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거룩한 계보> 촬영현장 [2]
2006-06-29
글 : 문석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장진 감독 인터뷰

“캐릭터영화가 어떤 건지 보여주겠다”

-<거룩한 계보>는 기존 영화와 다르다는 느낌이다.
=내 입장에서는 크게 다른 게 없다. 어차피 소재는 매번 달라지는 것 아닌가. 영화 규모는 다르다. 이런 것은 있다. 사이즈가 달라진 만큼 책임도 달라지기 때문에 조금은 편협하지 않은 선에서,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 작품을 ‘장진의 조폭영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떤가.
=조폭영화, 조폭영화 그러는데, 한국에서만 조폭영화라고 부르며 낮게 보지 외국에서 갱스터무비는 대가의 손길이 닿은 하나의 드라마적 장르다. 한국에서는 이상한 방향의 성공사례가 생겨서 비판받는 것 같다. 만약 <초록물고기>가 성공했다면 이렇게 몰리지 않았을 거다. 이 영화는 말이 조폭영화지, 전형적인 범죄와 범죄자의 이야기다. 거기서 좀 들어가면 내 것치고는 가장 많이 울릴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감정이 굉장히 세다. 찍어놓고 보니까 시나리오보다 더 세다.

-이번엔 굉장히 남성적인 이야기인데, 그동안은 마초 캐릭터가 없었잖나.
=그렇긴 하다. 그래도 내 영화는 남성 중심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영화다. 여자를 잘 못 만드니까. (웃음) 그러니까 남자들이 많이 나오고 멋있는 말은 다 남자가 하고 그러는데, 그들의 구원상은 다 여자란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남자의 고유한 무언가가 우러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캐릭터들의 직업이 그렇다는 거지.

-그럼에도 시나리오를 볼 때 각 캐릭터의 남성성은 굉장히 강해 보인다. 어떤 숨겨진 욕망이 있었나.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어떻게 보면 되게 매력적인 것인데, <간첩 리철진>에서 손현주의 대사로도 표현된다. ‘남자는 사장이 되든 대통령이 되든 주먹으로 싸워서 1등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그건 어리석긴 하지만 약간은 이해될 수 있는 남성의 어떤 것 아닐까.

-주요 캐릭터뿐 아니라 주변의 캐릭터가 다양하고 많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하나씩 튀어나오는데,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도 거기서 나온다. 어제 세어봤는데, ‘한칼’ 하는 캐릭터들이 열여섯, 열일곱명 정도 나오더라. 정말 캐릭터영화가 어떤 건지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에 따른 어려움도 있지 않나.
=캐릭터를 조합하고 앙상블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연기자들 연령층도 다양하고 연기가 다져진 계보도 다르다. 방송쪽 연기자가 있고, 연극 연기자가 있고, 양쪽을 오간 연기자도 있다. 초짜 연기자도 있고, 대가도 있다. 그대로는 배우의 앙상블이 잘 안 이뤄지니 찍으면서도 여러 가지를 바꾸곤 한다.

-동치성이라는 배역은 정재영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4년 전 10장짜리 트리트먼트를 쓸 때부터 정재영을 염두에 뒀다. 하면 할수록 느끼는 건데 진짜 잘 통한다.

-정준호를 캐스팅한 것은 다소 의외다.
=신현준 선배도 그렇지만, 정준호 선배도 연기나 이미지가 좋은데 과소평가받는 분위기다. 사실 주중은 내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캐릭터라서, 영화가 개봉되고 나면 정말 기억에 남는 캐릭터로 남길 자신이 있었다. <영웅본색>을 보면 적룡이 아니라 주윤발을 기억하듯이. 정준호 선배가 이 역을 맡아줘서 고맙다. 그리고 정말 성실하고 열심이다. 단 한신을 리허설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온다. 현장에서 한번도 짜증 부린 적이 없다.

