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알아보는 해적생활백서 [2]
2006-06-20
글 : 김나형

6. 여자 해적

잭 스패로우가 자신의 배를 떼어먹었다고 주장하는 여자 해적. 영화에나 나오는 거라고? 아니라니까. 실제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여자 해적들이 있었다. 앤 보니와 메리 리드. 캘리코 잭 래캄이라는 해적 선장의 배에 타고 있던 이 두 여자 해적은 1720년 재판을 받는 동안 일대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들이 몇년 동안 남자처럼 생활했다는 데 흥분하면서 그녀들의 섹스 라이프를 비롯한 온갖 것들을 알고 싶어했다고. 그 덕에 별볼일 없는 캘리코 잭 래캄의 이름까지 덩달아 유명해졌다나. 한편 5만명이 넘는 선원과 1천척 이상의 선단을 거느리다가 은퇴, 행복한 노후를 보냈다는 중국 여자 해적 치 카이라는 얼마 전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에피소드로 등장해 네박사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아무래도 우리 모두는 호사가인 듯.

7. 포격보다는 위협과 백병전

해적영화라면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배 옆으로 대포를 쏘는 장면이다. 포로의 눈을 가리고 갑판을 걸어 바다에 뛰어들게 하는 것과 맞먹는 로망이랄까. 하지만 실제로 해적들은 아주 절박한 상황이 아니고선 포격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기고 깨부수자는 게 아니라 훔치자는 건데, 약탈해야 할 배가 포격으로 가라앉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디스커버리 촬영팀처럼 인양작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인디. 나포한 배를 개조해서 해적선으로 쓰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배에 상처를 내는 일은 여러모로 삼가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 참 가오 안 서는 일이지만, 쇠갈고리를 던져 배와 배를 접근시키고 상대 배에 뛰어드는 백병전도 꼭 해야 할 경우에만 했다고. 그것도 그럴 것이 싸우면 사상자는 나게 마련이니 위협으로만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면 제일 좋지 않겠냔 말일시. 그래서 해적들은 이물에 포를 쏘는 정도로 위협하여 상대의 항복을 받아낸 뒤 보트로 약탈품을 이쪽으로 날라오게 시키는 방법을 가장 선호했단다. 적이 쉽게 항복해오게끔 ‘블랙비어드’나 ‘바르톨로뮤 로버츠’ 같은 유명한 해적의 깃발을 가짜로 달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는 참 실용적인 소식.

8. 해적 규칙

블랙펄 선원들이 달빛 아래 본모습을 드러내는 ‘달빛 세레나데’만큼이나 유명한 장면. 잭 스패로우의 ‘버벅대는 팔레(Parley)’. 이놈의 교섭 한번 요청하려는데 단어가 왜 이리 어려운지, 폴레… 폴롤랄레리루… 팔리…. 온갖 조어를 다 하고도 생각이 안 나네. 해적 공통의 ‘해적법전’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미지수이나, 각각 해적선 선원들이 자신들간의 행동 규약을 정해 지켰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규약은 극소수만이 남아 전해오는데, 그중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해적 선원들이 작성한 규약을 보면 ‘모든 승무원은 현안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과 노획한 식료품과 주류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거나,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그것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거나, ‘동료의 것을 훔치면 코와 귀를 자르고 해변에 내버림을 당한다’거나,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되’며 ‘배에 여자를 데려와서는 안 된다’, ‘선장과 조타수는 전리품 배당몫의 2배, 포수장과 갑판장은 1.5배를 받는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비록 약탈을 위한 것일지라도, 전리품의 균등한 분배나 1인 1투표에 의한 의사 결정 등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강령이었던 셈.

9. 처형

포트 로열항 입구, 교수당한 해적의 시체가 바다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잭 스패로우가 잠시 모자를 벗었다 다시 쓴다. 앞서 언급됐듯, 유럽 국가 권력들이 해적들을 유용한 돈줄로 생각하고 묵인해주다가 점점 감당 불가한 상황이 되자 얼굴을 바꿔 썼다. 18세기 초엽 해적의 황금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해적 행위가 절정에 치닫자, 반해적행위 입법에 대한 요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권력자들은 언제나 ‘본보기’를 좋아하는 모양. 각국은 해군의 순찰을 강화하고 붙잡힌 해적들을 가혹하게 처리했다. 해적들은 한꺼번에 교수형에 처해진 뒤 하루 반 동안 조수에 씻기게 방치됐다. 선장급 해적들의 시신은 쇠창살로 만든 틀 속에 들어가 썩어 없어질 때까지 썰물 경계선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썰물 경계선에 매다는 이유는 해적행위가 해사법 관할 즉 썰물 경계선을 벗어난 범죄라는 데 대한 상징. 화끈하게 광고를 해서 겁을 주겠다는 것인데, 그 이면에는 권력자들에게도 해적은 그만큼 두려운 존재였다는 진실이 함께 존재한다.

10. 해적선의 이름

잭 스패로우의 배 이름은 ‘블랙펄’. 검은 진주라니 참으로 폼난다. ‘검다’는 단어는 해적기와도 관계가 있다. 버커니어들은 ‘자비를 베풀지 않고 끝까지 최후까지 싸우겠다’는 의미로 붉은 해적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18세기 초에는 검은 해적기가 등장,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검은색은 해적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 당시 해적선들이 어떤 이름을 사용했는지 한번 볼까. 블랙비어드로 불린 에드워드 티치는 ‘앤 여왕의 복수’라는 거창한 이름의 배를 타고 다니다가 ‘모험’이라는 진부한 이름의 배로 옮겨탔다. 그의 모험은 얼마 가지 못해 영국 해군에 의한 최후를 맞았다. 바르톨로뮤 로버츠가 타고 다니던 배는 ‘유랑자’였는데 동료들이 그를 버리고 배를 가져가버리자, 액땜을 하고 싶었던지 새 배에 ‘포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포천’의 효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바르톨로뮤는 승승장구했고 다음 배 이름을 ‘로열 포천’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하웰 데이비스가 타고 다니던 배는 어이없게도 ‘수사슴’. 촌스러운 낭만과 므흣함이 뒤섞인 느낌이다. 비슷한 계열의 해군선 이름으로는 ‘바다의 요정’이 있다.

참고 문헌: 앵거스 컨스텀 <해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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