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알아보는 해적생활백서 [1]
2006-06-20
글 : 김나형

디즈니가 조니 뎁을 주인공으로 해적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였다. 그러나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훌륭한 볼거리와 캐릭터의 매력을 모두 갖춘 색다른 해적영화를 만들어냈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는 예상치 못한 대흥행을 기록했고, 제리 브룩하이머는 1편의 선원들을 고스란히 데리고 속편 제작에 들어갔다. 많은 이들이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을 기다려왔다. 그 개봉을 코앞에 둔 지금,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의 장면들을 회상하며 해적에 대한 몇 가지 잡식을 얻어보면 어떨지. 진정한 수행자의 자세는 바로 그런 것이로세.

1. 캐리비안

‘캐리비안의 해적’이라. 다른 곳도 아니고 제목에다 ‘캐리비안’이라는 단어를 콱 박아놨다는 것은 역시 생각해볼 문제다. 모르긴 몰라도 카리브해가 주는 낭만성(에메랄드빛 바다와 파란 하늘, 신혼여행, 그럴 여건 아니라면 경기도로 물놀이라도 떠나줘야 할 것 같은)이 한몫했을 것은 분명하다. 제목이 ‘홍해의 해적’이라든가 ‘오호츠크만의 해적’이었다고 생각해보라. 모세 사마께서 등장하시어 “이곳은 소돔과 고모라!”라고 벼락을 친다거나, 이불을 뒤집어쓴 조니 뎁이 바다표범 사냥이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해적 재난영화다.

이 이국적인 낭만의 바다는 16세기 중순에서 18세기 중순에 이르는 20여년간 실제로 전쟁과 약탈이 끊이지 않는 해적질의 주무대였다. 어째서냐고? 훔칠 거 없는데 훔치는 것 봤나? 막대한 도둑질엔 그만한 부가 있게 마련. “자본주의가 사실상 이때부터 싹텄다!”고 연방 부르짖으시던 세계사 선생님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콜럼버스와 지리상의 발견을 떠올려야 한다. 16세기 중순, 스페인은 서인도 제도의 신대륙에서 막대한 부를 갈취하기 시작했다. ‘쩐’이 있는 곳에는 정치가 따르는 법. 주변국인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은 라틴아메리카의 약탈품을 본국으로 실어나르는 스페인 보물선을 공격하는 것이 아주 쏠쏠한 돈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돈도 벌고 상대국도 견제하고 자국 세력도 키울 겸 각 나라 국왕들은 앞에서는 평화협정을 맺은 와중에도, 스페인 항구와 함선을 약탈할 것을 뒷구멍으로 은밀히 지시했다. 개인 소유의 수많은 무장 선박이 국왕으로부터 적국의 선박을 나포할 권리를 받았다(이런 선박을 ‘사략선’이라고 한다). 이들은 공인된 노략질에 가담했고 국왕들은 이를 알고도 모른 척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 같은 인물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영국에서는 국민 영웅이었을지 몰라도 스페인에는 무자비한 해적일 뿐이었다.

사략선이 공식적으로 해적질을 했다면, 17세기 초에는 신대륙을 찾아 서인도 제도로 온 각국의 무법자들이 해적으로 탈바꿈했다. 이들은 기동력 있고 잔인하여 ‘버커니어’(사냥꾼이라는 뜻)라고 불렸다. 카누와 소형 보트를 타고 다니며 스페인 함선을 급습하고 스페인 마을을 점령하여 고문과 약탈을 일삼았다. 버커니어들은 각국의 필요에 따라 사략선에 흡수되기도 했다. 이들은 18세기 들어 유럽 강대국들이 평화협정을 맺고 사략을 금지하자 실직자가 되어버렸는데, 그 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자국 범선이건 타국 범선이건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진짜 해적’으로 변했다는 것. 미국 자본에 점령되어 미국인의 휴양지가 된 지금의 카리브해나, 남의 땅을 제 것처럼 먹겠다는 놈과 그 훔친 것을 또 훔치겠다는 놈이 들끓던 당시의 카리브해나, 처음부터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지도 모를 일이다.