-굉장히 의외의 캐스팅도 많다.
=민지환 선생님은 <태풍>에 잠깐 나오셨지만, 본격적인 연기는 오랜만이다. 우리 학교 1기 선배로 신구 선생님과 동기이신데, 나중에 작품 보면 알겠지만 아무도 일흔 나이로 보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드라마센터 재개관 작품인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하면서 함께 작업한 것이 계기가 됐다. 류승용은 정재영과 동기인데, 학교 다닐 때 연기가 좋았다. 그런데 졸업하고 <난타> 하느라고 5년 동안 대사를 안 쳐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연기를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웰컴 투 동막골> 연극 때부터 <택시 드리벌> <세일즈맨의 죽음>까지 계속 함께했고, 영화로는 <아는 여자> 때 잠깐 나온 뒤 단편영화 <소나기는 그쳤나요?>, 인권영화 <소중한 사람> 등에 출연시켰고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는 검사 역을 맡겼다. 임권택 감독님의 <천년학>에도 출연한다.

-지금까지 영화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순제작비가 50억원인데, 제작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미술이다. 영화의 70%가 세트다. 교도소뿐 아니라 다양한 공간이 나와 눈은 즐거울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술에 들어간 돈은 보이지 않나.

-<거룩한 계보>는 당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진지한 영화가 될 것 같다.
=그런가? 그러니까 다음 작품 얘기를 하고 싶어지는데. (웃음) <아들>이라는 영화인데, 1시간15분짜리 중편을 구상하고 있다. 달랑 이틀 동안 써서 트리트먼트를 만들었는데, 너무 즐거웠다. 올 겨울쯤 들어가게 된다.

“동치성은 내가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들의 짬뽕이다”

<아는 여자>에 이어 다시 동치성 역 맡은 정재영

-장진 감독의 영화에 모두 출연했다. 이번 영화는 어떻게 생각하나.
=가장 장진 감독 같지 않다. 시나리오를 보고 처음에는 이야기가 너무 단순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원래 장진 감독 작품은 소재와 캐릭터나 내러티브가 독특하다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거룩한 계보>는 정반대다. 단순한 이야기를 바탕 삼아 그 내용에 자기 색깔을 입혀놓았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도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는 여자>에 이어 동치성이란 캐릭터를 연기한다.
=동치성을 한번 해봤기 때문에 친근감이 있다. 동치성은 기존에 해왔던 캐릭터에서 많이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요소가 동시에 들어가 있다. 투박함, 무식함, 인간적인 것 등등.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들의 ‘짬뽕’이라고 할까.

-특별히 준비해야 하는 게 있다면.
=특별히… 연기력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걸 준비 못했다. (웃음) 아무래도 전라도 사투리인데, <귀여워> 때 제대로 익혀봤고 이한위 선배가 잘 지도해줬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액션도 많이 해야 하나.
=나이가 드니까 가장 부담되는 게 액션이다. 촬영도 시작하기 전 연습하다가 다치기도 했다. 평상시 운동을 하지 않으니…. 큰 액션신이 2개나 남아 걱정이긴 하다. 우리 영화에서 액션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장진 감독이 류승완 감독도 아닌데. 액션은 감정을 보여주고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까.

-상대 배우들이 낯설 것 같다.
=정준호씨와도 처음이고 거의 다 처음 호흡을 맞춰본다. 감방 식구들은 학교 선후배도 있고 원래 알고 있었던 분들이다. 함께 연기를 못해봤을 뿐이지. 이제는 감방 식구들과는 진짜 가족처럼 지낸다. 순탄 역을 맡은 류승용도 대학 동기지만 영화 안에서 처음 만난다.

