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치와 씨팍>의 매력과 가능성 [3]
2006-07-05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아치와 씨팍>의 조범진 감독

“시작할 때는 33살, 지금은 41살”

<아치와 씨팍>을 만든 이들은 조범진 감독과 동료들로 구성된 ‘J팀’이라는 집단이다. CD롬 타이틀을 만들던 친구들은 <업 앤 다운 스토리>라는 단편영화로 애니메이션계에 ‘꽤 재미나는 친구들’이 하나 나타났음을 알렸고, 그 덕에(혹은 그 탓에) 뜻모를 자신감을 충전시켜 장편애니메이션에 뛰어들었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꿈을 향해 달리라 고하는 다디단 선악과를 딴 순간이었다. 물론 돌아갈 길도 없이 8년이 흘렀다. 그동안 조범진 감독은 <씨네21>과 이미 두번의 인터뷰를 했고, 두번 모두 “곧 개봉한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해 인터뷰에서는 그해 11월이면 개봉한다고 장담했었다.
=(웃음) 거짓말쟁이가 된 거지 뭐. 합성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제작 지연에는 자금문제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니까.
=물론 중간중간 자금문제 등의 압박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만드는 사람 수가 적다는 거다. 그렇게 만들면서 바뀐 부분도 많다. 영화가 조금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서 어떤 부분은 확 줄여버렸다. 영화가 좀 많이 오락가락하지 않나? (웃음)

-처음 기획에 들어갔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바뀐 건가.
=많은 것 같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그대로인데 세부적인 에피소드들이 조금 바뀌었다. 조금이 아니고, 한 70%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다시 보니까 재미없는 부분들이 있어서 말이다.

-전반적으로 완성도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편집할 때는 꽤 만족스러웠는데 기술시사를 보니까 또 모르겠고. 실은 하도 많이 봐서 이젠 지겹다. 스탭들에게도 웃기냐고 물어보면 이젠 다들 이런다. 글쎄요, 모르겠어요. (웃음) 일반시사 관객이 많이 웃어줬다는 말을 듣고는 겨우 안도했다.

-미술 부분에 대해서 지적해본다면, <아치와 씨팍>은 90년대 말에 유행했던 이른바 ‘키치’의 유행에 가깝다. 지금으로서는 유행이 지났다는 기분도 있는데.
=키치라는 게 이미 유행이 지나갔다. 세기말에는 포스트모던 현상이 강한 데 비해 세기초인 지금은 문화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기운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의 취향과는 다르게 보이는 것이 오히려 튀는 것도 같다. 대비가 되니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5년을 고치고 고쳤으나 여전히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겠다.
=뭐, 그렇게 고치고 싶은 부분은 없다. 이미 많이 잘라내서 많이 버렸다. 편집을 하다보니 영화적 리듬을 방해하는 부분들이 좀 있었다. 사운드가 없는 상태에서는 괜찮은데 사운드가 들어가니 오히려 지나치게 분주해지는 장면들이 있더라. 그래서 12분 정도를 들어냈는데 아깝기는 하다.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다면 아예 작업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개봉도 1년 먼저 할 수 있었을 테고, 게다가 이틀 만에 5억원을 잘라낸 셈이 됐으니. 우리끼리 자르면서 그랬다.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돈을 이틀 만에 버리는구나. (웃음) 그래도 자르니까 더 좋더라.

-액션장면은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액션에 묻혀서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아치와 씨팍>을 시작하면서 크게 두 부분의 중심점을 설정했다. 아치와 씨팍이 나올 땐 웃겨주고, 개코와 보자기 갱단이 나오면 멋있는 액션으로 가자는 거였다. 근데 아치와 씨팍이 액션을 잘하는 애들이 아니기 때문에 둘이 말하는 걸로만 가다보면 지루해진다. 원래 버디무비라는 게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지 않나. 그런 구조 자체의 한계도 있다. 게다가 얘네는 싸움을 잘 못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액션에 잠깐잠깐 얽혀들기만 한다. 영화적인 결점 중 하나다.

-마지막 장면은 후일담 같은 것이 조금 길었어도 좋았을 뻔했다.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엔딩인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것을 흉내낸 것이다. 이미 볼 거 다 보여준 거 아닌가. 마지막에 살아나와서 서로 살았니 죽었니 반갑다, 이런 거 너무 싫었다. 긴장 고조시키고 보여줄 거 다 보여준 뒤에 그렇게 정리하는 장면 같은 거 좋아하지 않는다.

-18세 이상 관람가가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는 관객이 적고, 거기서 18세 이상으로 자르면 시장이 더 좁아진다.
=오히려 18세 이상으로 특화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아치와 씨팍>이 경쟁해야 하는 영화는 한국의 극영화와 미국 애니메이션들이다. 그래서 비슷한 코드를 따라가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확 반대로 가는 게 좋다. 말랑말랑하면 <아치와 씨팍>답지 않을 거다.

-이제 8년간의 데이터베이스도 축적되었으니 다음 계획도 어서 빨리….
=전혀 없다. 진짜 없다. 물론 J팀은 계속해서 같이 가동할 거다. 근데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다들 의욕이 없다. 의욕이 차려면 좀더 기다리야 할 거다. 물론 많은 스탭들이 파트별로 이성강 감독 신작이나 다른 애니메이션팀에서 작업하고 있고, J팀을 시작한 4명이 현재로선 아무 생각 없는 거다. 그동안 미친 척하고 8년 동안 매달려왔으니까. 프랑스월드컵 시작할 때 시작해서 독일월드컵까지 왔다. (웃음)

-처음 시작할 때 감독님 나이가 몇살이었나.
=33살이었다. 청년이었다. 지금은 마흔하나다. 중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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