2. 토르투가와 포트 로열

물이 쿨럭쿨럭 새는 돛단배를 타고 ‘포트 로열’에 입성한 잭 스패로우. 자신의 배 블랙펄을 되찾으러 떠나기 전 ‘토르투가’라는 곳을 찾는다. 영국 함대의 근거지인 포트 로열과 해적들의 근거지인 토르투가는 실제로 존재하는 곳일까? 그렇다. 전자는 200% 영국 이름이고 후자는 국적불명의 이름이라 전혀 가까이 있는 곳이 아닐 것 같지만, 두곳 모두 카리브해에 있는 장소이며, 해적들의 근거지로서 기능한 곳이다. 포트 로열은 1655년 자메이카를 점령한 영국이 세운 요새 항구다. 자메이카에 부임한 영국 총독은 스페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영국 출신 버커니어들을 포트 로열로 불러모았다. 이들은 포트 로열을 근거지로 스페인 대해를 약탈했다. 한데 왜 영화에서는 영국 함대가 해적을 공격하냐고? 그건 영화의 배경이 그보다 더 뒤이기 때문이다. 버커니어를 끌어들여 이용해먹던 영국은 갈수록 해적의 수가 늘고 그들이 영국 선박까지 무차별로 공격해오자 1681년경 반해적법을 통과시키고 해적 소탕에 나섰다. 문자 그대로 토사구팽. 반면 아이티 북쪽에 위치한 섬 토르투가는 18세기 초까지 버커니어를 포함한 해적들의 근거지가 돼주었다. 해적들도 부서진 배를 고치고, 나포한 배를 해적선으로 개조하고, 선원을 모으고, 노략질하지 않을 때 쉴 곳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감. 토르투가가 바로 그런 곳이었단 말이지.

3. 아즈텍의 황금

바르보사와 그 일행을 저주에 들게 한 아즈텍의 황금. 저주의 황금이라는 것이 있으랴마는 아즈텍의 황금이라면 분명 있었을 법한 얘기다. 남미에 난입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았다. 정복자들은 멕시코, 베네수엘라, 페루의 광산에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캐냈다. 입이 부르트셨던 세계사 선생님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면, 이놈들이 은을 너무 많이 캐간 바람에 유럽에 은이 넘쳐 은값이 똥값이 되고 대규모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음이 기억나리라. 안 나? 그럼 말고. 요즘에야 콧수염 단 독재자가 사막 벙커에 미국 금괴를 숨긴다고 하지만, 그때는 페루에서 훔친 금을 금괴가 아닌 동전으로 만들었던 모양이다. 이것은 ‘스페인의 금’이라고 금에다 도장을 딱 찍은 셈이다. 그러니 아즈텍의 금화는 있었을 법해도 그것이 스페인이 만든 금화였다면 해골 문양이 찍혀 있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

4. 바르보사, 바르바로사?

잭 스패로우를 몰아내고 블랙펄 선장이 된 바르보사. 이 이름이 국내 DVD에는 ‘바보싸’라는 해괴한 방식으로 표기되었는데, 몇몇 이들은 이에 대단한 불만을 표했다. 매력적인 해적 캐릭터를 한순간에 바보 비스무리하게 만들어버렸으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그런 분개에는 어쩌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해적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라면 ‘바르보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바르바로사’라는 유명한 해적을 연상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고보니 해적질은 세계의 알력 다툼이 가장 핫(Hot)한 곳에 항상 있었던 셈인데, 16세기 중반 신대륙 쟁탈전으로 불타오른 카리브해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었다면, 13세기 말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 분쟁지는 지중해였다. 붕괴한 서로마와 비잔틴,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에 고리처럼 둘러싸인 이 바다는 상선을 약탈하려는 해적들과 종교를 빙자해 공격해오는 배들로 대환난을 일으켰다. 바르바리 해적이란 오스만 제국을 섬기는 해상 세력으로 해적행위와 종교전을 동시에 수행하는 자들이었다. 바르바로사 형제는 당시 이름을 날린 바르바리 해적. 아프리카 알제로 건너가 술탄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물론 바르보사의 모델이 바르바로사일 것 같지는 않다. 시간도 공간도 한참 다른 데 있는 인물이니 말이다. 다만 그 이름만은 오마주한 것일지도.

5. 선상반란과 무인도에 버리기

잭 스패로우는 선상반란으로 선장 자리를 박탈당하고 권총 하나, 탄알 두알을 받아 무인도에 버려진다. 실제로도 해적들은 선장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 선장을 갈아치울 수 있었다. 이는 ‘투표’라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행해졌다. 영국 해적 찰스 베인은 위험하다 싶은 공격은 늘 피해오다가, 부하들에게 겁쟁이 선장으로 찍혀 쫓겨났다. 해적 선장 에드워드 잉글랜드는 영국 함선과의 긴 전투 끝에 승리한 뒤 패배한 영국 선원들을 풀어주는 관용을 배풀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부하들은 마다가스카르 근처 작은 섬에 그를 갖다버렸다. 이거야 원, 문 밖이 저승이라더니.

참고 문헌: 앵거스 컨스텀 <해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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