-한동안 어수룩하거나 순박한 캐릭터를 맡았는데 이번에는 좀 센 캐릭터다.
=이번 캐릭터 역시 어리버리한 면이 있다. 내가 보기엔 기본은 그렇고 센 장면이 몇개 있는 정도다. 전반적으로는 리얼리티 연기를 해야 한다. 액션영화에 나오는 그런 카리스마는 잠깐씩만 보여준다. 장진 감독 영화의 캐릭터는 연출에 따라 웃기게 될 수도 있고, 진지하게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밸런스다. 특히 이번 영화에는 인물이 많기 때문에 누군가 튀어버리면 아주 이상해질 수 있다.

-또 어려운 점이 있다면.
=장진 감독 영화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진지함과 코미디 사이에 놓인 가는 외줄타기의 선을 어떻게 지키느냐다. 연기를 과연 어디까지 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정말 고민된다. 자칫 재미있을 수도, 아니면 지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말 잘 생각해야 한다.

“김주중은 여성팬을 공략하기 위한 캐릭터 아닐까”

김주중 역으로 장진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정준호

-장진 감독과 처음으로 함께 작업했다.
=<킬러들의 수다> 때 같이 할 뻔했는데 못했다. 이번에는 시나리오를 보내면서 장 감독이 한번 보자고 하더라. 만난 자리에서 캐릭터 이야기를 하더라. 시나리오상에서 내가 맡은 김주중이라는 역할이 작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나는 주중이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에 앞서 장진 감독과 좋은 작품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장진 감독은 주중이 <영웅본색>의 주윤발 같은 캐릭터라고 유혹하더라. (웃음) 그러면서 자신을 믿어달라고 하는데, 자존심도 세고 자기 세계가 확실한 감독이 그렇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바로 ‘오케이, 합시다’라고 했다. 장진 감독을 천재라고들 하는데 정말로 그렇더라. 현장에서 리더십이 대단하고, 직접 편집한 것을 연기자에게 보여주면서 연출력과 흐름을 잘 잡아가더라.

-김주중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파악하나.
=어디서나 볼 법한 놈인데, 동치성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경쟁심도 갖고 있다. 시골에 살다가 자본주의가 밀려들면서 깡패 세계에 몸담게 되는 캐릭터다. 굉장히 여리기도 하고 깡패같지 않기도 하다. 우유부단하기도 하고 무식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 전체로 보면 동치성으로 인해 주요한 긴장감이 생기지만, 주중이란 캐릭터는 관객에게 편안함을 주고 나름의 의미도 전달한다고 본다.

-그동안 코미디영화에 많이 출연했는데 장진 감독의 코미디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 영화에도 코미디가 많이 나오는데,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코미디를 설렁설렁해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장진 감독의 코미디는 디테일하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데서 웃음을 끌어낸다. 웃기려고 해서 웃기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진실하려다 보면 웃음이 나는 것이다. 품위가 있는 코미디랄까. 너무 노골적인 코미디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적절하게 조율하면서 감동을 주는 격이 있는 코미디 같다. 사실 이번 영화에서 코미디는 굉장히 절제됐지만, 그동안의 작품 중 가장 웃긴 영화일 것 같다.

-장진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나름대로 목표했던 것이 있다면.
=어쩌면 관객은 이 영화에서 내 캐릭터를 보고 저렇게 촌놈이 어딨을까 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무식하고 단순한 모습이 많이 비친다. 하지만 정준호가 그래도 귀여운 놈이구나, 그런 쪽으로 보여질 것 같다. 미워할 수 없는, 깡패 같지 않은 놈 말이다. 정재영이 남성 팬에게 소구한다면 내가 연기하는 주중은 여성팬을 공략하기 위한 캐릭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캐릭터가 연기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조직 안과 밖에서 동치성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절친한 사이지만 보이지 않는 경쟁심이 있으니까. 또 조직에 있을 때는 보스에게 충성하는 눈빛이 보여야 하니까 까다로운 편이다. 아주 디테일하게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영화에 들어가기 전 참고한 것이 있다면.
=<유주얼 서스펙트> <대부>처럼 조직 속 음모와 배신을 다룬 영화들을 주로 봤다. 그런 영화를 보면서 흐름을 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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