냉소의 형식으로라도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 그녀로서는 특기할 만하다.)

솔직히 미스틱은 내 도움이 필요없다. 그녀만큼 자아정체감이 확실한 돌연변이는 본 적이 없으니까. 오래전,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나이트크롤러가 미스틱에게 “누구든지 다른 사람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왜 평소에도 남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죠?”라고 물은 적이 있다. 미스틱은 딱 잘라 답했다. “왜냐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 자긍심이 허약한 로그가 미스틱과 친분이 생기면 많은 정신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됨. 술자리를 마련할 것.) 사실 스톰의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와 진 그레이-울버린-싸이클롭스-로그를 거쳐 결국 매그니토의 뒷모습으로 돌아가는 미스틱을 보면, 그녀로서도 진자 상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심심풀이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쌀쌀맞은 유머감각에다가 비주얼 조크도 가능한 미스틱과의 대화는 즐겁다. 덤으로, 다른 엑스맨과 상담할 때를 대비해 연습할 수도 있다.


아이스맨이 한눈 판 것도 사실이지만, 로그가 섀도캣을 질투하는 것은 운명처럼 보인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가 닿는 행위 자체가 공포인 로그와 반대로, 섀도캣은 이물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접촉한 상태와 순간적으로 일체가 되는 능력을 지녔다. 몸의 분자구조를 물체와 동화하는 방식으로 통과해버리는 것이다. ‘벽’과 맞닥뜨린 엑스맨들의 전략은 성격대로다. 쿼터백 스타일의 저거노트(비니 존스)는 그냥 뚫고 나가고, 수줍은 나이트크롤러(앨런 커밍)는 텔레포트한다. 섀도캣은 스며들었다가 곧장 제 모습을 찾아 자기 길을 간다(그녀의 별명은 유령이다).

13살 때 침실 바닥에 낙상했다가 그대로 투과해버리는 바람에 능력을 각성한 이 소녀는 내가 엑스맨이라서 멋진 점이 무엇인지 묻자 “세상에서 전혀 영웅 대접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섀도캣의 동화능력은 에너지 흡수를 이용한 공격무기로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새벽 우연히 목격한, 학교 뜰에서 홀로 허공을 걷는 섀도캣의 모습은 병기를 연상하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기체 분자와 동화한 결과겠지만 그 순간만큼 소녀는 공기의 요정 실피드 같았다. (※상담실 출입시 반드시 문을 이용하도록 주의 줄 것.)


미국 연방정부 돌연변이성 장관이 되어 모교를 찾은 졸업생으로, 초기 엑스맨 멤버다. 처음에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가 온 줄 알고 “애니메이션 히어로는 옆방으로”라고 말할 뻔했다. 그는 울버린에게 “야수 같다면서?”라고 인사를 건넸다가 “남 말 한다”는 면박을 들었다. 비스트는 알고 보니 동업자로, 엑스맨이 되기 전 전 시애틀에서 정신과 상담의 프레지어 박사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력이 있다.(※NBC 시트콤 <프레지어>, <치어즈> 비디오자료 참조)

실험 중 사고로 푸른 털과 근육으로 뒤덮인 지금의 모습이 된 만큼, 비스트는 내면의 셀프 이미지와 외모가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을 앓고 있다. 평소 호모 사피엔스와 구별하기 힘든 대다수 엑스맨과 달리 외양부터 ‘이족’임이 분명한 그는 아마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누구보다 숙고했을 것이다. 비스트는 유전학, 생화학, 진화생물학의 대가인 동시에, 엄청난 스피드와 민첩성, 지구력과 파워를 가진 전사이기도 하다. ‘치료제’를 선택하는 돌연변이를 비겁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갈등하는 그는 돌연변이 최초의 공직자답게 윤리적으로 매우 강직한 자다. 비스트의 슈퍼히어로다움은 힘도 지성도 아닌 그 두 가지의 놀라운 균형에서 나온다고 나는 확신한다. (※비고-스톰을 향한 비스트의 특별한 감정을 계속 관찰할 것.)


내가 굳이 엑스맨 영재학교 근무를 고집한 데에는 멋진 여성 슈퍼히어로 여럿과 교유할 수 있다는 매력이 컸다. 특별히 <스파이더맨>의 메리 제인이나 <수퍼맨>의 로이스에게 반감은 없지만, 엑스우먼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진 그레이는 엑스맨을 통틀어 최강자다. 알칼리 호수 전투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그녀는 매그니토 진영의 다크 피닉스로 부활해 경천동지할 파괴력을 발휘한다. 자비에 교수는 처음부터 진 그레이의 엄청난 힘을 감지했으나 “본인과 사회의 안전을 위해” 그녀의 파워를 은밀히 제어하고 봉인했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진 그레이는 두통이 염동력과 텔레파시의 부작용인 줄 알았겠지만, 사실은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그토록 많은 진통제를 처방해야 했던 이유다.

진 그레이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전형이다. ‘아버지’의 권력을 선망하면서도 파워를 억눌러왔고 결국 인격이 분열된 경우다. 장녀 역할이 몸에 밴 진 그레이는 교사 시절 무던히 공명정대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구애자 사이클롭스와 울버린 사이에서도. 동료 엑스맨들이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그래서 사악한 다크 피닉스로 거듭난 그녀의 거침없는 자태는 은연 중에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통쾌함을 내게 안겨주었다. (*비고-진 그레이가 죽었다고 믿은 그녀의 약혼자 싸이클롭스가 상담 시간을 독점하고 기물을 다량 파손했음. 다크 피닉스 앞으로 청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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