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의상 만들기 [3]
2006-06-29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의상감독 4인이 말하는 영화의상이란?

주인이 딱 한명인 옷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의 조상경

무대의상학과 학생 당시 현장 경험을 가진 파트너와 함께 <피도 눈물도 없이>(2002)의 의상 작업을 한 것이 그의 첫 번째 필모그래피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의상을 시작했고, 그래서 “실은 영화판에서 뭘 해도 상관이 없다. 영화의상만이 내 삶의 이유이거나 나에게 사명감을 주거나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그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특히 좋아한다. 이유는 “웃겨서”라고.

-현대물을 주로 작업해왔는데, 작품마다 구체적인 컨셉은 달라도 어딘가 일관된 정서가 느껴진다.
=그게 별로 안 좋은 것 아닌가 생각했다. 스탭은 유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유연성이 없으니 글렀다 그런 생각했다. (웃음) 그래서 좀 다른 성격의 작품들도 해봤는데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더라.

-그런 자신의 취향을 스스로 정의한다면.
=결핍된 캐릭터들이 좋다. 그러면 나의 감정이입도 훨씬 편하고 시각화하기도 좋다. 결핍이 있어야 내가 옷으로 메워주든 왜곡을 하든 과장을 하든 방법이 보이지 내 옆에 있는 인물의 얘기라고 하면 더 못하겠다. 연애를 해도 광적인 연애를 하는 애들이 좋고,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좋고 생략된 이야기가 좋다.

-기껏 만든 옷이 영화 한편 끝나고 버려질 때 아깝지 않은가.
=나는 그 한방이 좋다. 무대의상을 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스트라이크를 하고 없어지는 게 좋다.

-그래도 여태껏 작업했던 것들 중에 절대 남의 손에 떠넘기고 싶지 않았던 의상이 있었나.
=<올드보이> 때 미도가 입은 옷. 영화 속에서 잘 안 나온 의상인데, 지하철 안에 커다란 개미와 함께 미도가 앉아 있을 때 입은 트렌치 코트다. 꽃무늬 패턴을 활용한 코트였는데 옷 자체로도 예쁘고 그 장면하고도 잘 어울려서 가장 맘에 든다. 근데 경매로 나갔다.

-영화의상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 드는 생각은, 주인이 딱 한명인 옷. <달콤한 인생>의 선우의 의상이라고 하면 선우만 입을 수 있는 옷. 그래서 기성복을 안 입었음 좋겠고 디자인으로 접근하는 영화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가 만든 옷들에 애착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옷의 임자는 그 영화 속의 그 혹은 그녀뿐이니까.


배우를 만들어내는 도구

<혈의 누> <음란서생>의 정경희

전공을 살려 무대의상을 작업해오다 롯데월드에 입사, 캐릭터 의상 등을 만들어왔다. 영화가 하고 싶어서 “하루아침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첫 작품 <유리> 이후 시대극을 주로 작업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영화가 관객에게 퀄리티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의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돼 있어야 하는데 이게 들쑥날쑥하다”며 충무로의 영화제작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주 표했다.

-영화의상이 하고 싶었던 까닭은.
=어릴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그때부터 영화의상이 하고 싶었다. 여배우가 입고 나온 의상 하나가 바로 유행이 되던 시절이었다. 양장점에 가서 그 옷하고 똑같이 만들어주세요, 해서 맞춰 입곤 했으니까. 물론 옷은 똑같이 안 나오지. (웃음)

-영화의상만의 매력이라면.
=기록으로 남는 것이 좋다. 무대의상은 남는 것이 없다. 리허설 때는 리허설이라고 사진 자료가 없고 공연 중엔 공연 중이라고 사진 촬영이 안 되고. 작업을 끝내고 감상을 하더라도 무대의상은 공연 기간 내내 수정할 부분만 생각하느라 전체적으로 볼 여유가 없다. 영화의상은 이미 끝난 작업이니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좌불안석이긴 하다. 어머, 저 매듭 봐, 웬일이니. 이러면서 보지. (웃음)

-영화의상을 해오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기억.
=올해 중2인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있다. 내가 일이 바빠서 자기네들을 잘 못 챙겨주니까 애들은 그게 항상 불만이고 엄마가 증오의 대상이었다. (웃음) 그러다 내 일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니까 친구들한테 ‘울 엄마 영화의상한다’고 말하는 게 뿌듯한가 보더라. 얼마 전엔 아들이 학교 가서 ‘울 엄마 <음란서생> 의상했다’ 그랬더니 그 소문이 3학년 교실에까지 퍼졌다더라. 한 친구가 그랬단다. ‘그럼 너네 엄마 연봉 20억 받겠네?’

