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치와 씨팍>의 매력과 가능성 [2]
2006-07-05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글 : 정형모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3가지 코드로 보는 <아치와 씨팍>

코드1-마니아

막무가내의 펑크 애티튜드

양아치와 18. 누구나 더러워하는 똥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지저분한 사회에서, 누구나 원하는 것은 일종의 마약인 하드. 주인공은 정의나 평화 같은 거창한 대의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렇다고 의리나 복수 같은 개인적인 비장함이 그들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아치와 씨팍>은 누구나 공감할 캐릭터와 설정 대신에, 소수 취향이면서도 독특한 매력이 있는 요소들로 승부를 걸었다. 지저분하고 무지막지하면서도, 외관상으로는 아주 귀엽고 순수해 보이는 인물들의 부조화 같은. 영웅도 없고, 묵직한 감동이나 비련의 사랑이나 처절한 운명도 존재하지 않는, 이런 야비하고 당돌한 애니메이션은 대체 누구를 보라고 만든 것일까?

<아치와 씨팍>이 처음 기획된 것은, 엽기 코드가 한창 대세였던 1998년이었다. 제작기간이 2, 3년 정도로 끝났다면 <아치와 씨팍>은 주목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 엽기발랄한 애니메이션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수가 보지는 않았겠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한 부분을 차지했을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누들누드> 이후 스포츠지 시장에서는 분명히 한획을 그었던 엽기, 발랄, 황당한 만화들의 계보가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할 가능성도 있었다. <사우스 파크>처럼 TV로 나가지 않아도, 플래시애니메이션으로 인터넷을 주요 무대로 활보할 수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미 시대가 바뀌고 유행도 바뀌어, 2006년에 보는 <아치와 씨팍>은 재미있으면서도 어딘가 뻔해 보인다.

너무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치와 씨팍>의 못 말리는 발랄함은 인정받아야 한다. ‘정치적 공정성’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밀어붙인 뚝심, 아니 펑크적인 막무가내의 태도는.

김봉석/ 영화평론가


코드2-장르

컬트와 장르의 균형감각

<아치와 씨팍>은 마니아 취향이면서도 대단히 상업적인 감각을 지녔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마니아 취향과 대중 취향을 수렴하는 방식은 그 중간쯤 자리매김하는 게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하는 꼬락서니에서 내뱉는 말까지 계속 쓰레기통과 변기통을 오가는 유영을 하면서 이야기 혹은 장르의 직선적인 축을 완성한다. 영화에서 기관총처럼 쏟아져나오는 똥과 욕과 성은 새롭지 않다(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러나 자주 비교될 만한 <비비스와 버트헤드>보다 막 나간다. 똥의 대가로 얻은 ‘하드’를 다인종사회 구성원들이 저마다 열심히 ‘빨아’대는 풍경이라니.

캐릭터와 그들의 대사, 행동이 일탈의 의미에서 ‘막 나가는’ 쾌감을 준다면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스피드의 차원에서 ‘막 나가는’ 쾌감을 준다. <아치와 씨팍>에 엽기코미디, 복고로맨스 등등 붙일 수 있는 타이틀은 줄줄이 사탕이겠지만 이 영화는 결국 액션영화다. 보자기맨들이 하드 수송 차량을 탈취하는 영화의 첫 장면은 영화의 장르적 소속을 확실하게 보여주며 각종 캐릭터들에 대한 소개가 끝난 뒤 다시 이야기는 추적과 전투라는 액션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간다. <펄프 픽션> <원초적 본능> 등 깜찍한 패러디 몇컷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에 소비되는 패러디는 그 자체의 재미보다 일종의 편집된 액션신처럼 기능하며 그게 <인디아나 존스>에 이르면 패러디 수준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인디아나 존스>를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큰 그림에서 이러한 ‘공식에의 충실함’은 캐릭터나 에피소드의 도발성에 매혹된 관객에게는 지나친 안전판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컬트’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이 영화의 균형감각 또는 야심이기도 하다.

김은형/ <한겨레> 문화부 기자


코드3-테크놀로지

2D와 3D의 숙성된 조화

<아치와 씨팍>의 기술적 측면을 짚어달라는 주문을 받고 마음먹고 시사회를 보았다. 보자기 갱단이 하드 호송 장갑차를 추적하는 첫 장면부터 2D 캐릭터와 3D 배경이 서로 튀었다. 마치 된X 위에 설사X을 얹듯. 으흠, 딱 걸렸어.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이러는 거 아냐? 그런 게 바로 기우였다는 것을 작품이 끝나고서야 알았다. 생선이 쏟아지는 장면 정도를 제외한다면 맥주에 위스키 탄 듯 매끄럽게 이어져나갔다. 아니, 지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액션의 폭주에 심장 박동 수가 높아져 그런 차이에 신경 쓸 여력은 사라졌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김선구 PD에게 전화를 했다. “배경은 2D와 3D를 섞어 쓴 모양이죠?” “하하, 그거 다 3D로 한 거예요. 다만 2D처럼 보이게 하느라 고생 좀 했죠. 그걸 모르셨다니 성공했네요.” 원래는 배경도 2D로 하기로 했단다. 하지만 효과는 좋은데 너무 힘들어 3D로 가건물 짓듯 틀만 세우고 색과 분위기를 2D처럼 처리했다. 이 ‘생노가다’ 작업은 김윤기 미술감독의 몫이었다. “몇 군데 어색한 3D로 보이는 부분은 돈이 없어서 어쩌지 못한 부분이죠. 그래도 다들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라고 김 PD는 말한다. 이 작품은 키애니메이션 작업을 디지털로 했다. 타블렛에 전자펜으로 원화를 그려 입력, 결과물을 바로 디지털로 저장한 것. 이를 서버에 올리니 팀원들이 바로바로 체크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작품의 강점인 액션을 살리기 위해 카메라 무브먼트에 공을 들였다. 특히 속도감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앵글을 왜곡, 다이내믹하게 처리한 것도 관객에게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한다. 8년 숙성시킨 묵은 맛이 보통은 아니다.

정형모/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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