-해보지 않은 작업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무엇인가.
=SF물을 해보고 싶다. <아일랜드> 같은 영화.

-영화의상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화 안에서 배우를 만들어내는 도구다. 인물의 감정에 따라 의상을 고민하고 그 어떤 장면에서도 의상이 거슬리지 않게 하면서 배우의 이미지를 하나로 만들어내는 도구.


관객을 세련되게 속이는 방법

<웰컴 투 동막골> <청연>의 권유진

잘 알려진 것처럼 권유진은 충무로 의상분야의 독보적인 존재 이혜윤 선생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업을 물려받아 25년째 영화의상 작업을 해오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150여편의 영화에 참여해왔다. “80편 정도까지는 기억하겠는데 그 이상은 제목도 다 기억이 안 난다”며 “95년 들어서면서부터 작업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16명의 식구가 딸린 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다.

-25년간 의상 작업을 해오면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과 변한 것이 있다면.
=변한 부분이라면 스탭 처우가 그나마 좋아졌다는 것.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현장 영화인들이 가진 영화에 대한 열정이다. 나는 굶어 죽어도 영화는 한다는 열정. (웃음) 그 세월을 거치면서 나 자신에게 드는 아쉬움은, 이제야 영화의상이 뭔지 조금 알겠다는 거다. 영화의상은 카메라로 촬영해서 색보정을 거쳐 필름을 현상하고 영사기에 돌려 스크린에 비추어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본인 밑에서 일하다 데뷔한 조수들도 있을 텐데.
=<각설탕>의 차선영 팀장, <울어도 좋습니까>의 임명화 팀장, <청춘만화>의 오상진 팀장 등이 데뷔했다. 공포물 <귀신이야기>(감독 임진평, 제작 튜브픽쳐스)로 데뷔하는 김다정 팀장도 있다.

-제일 보람있었던 기억.
=내 조수가 대종상에 노미네이트됐을 때. 영화가 아마 <색즉시공>인가 그랬을 거다. 받아도 난감하지만(웃음) 노미네이트되니까 굉장히 기분이 좋더라.

-여전히 못해본 게 있다 싶은 작업이 있나.
=평생 해보고 싶은 영화가 딱 하나 있다. 장보고를 소재로 한 영화다. 우선 내가 시대물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통일신라시대가 굉장히 다채로운 매력을 지녔다. 게다가 장보고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일본, 멀리 페르시아까지 장악했던 인물이라 작업이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영화의상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관객을 세련되게 속이는 방법이다. 그래서 영화의상은 관객이 실물을 만져보면 안 될 것 같다. 환상이 깨지니까. 배우가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근사해 보이듯, 환상이 필요한 존재가 있다. 영화의상도 그렇다고 본다. 영화의상은 스크린에서만 보라고 존재하는 거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정구호

패션디자이너로서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던 정구호는 새로운 작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다른 의상감독들과 다른 점은 지금까지 참여한 모든 작품(<하루> 제외)에서 미술과 의상을 함께 도맡았다는 것. “미술과 의상이 크게 다른 부분이 아니다. 그 둘이 한 가지 컨셉에 의해 조율되려면 전체를 관장하는 아트디렉터가 있는 것이 맞다고 본다.”

-처음부터 영화의상을 해보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새로운 일을 좋아해서 한 일인데, 하다보니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고, 하면서 욕도 먹었고. (웃음) 네가 무슨 미술감독이냐 그냥 옷이나 만들지, 하는 소리도 들었다. (웃음) 다행히 결과물이 좋았고, 스스로도 이왕 시작했으니 상받을 때까지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이 일을 재미로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려고 한다는 걸 보여주자. 그렇게 더 열심히 해서, 상을 받았다. (웃음) (정구호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2003년 대종상영화제 의상상을 수상했다.)

-영화의상 작업만의 매력이 있다면.
=내가 하는 의상은 순수하게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컨셉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영화의상은 영화마다 컨셉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옷을 접할 수 있어서 일단 좋다. 내가 언제 한복을 만들어볼 기회를 갖겠는가. 의상의 다양한 장르를 다뤄볼 수 있다는 게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장윤현 감독의 사극 <황진이>에 참여하게 됐다.
=사실 <스캔들…> 이후 다시는 사극을 안 하려고 했다. 내 작업은 <스캔들…>로 만족하자고 생각했고, 또 사극을 하면 반복되는 이미지가 분명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들어와도 거절하기도 했다. 다시 사극을 하게 됐으니 현재 사극물들이 가진 이미지에서 더 나아간 무언가를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영화의상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캐릭터는 영화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 요소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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